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8:05 (금)
더 달라는 노동계 더는 줄 수 없다는 경영계…일촉즉발의 뇌관, 탄력근로제
더 달라는 노동계 더는 줄 수 없다는 경영계…일촉즉발의 뇌관, 탄력근로제
  • 유시온
  • 승인 2019.03.1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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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노위로는 부족했다. 지난해 11월 22일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겠다며 야심차게 출범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다는 재계와 하나라도 더 뺏어오겠다는 노동계의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 협상시한을 하루 지난 19일, 간신히 합의에 이르렀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탄력근로제를 사이에 둔 경영계와 노동계의 반목
논란은 있었다. 과연 사회적 대화가 이뤄질 것이냐.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기 위한 최소한의 양보가 노동계에서 나오겠느냐는 우려가 말이다. 이런 우려를 묵살하며 지난 11월 정부는 한국노총을 중심으로 노사위를 결성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 노동계는 양보하지 않았고 정부는 무력했다. 산업의 대변혁기에 귀중한 3개월이라는 시간만 헛되이 보낸 것이다. 노동계가 반대하는 탄력근로제는 최저임금 누적상승률 30%(2017-2018), 주52시간 근무제 등을 도입하며 재계가 막대한 양보를 한 것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라 표현할 수 있다. 탄력근로도 결국 ‘노동총량제’의 원칙에 따라 노동시간의 총량은 같기 때문에 집중근로 후 노측의 노동시간은 조정을 받게 된다. 근로기준법 51조에 근거한 탄력근로제는 사측과 노측 대표의 서면 합의에 따라 3개월을 단위기간으로 초과 근무를 허용하고 있다. 3개월까지만 적용되던 탄력근로제가 이번 2.19 합의를 토대로 6개월로 확대됐지만 여러 가지 사족이 붙어 난항이 예상된다. 우선, 탄력근로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노조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또한 사측과 노동자 개인의 1대1 협상을 불허한다. 사실상, 경영계가 얻은 것은 ‘탄력근로제 6개월 단위기간’이라는 허울뿐이다. 노동계는 향후 임금 협상 카드로 탄력근로제 동의 등을 빼 들 전망이다. 아울러 이번 합의로 노동계측은 11시간 휴식보장제와 탄력근로로 인한 임금보전 등을 얻어냈다. 시장과 업계의 요구에 맞춰 탄력적으로 노동자의 근로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탄력근로제는 오래전부터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재계는 노동계가 요구하는 많은 요구들을 들어주는 대가로 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하나만을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넝마’ 상태로 통과됐다. 이런 가운데,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이 지난 1월 내뱉은 발언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노총 회장은 노동조합원의 투표로 선출되는 만큼 인기영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발언이다.
 
그는 노조의 ‘실적 챙기기’를 비판하며 “노동조합 측에서 임금이 인상되는 것처럼 착시 효과를 냈다”며 임금체계가 엉망이 된 것은 노조 탓이라고 작심발언을 했다. 결국 노총 간부들이 인기에 얽매여 있는 작금의 노총 시스템에서는 국가의 미래를 위하는 사회적 대화는 공염불일 공산이 크다. 그들이 더 많은 노조 조합원의 표를 받기 위해 더 자극적이고 더 이기적인 정책을 공약할 것은 당연하다. 노동계의 한 축인 민주노총은 아예 경사노위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18일 탄력근로 제도 개선을 논의하던 경사노위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는 마감기한을 19일로 하루 더 연장했다. 주어진 3개월이란 시간동안 허송세월을 보내다 그동안 뭐했냐는 사회적 질타에 내몰려 급하게 논의 기한을 연장하는 모양새다. 이 사이 산업 현장은 기한 없는 기다림에 몸살을 앓았다.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에는 참여하지 않은 채 사회대변혁 투쟁에 나서겠다고 선포하는 등 사회적 갈등을 전방위로 증폭시키고 있다. 민주노총은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총파업과 총력투쟁을 골자로 하는 요구안을 발표했다. 이 요구안에는 탄력근로기간 확대 반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 최저임금 개악 중단, 제주녹지국제병원 허가 철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이 포함됐다. 경사노위 불참을 선언한 민주노총은 장외에서, 경사노위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노총은 장내에서 노동계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병진(竝進)적 구조로 정부와 경영계를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를 규합해 국가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정부와 여당은 노총의 움직임에 마땅한 대안 없이 끌려 다니고 있는 형세다. 내년 4.15 총선을 의식한 정치권에서 노동계 일각의 목소리에 제대로 된 타개책을 내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도 힘을 얻고 있다. 

