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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al] 나를 찾아 떠나는 유라시아 대평원 이탈리아편
[Serial] 나를 찾아 떠나는 유라시아 대평원 이탈리아편
  • 함영덕
  • 승인 2018.06.11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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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반도를 넘어 베네치아로  

오후 3시 50분 이탈리아 행 기차에 올랐다. 기차는 집에 돌아온 것처럼 편안했다. 비가 그치고 옥수수 밭과 숲속의 맑은 햇살이 눈부셨다. 오후 7시 세자나역에 도착하여 여권검사를 하고 이탈리아 빌라 오피시나역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건물 앞면에 돌을 부치는 건축양식과 철도 연변에는 작은 관목 숲이 자라고 있어 슬로베니아의 풍경과는 대조적이다.  

 

저녁 7시 50분 바다가 조금씩 얼굴을 드러냈다. 항구에 뿌려놓은 밤바다의 불빛들이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섰다. 밤 10시 20분에 베네치아의 산타루치아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리자 역 앞은 물바다였다. 이제껏 느꼈던 도시와는 달리 도로가 물길로 넘실거리는 풍경에 난감해졌다. 숙소를 어떻게 구해야 할지도 전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소형 배들이 역 앞에 빽빽하게 정박해 있었다. 젊은 대학생들이 한 팀이 되어 오르는 배에 무작정 따라 승선했다. 배에는 바포레토라고 불리는 수상 버스와 모터보트인 택시, 그리고 곤돌라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바포레토가 값도 싸고 이용하기가 편해 대중적이다. 운하위로 드리운 커다란 다리 밑을 통과하자 도시의 불빛과 가로등이 눈부시게 물결 위를 비추었다. 수많은 도시를 거쳐온 내 눈 앞에 전혀 새로운 빛깔의 도시가 펼쳐졌다. 177개의 운하와 118개의 섬과 400개의 다리가 놓여 져 있는 아름다운 수상도시 베네치아의 표정은 환상적이다. 물의 도시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자동차가 한 대도 없는 곳인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베네치아는 유스호스텔이 매우 귀하다. 대학생들을 따라 섬에 도착하여 유스호스텔의 방을 구했으나 예약이 꽉 차 있어 되돌아 나왔다. 갑자기 밤바다의 미아가 되었다. 유스호스텔 직원이 가르쳐준 저렴한 산타 포스카호텔을 가기 위해 처음 도착했던 산타 루치아역으로 다시 되돌아 나가야 했다.  

 

베니스는 지금 세계 각국에서 모여드는 영화인들 때문에 방을 구할 수 없을 뿐더러 베니스영화제와 더불어 베니스건축제가 겹쳐서 방 잡기가 하늘에 별따기라고 지나가다 만난 우리나라 청년이 알려주었다. 새벽 2시에 간신히 찾은 산타 호스카호텔도 만원이었다. 겨우 인근에 있는 호텔을 하나 발견했으나 예상보다 비싸 산타 루치아역으로 되돌아 나왔다. 대합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현관에 신문지나 종이를 깔고 누워있는 젊은이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다. 대리석 바닥이 너무 차가워 신발과 모자를 벗고 그 위에 앉았다. 기차역 주변 노점상에서 빵 한 덩이를 샀다. 꿀맛 같았다.  

 

비가 조금씩 떨어지고 천둥이 간간히 지나갔다. 배낭을 현관문에 세우고 등을 기대어 잠을 청해보았다. 차가운 대리석 위에서도 코 고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새벽 5시경에 대합실 문이 열려 얼른 벤치를 하나 잡았다. 카메라와 캠코더를 양손에 잡고 토막잠을 잤다. 아침 7시에 잠이 깼다. 베네치아에서 꿈꾸었던 아름다운 밤은 노숙자의 신세로 허망하게 사라졌으나 몇 시간의 토막잠이 비싼 호텔요금을 대신했으니 기분은 오히려 좋아졌다.  

 

아침 식사로 제과점을 찾았다. 빵과 물을 사서 수로 옆에 위치한 주택가 계단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집 주변의 비둘기들이 내 주변으로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빵 부스러기를 던져 주었다. 순식간에 수십 마리의 동네 비둘기 떼들이 몰려와 주변을 서성이며 부산을 떨었다. 구구거리며 모여드는 녀석들의 모습이 여간 귀여운 게 아니다. 빵 부스러기를 더욱 잘게 부수어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참새 한 마리가 그 많은 비둘기 떼 틈에 끼여 빵 부스러기를 쪼아 먹으려 애쓰지만 차례가 가지 않았다. 헛물만 켜는 게 안쓰러워 귀퉁이에 서성거릴 때 빵부스러기 한쪽을 던져주었다. 녀석은 잽싸게 물고는 담 너머로 날아갔다. 같은 동네에 살다보니 참새마저 비둘기의 배짱과 습성을 닮는 것 같다.  

