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23:35 (토)
[Serial]‘나를 찾아 떠나는 유라시아 대평원’, 코소보편
[Serial]‘나를 찾아 떠나는 유라시아 대평원’, 코소보편
  • 함영덕
  • 승인 2018.02.20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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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편

동유럽의 이슬람국가 코소보의 프리젠(Prizen)

 

오후 4시 코소보 행 버스 편에 올랐다. 스코피아의 뒷골목과 시장터를 구경한 것이 가장 인상적이다. 4시 40분 코소보 국경지대에 도착하니 차량이 많이 몰려있다. 차창밖에 무슬림 모스크도 간간히 나타난다. 버스가 1시간 이상 첩첩히 쌓인 산허리를 돌았다. 마치 강원도의 어느 산골짜기를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산야엔 흰색과 노란 들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슈와렉까시를 지나 프리젠시에 도착하여 프리젠니호텔에 알렌과 둘이서 방을 하나 구했다. 오랜만에 알렌과 편안히 하루 밤을 보내고 호텔에서 제공하는 빵과 계란 튀김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짐을 호텔 카운터에 맡기고 알렌과 도시 구경을 나왔다.  

 


 

거리의 골목길을 정처 없이 걷다가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플라타나스가 우거진 식당 앞 천막 카페에서 케밥과 샐러드를 곁들여 점심을 먹었다. 질척거리는 도로 한 켠에서 학창시절 귀에 익었던 엘콘돌 파사의 노래 가락이 흘러나와 마음을 흔들었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따끈한 차 한 잔이 실핏줄을 따라 온몸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프리젠은 코소보에서 두세 번째 가는 도시지만 우리나라의 작은 시골 도시를 연상하면 된다. 도시 곳곳에 이슬람 사원이 세워져 있으나 차도르나 히잡을 쓴 여인은 거의 볼 수 없다.  

 

세르비아의 니스 행을 포기하고 알랜과 시내를 굽어볼 수 있는 언덕을 올랐다. 산중턱을 오르다 보니 1998년 3월 코소보사태 때 일어난 살인과 방화로 불에 탄 문짝과 붕괴된 주택들이 곳곳에 방치된 채 잡초더미 속에 묻혀있다. 이슬람과 기독교 간의 종교적 갈등이 평화로웠던 삶의 터전을 폐허로 만들고 인종청소라는 대재앙을 초래했다. 이념적 대립은 지구상 한반도에 유일하게 남아 마지막 결과를 기다리고 있지만 종교적 갈등은 여전히 세계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코소보 사람들의 결혼식 피로연과 마케도니아 행 야간버스

오후 5시 몰다비아공화국으로 떠나는 알렌을 마중하고 호텔에 돌아오니 1층 연회장에서 결혼 피로연이 한창이다. 밤 12시에 출발하여 내일 새벽 5시경에 마케도니아 스코피아에 도착하는 버스표를 구입했다. 5시간 정도 버스를 기다리기에는 너무 지루하여 결혼피로연을 구경했다. 테이블에 음식을 시켜놓고 빙 둘러 서서 손을 맞잡고 흥겹게 춤을 춘다. 어린아이나 노인 할 것 없이 손을 잡고 음악에 맞춰 가볍게 춤을 추어도 격조와 품위가 있다. 마치 강강수월래를 하듯 한 덩어리가 된 큰 원은 가족과 친지들을 엮어주는 공동체의 운명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악사들의 연주가 끝나고 배우자와 가족들이 호텔 입구에 서서 하객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이슬람교도라 테이블 위에는 음료수를 제외하고 술은 보이지 않았다. 악사들의 흥겨운 노래 가락에 나도 모르게 어깨춤이 절로 나고 흥겨워졌다.  

 

수천 만 원을 호가하는 호텔의 꽃 장식과 비싼 호텔음식, 축의금을 내고 인사 한번 나누고 곧장 식당으로 가서 총총히 예식장을 빠져나오는 우리의 결혼문화를 보면 느끼는 바가 많다. 그나마 사회 일각에서 지도층 인사들의 작은 결혼식 서약식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다소나마 위안을 준다. 많은 젊은이들이 과도한 결혼식 비용과 혼수문제로 갈등을 겪는 도를 넘는 우리의 결혼문화는 저출산과 결혼지연으로 사회적 비용을 가중시키고 있다. 함께 축하해주고 즐거워하는 코소보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왠지 마음이 씁쓸해졌다.

   



영국 BBC방송이 발렌타인데이를 맞이하여 방영한 북한 처녀와 베트남 총각의 40년 사랑이야기를 접하면서 진정한 사랑과 결혼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외교관 집안이었던 23세 베트남 청년 팜 녹 칸(Canh)씨는 북한으로 가는 유학생으로 선발돼 북한 함흥화학공업대학에서 공부를 하다 1971년 흥남비료공장에 실습을 갔다. 화학실험실에서 우연히 마주친 북한 여학생 리영희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은 1년 6개월 간 연애를 했지만 당시 베트남정부가 국제결혼을 금지하고 있었기에 결국 1973년 홀로 귀국할 수 밖에 없었다. 귀국 후에도 일 년에 몇 번씩 서신을 왕래하며 1978년 함흥비닐론공장 실습을 위해 방북하면서 다시 만나“계속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그럼 나 할머니 된다”,“당신은 할머니 돼도 나의 영희다, 괜찮다”라며 서로의 사랑을 키웠다. 1992년 북한당국이 북한주민과 외국인과의 접촉을 강력히 반대하는 바람에 리씨의 편지마저 끊겨버렸다. 리영희씨의 마지막 편지엔“나이를 먹을지라도 우리의 사랑은 영원히 젊어요”라고 적혀 있었다.

 

칸씨는 20여 년에 걸쳐 주고받은 편지를 들고 베트남 주재 북한대사관을 찾아“리영희씨의 소식을 듣고 싶다. 생사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사정을 했다. 북한 당국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은“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했거나 죽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칸씨는 북한정부의 말을 믿지 않았다. 2001년 베트남 정치권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은 칸씨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베트남대통령과 외무부장관에게 사연을 알리는 편지를 썼다. 몇 달 후 칸씨는 북한당국으로부터 리영희씨와 결혼을 허락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듬해 55세 리영희씨와 54세 칸씨는 하객 700여 명의 축복을 받으며 베트남 하노이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엄혹한 통제체제의 국경과 이념을 넘어 30년이라는 세월을 한결같은 믿음과 사랑으로 지켜온 그들의 애틋한 사랑은 투명하며 아름답고 순결하다. 마네킹같이 영혼 없는 미소를 짓고 자판기 같은 인스턴트 사랑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또한 우리들의 사랑과 결혼문화가 물질적 조건에 너무 사로잡혀 있지 않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영어 love의 어원은 산스크리스트어의 로바(lobba)이다. 로바는 탐욕, 욕정을 의미한다. 일반적인 사랑은 탐욕과 욕정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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