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8:05 (금)
[칼럼]잘 늙어간다는 것-조영환 남화토건 전무이사
[칼럼]잘 늙어간다는 것-조영환 남화토건 전무이사
  • 조영환
  • 승인 2019.03.16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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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마의 휴일(1955)의 촬영 장소중 하나인 트레비 분수
영화 로마의 휴일(1955)의 촬영 장소중 하나인 트레비 분수
 
사람이 어떻게 품격 있게 나이 들어 갈 것인가. 특히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은 현명하고 우화한 인생 후반을 맞게 된다는 의미다.
사람은 날마다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의 강을 건넌다. 가는 길은 있어도 돌아오는 길은 없다.

그렇게 딱 한번 왔다 가는 인생이기에 ‘一生’이란 표현을 쓴다. 현재란 과거와 미래가 교체되는 순간이다.
우물쭈물 살다보면 어느새 현재가 과거가 되어 버리고 후회지심만 깊어진다. 해가 바뀌면 또 한 살 나이를 먹는다.
‘자연스럽게’ 느껴지던 나이 먹음에 싱숭생숭 해지는 고갯마루가 있다. 아마 그때가 ‘나이 든다’고 느끼는 순간이 아닐까.

나이 듦의 모습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좀 더 쭈글쭈글해진 피부, 또 누군가에게는 좀 더 평온해진 얼굴일 수 있다.
나이 듦에 따른 몸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특히 우리 한국 여성이 젊게 보이려는 성형수술 어떻게 생각하나. 최초에는 서양 사람인처럼 보이기 위해 열성적으로 성형수술을 했다고 본다.

나이가 들면 우리는 친구와 애인들이 우리의 껍데기만을 좋아했던 것이 아니기를 바라게 된다. 
외모가 사람의 본질은 아니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그만큼 과거가 두꺼워 진다는 뜻이다.

사랑은 세월을 관통한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보라. 두 작품 속에 사랑은 다르다.
나이든 사람들의 사랑은 젊은이들의 사랑이 가질 수 없는 깊이를 가진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가 오드리 햅번이다. 1929년생. 
느껴지던 나와 거의 23년 나이 차이가 나는 배우지만, 그녀 전성기의 영화도 거의 내가 어릴 때 작품들인데도 이렇게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생전에 선행을 많이 하셨다는 개인사에 입각한 것도 아니다. 작품 속에서 매번 해맑은 그녀가 너무도 사랑스럽다.
특히 보고 또 보게 되는 1953년도 작 <로마의 휴일> 속에서 24살의 그녀는 마치 영원한 말괄량이로 남아 있다.

그러나 내 최애 작품은 67년도 작 <어두워질 때까지>.
여기서 햅번은 20대 청초함은 온데간데없고 영락없는 30대 후반 아줌마의 모습이지만(자세히 보면 얼굴에 주름도 있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 이 작품을 가장 사랑한다.
은 날 각광받았다가 시간이 흘러 세간의 시선에서 멀어짐에 따라 온갖 긴급조치(?)를 발버둥 치다가 스스로 망가지곤 하는 다른 여배우들에 비한다면, 시간의 흐름을 숨김없이 그대로 껴안고 있는 그녀의 당당한 쌩얼이 사랑스럽다. 이 작품을 계기로 해서 헵번은 은막(銀幕:영화계)에서 거의 은퇴를 하게 된다.
 
오드리 헵번은 2차 대전을 겪으면서 아프리카 나라들이 식량난에 고통 받는 것을 알았다.
1988년 유니세프 대사로 임명되어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부터 시작하여 여러 후진국가에 봉사 중에 암으로 1993년 64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감에 따라 절감하는 것은 시간은 내 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시간은 흐르면 흐를수록 내가 가졌던 것을 빼앗아 간다.
그것이 힘이든, 의지든, 창의성이든, 기회든 내게 허용된 나의 재산을 하나둘씩 앗아가며, 또 어김없이 성공한다는 점에서, 시간 저 녀석이 내 강력한 적이라는 사실이 서글프다. 연말이 되면 간만에 친구들이 모여 떠들곤 하는데, 언젠가부터 이 수다가 미래에 대한 설계보다는, 올 한해 내가 무엇을 이루어냈는지, 그래서 지금 내가 얼마나 풍족하게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경쟁으로 변질되는 것이 너무 서글프다.

언젠가부터 시간으로부터 무엇을 더 받을지 보다, 시간에 무엇을 덜 빼앗겼나를 자랑하는 것이 상대를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어가고 있음이 서글프다.
또 ‘아직 건재 하노라’ 스스로 세뇌해 시간을 이겼다는 일시적 환각을 만들고 그 안에 숨어버리는 우리네 발버둥이 서글프다.

하지만 저 경쟁은 시간의 절대적인 약탈 역을 공증하는 것과도 같다.
상대방을 관객으로 삼아 그 시선과 억지긍정으로부터 내가 덜 빼앗겼음을, 시간이라는 대도로부터 재산을 가장 덜 빼앗긴 자임을 인정받으려는 발버둥이다.

잘 늙는다는 것은 시간 앞에서 내가 마냥 건재할 수 없음을 당당히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될 터다.
난 그래도 빼앗기지 않았다고 아등바등 부정해봤자 시간을 이길 순 없다.
여배우의 전 재산일 젊음을 세월이 앗아가는 과정을 숨김없이, 부정치 않고 껴안는 헵번의 당당한 민낯이 사랑스러운 이유다.

그런데 하나 더. 오드리 헵번의 유작은 1989년 도 <영혼은 그대 곁에>다.
그야말로 주름 가득한 할머니의 모습인 그녀가 맡은 역은 천사. 그녀는 지상에 아직 지켜야 할 누군가를 남겨놓고 온 이를 시한부로 되돌려 보낸다.
허락된 시간은 끝났으나 그래도 남아 있을 내일에 희망을 걸어본 것이다.

이게 노년의 오드리가 이 영화에 출연을 결정함으로써 하려던 마지막 대사는 아닐까.
비록 시간은 모든 것을 앗아가나 내일을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이것이 시간을 이기는 유일한 길이라고.
잘 늙는다는 것은 시간에 전 재산을 빼앗겨도 꿈이라는 마지막 재산만은 빼앗기지 않는 것이라고 전하련다.
다시 새해다. 2019년에도 숱하게 꿈꾸고, 숱하게 시간에 승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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