 

12시경 리도섬으로 출발했다. 도시 한 가운데 섬과 건물이 떠 있는 풍경은 베네치아만이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전경이다. 뱃길로 35분 정도 걸려 리도섬에 도착했다. 해변 가엔 다양한 영화들이 상영되고 있다. 리도의 해변 가엔 넓은 백사장이 해안선을 따라 펼쳐져 있다. 뜨거운 햇살아래 그림 같은 방갈로들이 박제된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바닷가에 발을 담그고 잠시 아드리아해의 잔잔한 물결을 굽어보았다. 먼 바다에 떠 있는 화물선과 리도섬의 건물들이 어우러져 비밀의 정원에 숨겨 논 한 폭의 수채화 같다. 방파제에 몸을 누이고 폐부 깊숙이 바다바람을 들이마셨다. 깊고 그윽한 바다 내음이 코끝에 스며들었다. 어린 시절 동네친구들과 오가던 경포해변이 스쳐갔다. 집에서 해변까지는 십리정도 거리였는데 여름철이 되면 또래들이 모여 걸어서 다니곤 했다. 그 당시엔 바다에 몇 번 다녀오느냐 하는 것이 큰 자랑거리였고 파라솔을 빌릴만한 돈이 없어, 그냥 바닷가에 옷을 벗어 놓고 수영을 하다 보니 등과 얼굴은 새까맣게 타서 허물이 벗겨지는 것이 몇 번이나 되풀이 되었다. 그러다보면 뜨거웠던 여름방학이 지나가곤 했다. 어느 날 해변에 옷을 파묻어 놓고 수영을 했었는데 돌아와 옷을 찾을 수 없어 백사장을 헤집던 기억이 아직도 뚜렷이 남아있다. 오늘따라 개구쟁이 친구들과 놀던 어린 시절이 기억 저편 너머에서 아롱거린다. 오랜 만에 맛보는 호젓한 평화로움이다.  

 

걸어서 리도선착장으로 향했다. 해변 가에 늘어선 소나무 가로수와 영화제의 선전 포스터를 보면서 베니스 영화제의 분위기를 조금씩 가슴에 담았다. 리도섬은 국제적인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아드리아해의 향수를 해변 가에 묻어 놓고 아쉬움만 남긴 채 떠나게 되었다.

 

 

 

 

베네치아의 미술과 상인들  

중세 암흑기에 베네치아인들은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쏟아져 들어오는 야만인들을 피하기 위해 섬에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평범한 어부와 다를 것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바다에 대한 지식이 축척되면서 그들의 지도자를 선출하고 이들은 나중에 중세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수장이나 총독으로 선출되는 도제徒弟가 되었다.  

 

베네치아인들은 인근 아드리아해를 오가며 뛰어난 뱃사람으로 변모했고 점차 대규모 상단을 형성하는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베네치아는 동방과 서유럽의 부자들 사이에 자리 잡은 화물 집산지의 역할을 했다. 그 당시 유럽 인들은 중국과 인도의 비단과 향신료, 장신구, 상아 등 동방의 교역품에 목말라 있었다. 베네치아인들은 배로 교역하는 것뿐만 아니라 육로를 통한 교역도 개척했다. 원제국 시대 동방을 여행했던 마르코 폴로가 바로 베네치아 출신이다.  

 

베네치아상인들은 군주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들이 고안해 낸 독창적인 행정 시스템의 결과로 한마디로 견고한 부르주아 귀족정치였다. 베네치아를 지배한 사람들은 골든 북(Golden Book)이라는 등록부에 등재된 상인 일가였다. 이 가문은 엄청난 부와 영향력으로 수세기에 걸쳐 베네치아를 장악하면서도 일가의 수를 1,600명 이하로 엄격하게 제한했다. 골든 북 일원이 되는 일은 세습되는 특권으로 교역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했다.

 

베네치아의 중심적인 입법부는 시의회였다. 이 조직이 너무 커서 효율성이 떨어지자 별도의 의원을 선출하였다. 여기에서 선택된 10인 원로위원회가 도시를 실제 통치했다. 각 위원회조직은 도제궁 내에 저마다 특별한 회관을 가지고 있었고 골든 북 홀도 별도로 있었다. 이 모든 곳들에는 장식이 필요했고 이들은 부유한 상인들이었으므로 그림 역시 고급스러워야 했다.

베네치아는 점차 이탈리아의 예술가들이 돈을 벌기 위해 꼭 찾아야 하는 곳이 되었다. 베네치아는 이익이라고 하는 동기에서 움직이는 도시다. 상인들은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 교역을 했고 자신들에 대한 보상을 당연하게 여겼다. 예술가들에게도 전문인으로서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스와 로마시대 이래 처음으로 예술가들이 베네치아인들에게 작품을 제공함으로써 부를 이루는 모습이 나타난 것이라고 오브리 메넨은 ‘티치아노의 부와 영광’ 편에서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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