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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괴물로 살아도 좋아, 박훈정 감독의 ‘마녀’
[리뷰]괴물로 살아도 좋아, 박훈정 감독의 ‘마녀’
  • 전인수
  • 승인 2018.07.20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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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박훈정

출연 김다미(자윤), 조민수(닥터 백), 박희순(미스터 최), 최우식(귀공자) 고민시(명희), 최정우(구선생) 오미희(구선생 부인), 다은(긴머리)

 

스포가 있습니다.

영화 마녀의 재미에 대해 말이 많다. 어떤 이들은 영화 후반부 반전의 묘미와 신선한 액션 신에 호평을 하고 있지만 어떤 이들은 이야기 전개가 루즈하며 반전의 풀이가 설명적이라는 점을 들어 진부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왜 이렇게 극단적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걸까. 박훈정 감독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은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었을까. 영화의 몇 가지 의문점을 짚어보자.

 

변형된 프랑켄슈타인 서사

영화 마녀는 프랑켄슈타인 서사를 갖고 있는 액션 영화의 장르적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듯이 보인다. 본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초능력을 타고난 인물. 보통의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 일상적 삶에 대한 동경.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 이러한 요소들은 같은 장르, 유사한 스타일의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이다. 본 시리즈, ‘니키타’, ‘솔트’, ‘악녀’, ‘엑스맨등의 영화는 모두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이형의 이야기를 다룬다.

동종의 서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모든 주인공 인물들이 자신 주변과의 관계를 통해 정체성을 확보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관계는 자신의 일상을 공유한 주변인들과 맺어지며 보통 사람과 다른 특이한 혹은 특출한 탄생과는 관계없다. 그래서 인물들은 탄생의 진실과 자신의 놀라운 능력을 부정하거나 그 능력을 통해 이형의 원인이 된 인물들이나 진실을 알고 있는 이들을 처단하려고 한다.

이들은 모두 프랑켄슈타인 서사를 공유한다. 메리 셀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괴물은 추악한 외모를 갖고 탄생해 주변인들과 관계를 맺지 못하는 존재다. 외모를 제외하고는 지능과 정서가 인간과 동일하지만 인간 사회에 섞이지 못한다. 우연히 만난 맹인의 집안에 몸을 의탁하고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지만 자신을 발견한 이웃 사람들 때문에 그곳에서도 쫓겨나고 만다. 결국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인간이 되고 싶어 하고 그 시도가 실패로 끝나자 자신의 창조자를 찾아가 자신과 같은 여자 생명체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누군가와 관계 맺고자 하는 욕망이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을 이끄는 추동력이다.

마녀의 구자윤 역시 탄생의 비밀을 갖고 있는 이형의 존재다. 영화는 중후반부까지 장르적 특성을 충실히 따른다. 구자윤이 갖고 있는 내적 갈등에 대해 정보를 아끼는 편이지만 대략적인 전개를 파악할 수 있다. 관객들은 자연스레 태생의 비밀을 모르던 주인공이 특정한 사건으로 자신과 관련된 비밀을 알게 되고 그와 관련된 악의적 행동이나 계획을 행한 대상을 처단하고 일상을 되찾는 이야기를 머릿속에 그리게 된다. 하지만 마녀는 반전에 이르러 전혀 다른 노선을 취한다.

구자윤이 이미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영화는 관객들에게 혼란을 던져준다. 자신의 정체성이 괴물이 아닌 인간이라는 점을 관계 맺기를 통해 증명하려는 여타의 인물들과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그동안 자윤이 연기를 하고 있었다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였는지도 관객에게는 의문으로 남는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계획을 위해 주변인들을 위험에 빠뜨린다. 만약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냈다면 윤리적 문제는 있을지언정 자윤은 가족들이 가진 문제들을 일부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거부하지 않는다. 자신이 괴물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고 그럼에도 긍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귀공자 무리와 마지막 혈투를 벌이고 그가 어렵게 내뱉는 난 살 거야. 자윤이로라는 말은 어딘가 의문스럽게 다가온다. 그의 말은 자윤이라는 인간으로 살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지금까지 함께 해 온 이들과 보통의 사람으로 살아가든 괴물로 살아가든 어쨌든 살아남겠다는 말로 들린다. 자윤은 혈투를 끝내고 치매에 걸린 양어머니에게 자신이 구한 약물을 전하기 위해 병실을 찾아간다. 간병을 하던 양아버지가 자윤의 어린 시절 그의 능력 때문에 내치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전할 때는 마치 그도 괴물로서의 자윤을 의식하고 있었던 듯이 보인다.

결과적으로 마녀의 구자윤은 장르적 특성에서 벗어난다. 그렇다고 주체적인 존재를 창조해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장르적 울타리에서 이야기를 운용하면서 원하는 서사를 구현하려고 하다보니 인물의 정체성이 모호해진 것처럼 느껴진다. 인간과 괴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자윤은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독이 해결하지 못한 고민의 노출이며 동시에 이 영화의 흥미요소까지 모호하게 만들어 놓는다.

