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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명상(瞑想)을 통해 고통을 극복하는 수행법
[칼럼] 명상(瞑想)을 통해 고통을 극복하는 수행법
  • 김태달
  • 승인 2021.01.19 1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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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전문지도사 김태달 박사

명상 (meditation)을 하는 목적이 일반인들에게는 마음 챙김을 통해 평온과 행복을 유지하기 위함이라면, 살아가는 삶 자체가 불행하지 않아야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불행 즉,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첫째. 모든 것이 인간의 지나친 욕망에서 기인한다. 인간이 추구하는 지나치고 잘못된 욕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바로 오욕락(五欲樂)에 찌든 삶에서 온다. , 5가지 욕망을 채우기 위해 집착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5가지는 무엇인가? 재물욕(財物慾), 명예욕(名譽慾), 식욕(食慾), 수면욕(睡眠慾), 색욕(色慾)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려는 것에서 모든 고통이 뒤따르게 된다. 둘째. 인식을 잘못함으로써 인해 발생할 수도 있다. , 우리 인간은 8개의 식()을 가지고 있는데, 1식인 안식(眼識) , 눈으로 인식하고, 2식인 이식(耳識) , 소리를 듣고 인식하고, 3식인 비식(鼻識)은 냄새를 통해 인식하고, 4식인 설식(舌識)은 맛을 통해 인식하고, 5식인 신식(身識/觸識)은 몸의 감촉을 통해 인식하고, 6식인 의식(意識)은 분별식(分別識)을 의미한다. 7식인 말나식(末那識)은 사량식(思量識)을 의미하는데, 사량(思量)이란 생각할 사(), 헤아릴 량() 인데, 잠재된 업식에 의해 판단을 내리는 의식, 즉 잠재의식을 나타낸다. 8식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은 이숙식(異熟識) 또는 장식(藏識) 또는 종자식(種子識)이라고도 하는데, 평상시에는 마음속에 저장되어 숙성되어 싹트고 있다가 어떤 계기가 되면 또는 유사한 상황이라고 인식되면 무의식적으로 불쑥불쑥 일어나는 의식 때문에 발생하는 고통이다. 셋째. 삼업(三業) , (). (). ()로 지은 업, 다시말해 몸으로 짓는 것은 신업(身業), 말로 짓는 것은 구업(口業), 생각으로 짓는 것은 의업(意業)에 의해서 일어나는 고통이다. 이 업은 또 그 행위가 좋고 나쁨에 따라 선업(善業)과 악업(惡業), 선에도 악에도 속하지 않는 무기업(無記業)으로 구별된다. 불교의 가르침은 이와 같은 삼업을 올바르게 단속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불교의 십선(十善)과 십악(十惡)은 삼업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 몸으로는 살생과 도둑질과 사음(邪婬:삿된 음욕)을 다스리고, 말로는 망어(妄語:거짓말양설(兩舌:상대를 이간질시키는 말악구(惡口:욕설과 험담기어(綺語:이치에 어긋나는 괴변) 등을 다스리며, 생각으로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은 마음을 다스리게 된다. 이와 같은 열 가지 가운데 몸에 관련된 것이 셋이고, 말과 관련된 것이 넷, 생각과 관련된 것이 셋이므로 신3(身三), 4(口四), 3(意三)이라고 한다. 삼업으로 십선을 닦으면 내세에 인간과 천상(天上)의 세계에 태어나게 되고, 십악을 많이 짓게 되면 지옥과 아귀(餓鬼)와 축생(畜生)의 과보를 받게 된다고 한다.

 

명상전문지도사 김태달 박사(사진=종합시사매거진 DB)<br>
명상전문지도사 김태달 박사(사진=종합시사매거진 DB)

