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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역술인, 그 오래되고 기묘한 관계
정치인과 역술인, 그 오래되고 기묘한 관계
  • 정하연
  • 승인 2021.11.03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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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역술인은 오랜 시간 동안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비단 우리나라의 문제만은 아니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의 정치인들이 그랬다. 모두 첨단 기술 중심의 국가이고 세계 경제력에서 상위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국가의 정치인들은 역술인, 무속인들을 가까이 두고 있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정치인의 숙명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 국민은 좀 더 한 대통령의 후보의 무속에 가까운 기이한 행동을 보았다. 바로 손에 왕()자를 그린 채 토론회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정치인과 역술인, 그 오래되고 기묘한 관계를 살펴본다.

 

동서고금, 정치에 참여했던 역술인들

1980, 당시 카터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서 그는 재선 도전을 선언했고 경쟁자는 공화당의 레이건 후보였다. 부인 낸시는 남편의 승리를 믿고 있었지만, 그래도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한 점성술사의 도움을 얻고 싶었다. 그 점성술사는 레이건이 반드시 이길 것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고, 정말로 레이건은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후 그 점성술사는 수시로 레이건의 정치 행보에 참여했다. 중요한 해외 정상과의 만남 날짜를 정하기도 했다. 낸시 여사는 그 점성술사의 말을 듣고 일정을 바꿀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히틀러에게도 에릭 하누센이라는 점성술사가 있었다. 그는 애초에 히틀러의 집권을 예언했으며, 이를 인연으로 히틀러와 수시로 만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놀라운 사실은 히틀러의 전략을 연구했던 영국 첩보 기관들 역시 점성술사를 동원했다는 점이다. 루트비히 폰 볼은 나치의 박해를 피해서 영국으로 이주한 뒤 히틀러가 의지하는 점성술사의 예언을 그대로 복사할 수 있다라는 황당한 이론을 펼치면서 영국 첩보기관을 현혹했다.

영국의 처칠은 바버라 해리스와 인연이 깊었다. 스탈린도 점성술사이자 최면술사였던 웰프 메신과 자주 이야기를 하곤 했다.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은 모리스 바세라는 군인이자 점성술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실제로 프랑스의 시사 주간지는 모리스 바세의 인터뷰를 실었으며, 당시 그는 자세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종종 샤를 드골 대통령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모리스 바세는 국민투표를 결심한 샤를 드골 대통령에게 점술에 의지해 반대의 의사를 전했지만, 대통령은 이를 강행했고 결국 투표에서 지면서 대통령직을 내려놓았다.

우리나라 정치 역사에서도 늘 무속인과 역술인들이 등장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점, 사주, 관상, 신점, 손금 등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오래 전 우리 어머니들이 물 한잔 떠 놓고 기도를 하는 것도 일종의 무속이라고 볼 수 있다.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당사를 옮기거나 대선에 나가기 전에 무속인의 말을 듣고 선친의 묘를 옮기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촌 선생은 꽤 유명했다. 그는 수시로 대통령의 신상은 물론 나라의 운세를 봐주었다. 박 전 대통령 역시 동촌 선생의 점괘를 매우 신뢰하면서 자주 보았다고 한다. 중요한 사실은 정치인들이 무속인과 역술인의 말을 듣는다는 사실에 대해 당시만 해도 언론과 국민이 크게 반감을 품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치인들과 역술인의 관계가 언론에 공공연히 노출되기도 했고, 심지어 1997년 대선을 앞두고는 기자들이 역술인을 찾아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를 기사화하기도 했다. 어쩌면 지금 같으면 언론사 자체에서도 허락하지 않거니와 찐 기레기라는 이야기를 들을 것이 뻔하다. 이후 우리 정치의 영역에서 무속인과 역술인이 완전히 퇴출된 것은 박근혜와 최순실의 관계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토론회(사진=국민의힘 유튜브)
국민의힘 대선후보 토론회(사진=국민의힘 유튜브)

되살아난 최순실 트라우마

촛불혁명을 촉발한 최순실은 박근혜 정부의 출범에서부터 관여했다. 그녀는 대통령 취임식 행사에 오방낭을 적용했고, 심지어는 은유적으로 취임식 전체를 하나의 굿판으로 만들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오방낭은 청, , , , 흑의 오색 비단을 사용해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만든 전통 주머니다. 인간과 우주를 이어주는 기운이 있기 때문에 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중 연설에서 기운’, ‘우주’, ‘하늘’, ‘과 같은 말을 자주 사용했다.

이것이 바로 하늘의 메시지다.”

교과서 전체를 보면 그런 기운이 느껴진다.”

바르게 역사를 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된다.”

정말 간절히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준다.”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러한 말들은 최순실의 영향을 깊이 받은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심지어 청와대에서 굿판이 벌어졌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기도 했고 최순실이 역술인의 말을 듣고 북한은 2년 이내에 망한다라는 말을 하고 돌아다녔다는 말도 있었다. 물론 모두 사실로 확인이 되지는 않았지만, 이런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국민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건 사실이었다.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동안 우리 정치사에서 무속과 역술은 금기시되다시피 했다.

그런데 이런 논란에 다시 불을 지핀 사람은 바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였다. 이제는 전 국민이 알고 있듯 손에 왕()자를 쓰고 토론회에 참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후 천공 스승’, ‘항문 침등의 기상천외한 말들이 등장했다. 같은 야권에서도 맹비난이 이어졌다. 심지어 무속 대통령이라는 용어까지 사용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와 관련한 국민의힘 경선 토론에서 윤 후보는 “(그런 사람은) 만나면 안 되나?”라는 말까지 했다. 정치인은 그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최순실 트라우마가 강하게 유발되었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언론은 윤 후보의 부인 김건희 씨를 주목했다. <UPI뉴스>는 지난 10월 초순, 복수의 인물로부터 확인한 보도를 했다. 그에 따르면 김건희 씨는 미신 중독에 가깝다’, ‘거의 모든 일을 역술인의 말에 의존해서 결정한다라는 것. 심지어 윤 후보의 손바닥에 쓰인 ()’자 역시 그녀가 쓴 것으로 보인다는 진술도 있었다.

물론 많은 사람이 살면서 한두 번쯤 재미로, 혹은 진지하게 점을 보곤 한다. 사업을 하기 전이라든지, 시험을 보기 전에 흔히 점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정치의 영역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무리 선거판과 정치적 운명의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해도 역술이나 무속에 의지하는 것은 국가 지도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나라의 운명에 큰 해악을 끼치게 마련이다. 또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국민이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길 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야권이든, 여권이든 무속과 역술에 의존하는 지도자는 외면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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