 

정말 설명적일까?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의 반전 시퀀스가 지나치게 친절하거나 설명적이라고 말한다. 반전이 이뤄지는 후반부에 설명이 많아지는 이유는 전개 부분에 설득력 있는 장면을 심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야기의 초중반부에는 주인공의 진실에 대해 어떤 중요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 영화는 후반부까지 자윤의 일상으로 다가오는 과거의 영향을 다루느라 정작 주인공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에는 소홀하다. 서스펜스를 위해 일정한 떡밥을 던지며 관객을 끌어가는 잘 구성된 이야기와는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물론 이는 이야기 자체의 한계이기도 하다. 자윤이 모든 것을 계획했다는 단 하나의 반전 요소만으로 시리즈의 첫번째 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반전 시퀀스가 상당히 길고 대사 분량이 많다는 점도 이유가 된다. 어떤 정보도 없이 장르적 특성만 따라온 관객들은 길게 이어지는 닥터 백과 자윤의 끊임없는 말들의 향연에 지치기 쉽다. 클리셰에 기댄 진부한 귀공자 캐릭터들과 느슨한 전개, 정보의 부족 등으로 이어지는 장황한 반전 장면이기에 더욱 길게 느껴질 수 있다. 일부 관객들이 지루한 영화라고 평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완전히 상반된 반응들도 많다. 반전 시퀀스에 빠져들어 흥미롭게 몰입했다고 말하는 관객들이다.

대다수의 의견이 아님에도 반전 장면이 설명적이고 지루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또한 설명적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도 재고의 여지는 있다. 설명적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무리하게 언어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해 지루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언어를 이용한다고 해서 모두 설명적인 것은 아니다. ‘마녀의 반전은 연극적 특성을 갖고 있다. 차곡차곡 쌓여왔던 이야기들이 한 번에 전복적으로 드러나며 선명한 대결구도와 인물들의 과거에 대한 추리적 요소도 펼쳐진다. 다만 아쉬운 점은 반전이 주는 진실이 지목하는 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전의 형식은 영화가 놓친 진실, 관객이 놓친 세계 속의 진실에 관심이 있다. 하지만 구자윤이 스스로 괴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든 그렇지 않든 관객의 세계와는 관계하지 않는다. 공명하지 않는다.

물론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방식이든 영화는 재미만 줄 수 있으면 존재의 이유가 충분하다. 그래서 전혀 엉뚱한 답에 다다른다. 이 영화는 영화적이지도 연극적이지도 않다. 만화적이다. 영화는 결말에 이르기 전까지 문제를 끊임없이 지연시키면서 서스펜스를 잡아 늘린다. 느슨한 분위기의 전개 부분은 영화적이라기보다는 연재 웹툰의 에피소드를 닮았다. 시간 간격을 두고 진행되는 웹툰의 이야기는 전개가 치밀하지 않은 편이다. 그보다는 매번 다른 에피소드에 집중하면서 전체 작품의 가장 중심이 되는 사건에 서서히 다가간다. 웹툰의 독자들은 의미 있는 주제보다는 끊임없이 뻗어나가는 이야기와 기교, 전복적인 구조, 순간적 재미에 열광한다. ‘마녀가 집중하고 있는 것 역시 동일하다. 영화 중반부의 일부 장면들은 매우 순간적인 서스펜스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반전 시퀀스의 일부 숏들은 마치 대사와 함께 만화의 컷들을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마녀는 재미라는 요소에 상당히 집착하고 있는 영화다. 다음 장면을 기대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그럼에도 완벽히 성공하지 못한 것은 만화적 형식이나 주제의 결핍 탓이 아니다. 오히려 내용 때문이다.

 

익숙한 너무나도 익숙한

마녀의 내용이 조금 더 새로웠다면 어땠을까. 너무나도 익숙해 진부할 정도의 장면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영화의 내용이 매우 낡은 것이기 때문이다. 매드 사이언티스트에 의해 실험의 대상이 된 아이들. 기억의 혼란. 가족과 친구를 지키려는 주인공. 복수. 고위 집단의 음모와 검은 계획. 말 그대로 뻔한 설정들이 넘쳐난다. 내용은 형식과 떼어낼 수 없는 한 덩어리와 같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마녀에는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고 반전 장면에는 팽팽한 에너지가 넘친다. 또한 캐릭터의 독창성도 있는 편이다. 하지만 모든 매력들이 어정쩡한 위치에 있어 스스로 증발해 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관객들의 반응도 애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마녀의 후속 시리즈가 예정돼 있다는 점은 설렘과 우려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1편의 컨셉이 후속작에서도 지속될 것이라는 점에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럼에도 우리나라 뮤턴트 시리즈물의 탄생은 기대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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