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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이 정년 퇴임의 날, 인생 후반기에도 새로운 꿈을 꿉니다”
“죽는 날이 정년 퇴임의 날, 인생 후반기에도 새로운 꿈을 꿉니다”
  • 정희
  • 승인 2018.11.08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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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보은군민회장, (주)유엔아이월드 정영기 회장

 

이 사람의 인생은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25년간 노동운동에 투신해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업가로 변신, 30년 된 수산물 유통회사에 회장으로 취임했다. 아무리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다지만, 이렇게 양극단을 오가는 일도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냥 겉모양새만 변한 것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에 한 달 월급이 많을 때는 5천만 원 정도. 지금 시점에서도 한 달 월급이 5천만 원이라면 깜짝 놀랄 만한데, 당시는 더욱 큰 금액이 아닐 수 없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지었던 빚을 갚는 일도 한순간이었다. 이렇듯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살아온 사람은 바로 유앤아이월드 정영기 회장. 그는 지난 2015년부터는 재경보은군민회 회장을 맡아 고향 사랑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렇게 놀랄 정도로 변신하는 그의 탁월한 능력과 인생 철학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당당한 도전, 최고 점수로 로열호텔 입사

전국관광연맹노조 로얄호텔 노조위원장, 전국관광연맹노조위원장, 민주노총 간사, 감사, 부위원장, 최저임금심의 위원회, 노총 서울시 지도위원 이름만 들어도 노동운동계에서는 잔뼈가 굵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25년의 기간 동안 지부장 선거를 비롯해 총 10번의 선거를 치렀으며, 전국관광연맹노조위원장은 10년이나 역임했다. 그의 삶은 온통 노동운동에 투신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의 이런 삶은 앞으로도 지속되리라 생각하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 회장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과감하게 노동자의 입장에서 사용자의 입장이 되어보는 도전을 하기로 했던 것. 이러한 그의 도전 정신은 무일푼으로 살아온 그의 삶 자체에서 용솟음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저는 고등학교 졸업한 후 무일푼으로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아는 사람도 없고 전문기술도 없었죠. 결국, 군대를 다녀온 뒤에 관광과 관련된 학원에 들어갔습니다. 관광이라면 돈 많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앞으로도 번창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학원 졸업 후 의무사항인 관광공사에서 3개월 동안 연수를 하게 됐고, 그 당시에 로열호텔에서 사원을 뽑기 위해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저는 농고 출신이라 아예 서류 면접에도 통과가 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그때 제 인생에 최초의 도전이라는 것을 해봤을 것입니다.”

명동 한복판에 있는 로열호텔에서의 근무 기회를 잡기 위해 그는 무작정 면접관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비록 제가 농고를 나온 탓에 저를 서류에서 배제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난하게 자라서 서울에 와보니 관광업이 매우 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이 분야에서 근무하며 관광업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 도전하고 있는 중입니다. 잘 봐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한 청년의 당돌한 일장 연설(?)’에 면접관들은 너털웃음을 터뜨렸고, 결과적으로 정 회장은 최고 점수로 당당히 로열호텔에 입사할 수 있게 됐다.

젊은 시절의 정영기 회장은 근육으로 단련된 단단한 몸에 그때의 말로 육체미를 과시했다고 한다. 직원들끼리 야유회를 갈 때 사회도 보고 레크리에이션도 진행하다 보니 어느덧 노조의 대의원이 되고, 지부장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당시의 열악했던 노동자의 현실도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노동운동을 오래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치권하고도 가까워지게 됐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 당시 다음 대선 후보에 나선 이인재 후보를 지원하게 됐다. 이 후보가 한때 노동부 장관을 할 때 맺었던 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경선기간 동안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함께 돌며 모든 유세에서 사회를 맡을 정도로 헌신을 했다. 하지만 막상 이 후보가 경선에서 탈락을 하자, 정 회장 역시 이제는 더 이상 로열호텔에서 근무하기가 힘들었다. 특히 25년을 일했으니 이제는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입사 얼마 후 회장직에 취임