참선 수행을 하기 전 우리는 먼저 인간의 존재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인간은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과정을 끊임없이 순환[輪廻]하고 있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우주의 법칙이다. 왜 이런 순환을 계속하게 될까? 그것은 인간의 8번째 식()인 아뢰야식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보통 말하는 업장(業障)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업장이란 우리가 짓는 악업(惡業), 즉 악한 행위로 인해 생기는 모든 장애를 말한다. 악업이 쌓이면 쌓일수록 내가 지은 그 악업으로 인해, 깨달음의 정도(正道)로 나아가는데 반드시 방해를 받게 되며, 정도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난관에 부딪히게 되는 장애를 만나서 가지가지 어려움을 겪고, 끝없이 고통을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 악업을 거듭해서 그 악업이 습관이 되고, 성격이 되어서, 생활의 바탕을 이룬 것을 두고 업장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업장은 자기가 저지른 악업이 제8식인 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다가 의식적으로 불쑥불쑥 나타나는 아주 무서운 것이다. 그리고 업장은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 아무도 대신 갚아줄 수가 없고, 스스로 쌓아온 것인 만큼 스스로 소멸시킬 수밖에 없다. 흔히들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고통을 받는가! 이렇게 탄식을 하기도 한다. 업장이란 전생의 빚이라 하기도 한다. 조상의 악업, 내 전생의 악업, 그리고 현생에서 나의 악업이 쌓여 그 업장이 두터우면 두터울수록 세상을 살아가는데 그만큼 장애와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법이다. 참선 수행은 바로 이 무의식 속에 저장된 업식(業識, 카르마)을 제거하는 것이요. 바로 이 업식을 없애는 것이 바로 업장소멸(業障消滅)이다.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Spinoza, Baruch de]의 철학에서, 에티카(Ethica) , 기하학적 순서로 증명된 윤리학(Ethics)의 모든 길은 내재성(內在性) 속에서 만들어진다. 고 했다. 내재성이란 어떤 사물의 안에 본디 갖추어져 있는 성질이나 경향을 의미한다. 그런데 내재성은 무의식 그 자체이며, 업장을 소멸한다. 는 것은 무의식의 정복을 의미한다. 그래서 흔히 "알긴 아는데 행동은 잘 안된다"라고 말한다. 이때 이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마음이다. 마음이라는 것은 이른바 우리의 카르마(Karma) , 업식으로부터 작용한다. 카르마(Karma), 윤회와 더불어 인도에 존재하는 모든 사상과 종교의 공통적인 바탕을 이루는 사상으로, 목적과 관계없는 행위나 수행을 뜻하며, ()으로 번역한다. 업식(業識)은 경계에 부딪히면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수행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무의식의 작용까지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이 말은 카르마를 소멸한다. 업장을 소멸한다. 업식을 소멸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려면 명상 및 참선을 계속 연습하고 반복해서 생활화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렇게 마음으로 받아들여질 때를 보통 '깨달아 안다'고 한다.


불교사상은 고()에서부터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고의 실재[], 고의 원인[], 고의 소멸[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27d8727a.t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6pixel, 세로 16pixel ], 고를 없애는 길[]인 사성제(四聖諦)는 석가모니의 첫 설법인 초전법륜의 내용이다. []는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體皆苦)와 함께 모든 존재의 속성, 즉 삼법인(三法印)의 근간이 된다. 그리고 생노병사(生老病死) , 사람이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인생사가 모두 고통의 연속이다. 몸이 변한다는 사실은 어린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고 다시 늙어가는 모습을 통해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 정신적인 사건 역시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무상(無常) 즉 항상 됨이 없다는 사실의 가르침을 체득하는 것은 불교에서 깨달음에 이르는 정신 과정의 첫 단계에 속한다. 무아(無我)와 함께 존재의 기본적인 삼법인[三法印]을 구성하며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올바른 수행방법인 8정도(八正道) 중 첫째로 꼽히는 정견(正見)의 내용을 이룬다.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고통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고통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 또한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고통은 크게 3종류가 있다. 고고(苦苦), 괴고(壞苦), 행고(行苦)가 그것이다. 첫째, 고고(苦苦)란 글자 뜻 그대로 고통 그 자체로의 고통이다. 즉 아픔과 괴로움으로 인한 고통을 의미한다. 예를 든다면, 몸을 누가 때렸을 때 발생하는 아픔의 고통을 말한다. 또는 누가 욕을 했을 때, 마음속에서 생겨나는 불쾌함의 고통을 말한다. 이로 인해서 발생하는 짜증과 스트레스 역시 고고(苦苦)에 해당한다. 둘째, 괴고(壞苦), 변화함으로써 생기는 고통을 말한다. 예를 들면, 변치 않을 것이라고 진정으로 믿었던 사람이 변심함으로써 겪게 되는 괴로움이 괴고이다. 또 세월에 장사 없다고 늙어버린 얼굴과 몸을 보고 괴로워할 때의 그 고통이 괴고이다. 모든 것이 다 변화해가는 것이라는 무상함에 대한 이치를 안다면, 이 괴고(壞苦)는 겪지 않을 것이다. 셋째, 행고(行苦)란 가장 근원적인 고통의 뿌리이고,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고통이다. 이 행고 안에 고고와 괴고가 포함되어 있다. 중생의 모든 행이 모두 고통이란 의미이다. 왜냐하면, 몸과 마음에 번뇌와 고통을 주는 5가지 덩어리인 오온(五蘊) , 인간을 구성하는 5가지 범주의 요소인 곧 물질적인 것을 의미하는 색(), 감각의 수(), 인식 작용의 상(), 의지 작용의 행(), 마음 작용의 식() 그 자체가 행고이다. 행고(行苦)를 겪는 주체는 바로 오온. 즉 내 몸과 마음이다. 몸과 마음으로써 끝없이 윤회하면서 겪는 고통이 바로 행고(行苦)이다. 이런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참선을 하는데, 참선 즉, (, jhāna, 자나)이란? ‘jhāyati’명상을 방해하는 심리적 요소를 태워버린다. 는 뜻이다.