관계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이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사회적 타협으로 정책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는 1월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내용을 담은 개편방안을 발표한 후 전문가 토론회, 대국민 써베이를 거쳐 세부사항을 다듬고 있다. 지난 14일 발표하려던 세부방안은 관계부처 협의와 당정협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연기됐다. 정책 결정을 사회적 대화 구성체에 일임하는 현 정부의 정치 기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목진휴 국민대 행적정책학부 교수는 매일경제와 진행한 대화에서 “‘사회적 대타협’기구는 일종의 ‘책임 떠넘기기’ 일 수 있다”며 특히 현 정권 들어 주요 현안이 사회적 대타협으로 넘어가는 빈도가 높아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런 결정방식은 대화 주체가 다원화된 만큼 정책이 실패했을 때 책임 소재가 모호해진다. 정부로서는 감당해야할 정책적 리스크가 현저히 줄어드는 것이다. 그는 “현재 양상만 보면 그렇게(사회적 대화 기조로) 흘러가는 것 같다”며 우려를 표했다. 고용부는 지난 18일 뒤늦게 고용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고용 비중이 높고 전후방 파급 효과가 큰 주력 제조업의 고용 감소 폭 확대는 심각한 상황"이라며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지만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노측과 사측의 첨예한 입장차
경사노위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는 지금까지 7차례의 전체회의를 가졌다. 하지만 노측과 사측의 입장차가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선, 경영계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최대 1년까지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노동계는 각종 조건들을 붙이며 6개월이상의 합의안에는 반대의견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이 탄력근로제 등 노동현안에 발 묶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OECD 주요국은 일찌감치 국민적 타협을 이끌어내 앞서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은 1주, 1개월, 1년 등 3가지 유형으로 나눠 사업장별로 선택할 수 있는 유연성을 보이고 있다. 또한 독일의 경우 6개월을 기본으로 단체협약 등에 따라 최대 1년까지 허용하고 있다. 영국도 단체협약에 따라 최대 1년까지 단위기간을 인정하고 있다. 이 밖에도 프랑스는 3년의 단위기간을 두고 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는 시대적 요구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었다. 노사합의 없이 실질적으로 운용이 가능한 것은 3개월에 불과하다. 3개월을 초과해 운용하려면 임금보전과 11시간 의무휴식, 노조와의 합의가 요구된다. 이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며 분석까지 나온다. 강경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탄력근로제를 운용하기 어렵다는 게 경영계의 시각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
미국, 일본, 프랑스, 중국 등 세계 주요국에서는 규제개혁, 혁신성장, 노동개혁을 단행하며 ‘기업모시기’에 나서고 있다. 경영계는 선진국의 기준을 예로 들며 단위기간을 1년으로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그 답으로 경사노위 카드를 빼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월 경사노위를 창설하며 “자문기구가 아니라 의결기구라고 생각하겠다. 경사노위에서 합의하면 반드시 실행하겠다”고 밝혔다. 노동계의 반발을 다분히 의식한 발언이다. 선택의 공을 경사노위에 넘겨버린 것이다. 경영계는 겨울과 여름 같은 계절적 수요에 민감한 서비스업이나 납품기한을 맞춰야 하는 제조업과 건설, 게임, 조선 등 집중 근로를 해야 하는 업종은 집중근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건설업의 경우 공기 단축이 경쟁력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국내 건설업이 해외 수주 시장에서 선전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빠르고 신속한 공사에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장치산업과 조선, 건설, 방송 등은 지금의 탄력근로제로 해결할 수 없다”며 정부에 유연한 정책을 주문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6개월을 최대기간으로 못 박고 있어 노사의 교착상태는 지속될 전망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포부는 단순한 수사로 끝날 것인가. 수개월간 지속된 지지부진한 논의의 끝에, 미래세대를 위한 희생과 고통분담의 첫발을 내딛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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