그런 그에게 새로운 인생의 전기를 마련해준 사람이 바로 함께 선거운동을 했던 지인이었다. 그는 당시 무려 30년이나 되었던 에덴수산의 사장님을 소개시켜 주었던 것. 그러면서 수산물 유통 분야에서 한번 일해 보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바닷가에서 자라지도 않았고 낚시 한번 해보지 않은 그가 수산물에 대해서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로열호텔을 그만두고 헌책방에서 <남자의 후반생>이라는 책을 우연하게 접했습니다. 중국의 위인들 중에서 인생 전반부와 후반부가 완전히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예를 들면 60세까지 백수로 지내다가 갑자기 장관이 된 사람이나, 혹은 인생 전반기에는 나라를 세웠지만, 후반기에는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책을 읽고서 나도 이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로열호텔 입사할 때 도전을 했던 것처럼 또다시 저에게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처음 에덴수산의 사장님은 그가 전국의 호텔에 많은 인맥이 있다는 것을 무척 매력적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25년이나 호텔업계에 있었으니 호텔 인맥만큼은 전국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장님은 그에게 한 달에 월급을 얼마 주면 되겠습니까?”라고 물어왔다. 그때 정 회장은 사장님 바로 아랫서열은 누구이며 그가 받는 월급이 얼마 정도인지요?”라고 물었다는 것. 그러자 공장장이 최고 월급을 받으며 230만 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정도 문답이 오가면 갈 곳 없는 백수인 정 회장 역시 그럼 저도 그 정도 주시면 됩니다라고 답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그는 월급은 필요 없으니 제가 일한 만큼 벌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라고 말했던 것. 정 회장은 당시의 일을 회상하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기왕 새로운 도전을 하는 바에야 나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내 인생의 후반부를 개척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수산물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어 한 5개월 정도는 고생했습니다. 특히 과거 인연이 있었던 노조를 통해서 영업을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저 혼자의 힘으로만 하려다보니 힘에 부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6개월째부터 월급이 공장장 수준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1년이 지나자 1,000만 원, 2,000만 원, 심지어는 5,000만 원까지 올랐습니다. 직원들에게는 매달 월급날 내가 어느 정도의 월급을 가져가는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될 정도였습니다.”

정영기 회장이 이렇듯 놀라운 실적으로 보이자 에덴수산의 사장은 그에게 회장직을 흔쾌히 내주었다. 물론 월급 없는 영업직 회장이기는 했지만, 입사한 지 1년 밖에 되지 않은 사람에게 그렇게 하는 것은 마치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5년 정도를 하게 되자 에덴수산의 사장님은 부동산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됐고, 그때를 계기로 결국 정영기 회장 역시 유엔아이월드라는 이름으로 본격 수산물 유통회사를 창업하게 됐다. 자의 반 타의 반의 창업이었지만, 그에게는 또 한 번의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에게 도전은 힘들고 괴로운 것이 아니라 이른바 자신의 놀이터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저는 한번 일하기 시작하면 최선을 다해서 몰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노동운동을 할 때도 그랬고 수산물 영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마도 자신이 즐기면서 일을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성과를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한번은 노량진 수산물 시장은 저의 최고의 놀이터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오면 친구도 만나고 밥도 함께 먹고 돈도 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저에게는 최고의 놀이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죽을 때까지 새로운 도전을 한다

그의 몰입 정신이 만들어낸 것이 또한 노량진 수산물시장 최초의 HCCP(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인증이다. 이는 여느 업체들도 모두 부러워하는 것으로서 정 회장은 이 인증을 2개나 가지고 있다. 그만큼 합리적이고 위생적인 경영을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는 이야기다.

더불어 그는 지난 2015년부터는 재경보은군민회 회장을 맡아 향우회를 이끌고 있다. 그간 무일푼에서 시작해 이렇게까지 성공을 거둔 만큼, 이제는 고향의 후학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

제가 처음 취임식에서 한 말이 바로 영호남 향우회보다 더욱 활성화된 전국 제일의 군민회로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취임하자마자 원로선배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 조직에 착수했으며, 여성회, 청년회도 조직 작업에 들어갔으며 지금은 거의 완성된 상태입니다. 앞으로는 사방으로 흩어진 보은군민들의 힘을 하나로 결집해 재경보은군민회를 명실상부한 보은을 대표하는 조직으로 만들 것입니다.”

정 회장이 새운 회사 유앤아이라는 사명의 뜻은 영어로 너와 나(You and I)’라는 의미이다. 이는 노동운동에서도, 사업에서도, 그리고 군민회 회장직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도, 사람을 중심에 놓는 그의 철학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꿈을 이루기 위해 죽는 날이 곧 정년 퇴임의 날이라며 꿈을 위해서는 열심히 일하고 건강관리를 잘하라고 당부한다. 그의 드라마틱한 도전의 삶은 평범한 우리에게도 열정을 심어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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