 

()에는 4가지 단계가 있다. 마음이 한 곳에 집중된 상태를 선정(禪定)이라고 한다면, 불선(不善)한 행위와 심리적 상태를 분별하고 관찰하여 여읜 후에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 상태가 제1선이고 (savitakka, savicāra), 선악을 차별하는 기능을 놓아버린 후,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는 제2(pīti, sukha), 마음속에 무시 이래로 쌓여있던 고통, (), 스트레스, 응어리가 이미 풀린 상태에서 몸이 날아갈 듯 가벼운 것이 제3선이고 (sukha), 몸과 마음이 고통과 즐거움, 슬픔과 기쁨 등의 모든 감정으로부터 초월 된 상태가 제4선이다 (upekhā). 4선이 바로 평정한 마음의 상태이고, (, 4성제)을 있는 그대로 냉연히 바라볼 수 있는 최선의 상태이다. 선정을 경험한 후 초선에서 4선까지를 자주 드나들면서 제 7식인 아뢰아식 즉, 잠재의식에 남아 있는 감성의 묵은 때를 닦아내면 육신통, 특히 천안통과 숙명통이 계발되는 것이고, 4선의 선정을 경험은 했으나 선정을 자주 닦지 않고 지혜 쪽으로 계발하면 묵은 업장들이 완전히 씻기지 않아서 신통력이 더 계발되지 않게 된다. 선정을 더 강하게 닦아서 5신통을 얻은 후에 법의 눈을 얻든지 (양면해탈, 兩面解脫), 지혜를 더 강하게 닦아서 5신통 없이 4선에서 바로 법의 눈을 얻게 되는지 (혜해탈, 慧解脫)는 정()의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 생각을 쉬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생활을 살펴보면 모든 것이 불만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 듯이 보일 때가 있다. 그 이유는 잡다한 생각을 쉬지 못하고 어리석게 집착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망념과 사념(邪念)과 허영심과 분별심을 버리면 이 세상이 곧 극락이고 이 마음이 곧 부처라 하였는데, 이와 같은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마음을 쉬는 공부인 선정을 닦을 것이 요구된다. 전통적으로 불교에서는 이무심정(二無心定사공정(四空定사정(四定팔정(八定구차제정(九次第定) 등의 수행 방법이 제시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원효(元曉)가 주창한 구심주법(九心住法)과 좌선의 행법이 보편적으로 채택되고 있다.

 

초기불교에 오정심관(五停心觀)이라는 불교 수행법이 있는데, 오정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중국 동진(東晉)의 승려인 혜원(慧遠: 334~416)이 저술한 대승의장(大乘義章)에 수록되어 있어, 인도 불교의 명상법을 중국 불교의 입장에서 계승하여 체계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5종류의 고통과 번뇌 작용을 멈추기 위한 관법 수행이다. 오정심관이란 말은 5가지의 중생심을 정지(停止)시키고 바라본다는 뜻인데, 중생의 근본 번뇌인 탐··(··) 삼독심(三毒心)과 산란심(散亂心), 그리고 중생의 업장을 5가지 관심법(觀心法)으로 다스리는 것이다. 이들 번뇌를 다스리는 수행 관법은 다음과 같은 5가지 관법을 통해 마음을 다스린다. , 탐심(貪心)이 많은 사람은 부정관(不淨觀)으로, 진심(瞋心)이 많은,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자비관(滋悲觀)으로, 치심(癡心)이 많은,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관(因緣觀)으로, 평상시 심신이 산란(散亂)한 사람은 수식관(數息觀)으로, 자만심이 많은, 나에 대한 집착(업장)이 강한 사람은 불상관(佛相觀) 또는 계분별관(界分別觀)을 통해 수행하게 된다. 계분별관(界分別觀)에서 계()란 범주(範疇)를 나타내는 것으로 5, 12, 18계를 말한다. 업장이 두터운 사람은 인연관과 계분별관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계분별관 대신 불상관(佛相觀)을 넣기도 한다. 부정관은 모든 육체의 더러운 것을 관()하여 탐욕을 그침을 말하고, 자비관은 모든 중생에게 자비심을 내어 관()하여 성냄을 그침을 말하고, 인연관은 모든 인연을 관()하여 어리석음을 그침을 말하며, 수식관(아나빠나삿띠 Ānāpānasati, 입출식념) Ānāpāna(입출식), sati()을 의미하는데, 입출식념(入出息念)은 들숨과 날숨 호흡을 세며 마음을 고요히 하는 마음챙김법이다, 초기경전에 의하면 붓다는 날숨과 들숨에 마음을 챙기는 '아나빠나삿띠'로 사념처 즉, 신수심법(身受心法)을 완성하고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염불관은 불보살을 생각하며 모든 번뇌를 그치게 하는 수행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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