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으면 편안해진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소유’의 개념으로 지탱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에서도 ‘누가 더 많이 가졌나’, ‘누가 더 좋은 것으로 가졌나’의 프레임에서 사고하는 것에 매우 익숙합니다. 하지만 내가 뭔가를 소유하게 되면, 그것을 지키고 싶은 욕망이 시작되고, 그 욕망은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타인을 배격하게 됩니다. 자원은 어차피 한정되어 있으니, 남의 소유가 늘어나면 나의 소유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사회 질서 속에서 ‘비움’, ‘내려놓음’이라는 덕목은 반(反) 자본주의적인 어리석음으로 비치고, 가난과 열등을 부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소유가 아닌 ‘행복’과 ‘자아’라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 소유야말로 나의 행복을 가로막고 버거운 욕심을 부르는 악덕이 됩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개인과 집단들 사이에서는 치열한 ‘소유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전쟁에 휘말리지 않고 스스로 멈추기 위해서는 ‘비움과 내려놓음’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현대인의 일상은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
여기 전쟁에 참여한 한 군인이 있다고 해봅시다. 늘 총을 들고 전선에서 적을 주시하며, 긴장에 휩싸여 있고, 어디서 총탄이 날아올지 몰라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생각은 온통 ‘내가 죽느냐, 상대를 죽이느냐?’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겠죠.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고상한 정신적 여유와 자유는 사라진 채, 피폐한 생존 경쟁만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불쌍한 상황에 부닥친 사람은 군인만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모두입니다.
우리는 종일 온통 지키고, 소유하고, 경쟁자를 배격하는 데에 온 관심을 쏟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워하고 속이고 짜증나는 일들에 둘러싸이게 되는 것이죠. 긴장은 풀리지 않고, 늘 경직된 상태에서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게 됩니다. 이러는 사이 근심이 계속되고, 풀리지 않는 문제는 쌓여가게 된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은 좋은 대학이라는 간판을 향해 무한 경쟁을 하고, 단 1점이라도 더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개성과 창의성은 속수무책으로 파괴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요즘 정치 분야는 바로 이러한 전쟁터의 재현입니다. ‘관점의 차이’가 진영의 차이를 만들고, 이것이 아군과 적군의 전선을 만들어냅니다. 정치인의 언어는 온통 투쟁의 언어들 일색입니다. ‘사생결단’, ‘탄핵’, ‘멸족’이라는 단어들이 서슴없이 정치인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옵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국가적인 차원에서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일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에서 본 군인 이야기를 다시 해봅시다. 전선에 있던 그 군인이 어느 날 총을 탁,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때부터 군인에서 ‘자유인’으로 변한 그 사람은 더 이상의 스트레스를 겪을 필요가 없고 생존에 대한 원초적인 근심에 쌓일 필요가 있습니다. 스스로 온전히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기 때문입니다. ‘내려놓음’이란 이런 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바로 행복으로 향하는 길이고 온전히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 됩니다.
빈 공간에 들어서는 자유와 행복
내려놓음을 실천하면 생기는 이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선 그 공간에 새로운 것이 들어섭니다. 군인이 손에 총을 쥐고 있을 때, 그 두 손은 다른 것을 쥘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총을 내려놓은 빈손에는 붓이 들릴 수도 있고, 쟁기가 들릴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차원의 자유가 생기게 되는 것이죠. 우리의 마음도 욕심을 향해 무한돌진할 때, 그 마음 안에는 다른 에너지가 들어설 수가 없습니다. 그 욕심을 내려놓지 않으면 더는 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비우면, 이제껏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들어서면서 나를 변화시킵니다.
내려놓는다고 무엇인가를 빼앗기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것을 채울 공간을 만드는 것이죠. 인류의 역사상, 자신의 욕심을 다 채우고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류에게 지혜를 준 성인(聖人)들 역시 결국에는 ‘빈손’으로 돌아가고, 좀 더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아쉬워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이뤄내지 못하는 것은 본인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에 가깝습니다.
1800년대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하원이었던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그의 저서 ‘자유론(On Liberty)’에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유를 지향하는 존재라고 설파했습니다. 우리가 내려놓지 못하고 욕심과 소유, 목표에만 매몰될 때, 그것은 바로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뭔가를 한꺼번에 내려놓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내려놓는 일에도 분명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부터 ‘하루에 하나씩 내려놓기’라거나 혹은 그것도 쉽지 않다면 ‘일주일에 하나씩 내려놓기’를 실천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내려놓은 그 공간에 자유와 사색, 여유가 들어서면서 인생의 참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