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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의 민주주의’를 숙의할 순 없을까
‘숙의 민주주의’를 숙의할 순 없을까
  • 김준현
  • 승인 2017.11.01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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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이 발표됐다. 지난 10월 20일 공론화위는 1개월 간의 숙의 과정과 2박 3일의 합숙토론을 통한 4차 시민참여단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최종 59.5%가 건설 재개, 40.5%가 건설 중단 의견을 냈다.  


이에 따라 공론화위는 ‘건설 재개’ 권고를 내렸다. 정부는 “결과에 따라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조속히 재개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공약을 지지해 주신 국민께서도 공론화위 권고를 존중하고 대승적으로 수용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하며 “탈원전을 비롯한 에너지 전환 정책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공약으로 내건 신고리 5·6호기의 폐기는 포기하지만 탈원전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정부나 각 이해 기관들은 대체로 결과를 인정했지만 일부 단체들은 여전히 반대가 거세다. 또한 정부가 ‘숙의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공론화를 통해 정책 결정을 한 데 대해서는 “국가·정부가 결정할 문제를 떠넘긴다.”는 비판과 합리적 절차에 의한 시민 의견 수렴을 통한 ‘숙의 민주주의’ 실험이라는 긍정적 반응으로 양분됐다.  


공론화 과정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치 쟁점에 대해 사회적 의견을 물어 합리적이고 국민들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고 말한다. 반면 반대편에서는 원전 폐기의 약속을 어떤 방식으로든 회피하고 파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이번 공론화 과정이 사회적 합의인지 정치적 책임 회피인지는 사안을 보는 시선에 따라 다를 것이다. 다만 정부 입장에서는 일단 고비를 넘긴 셈이다. 정부는 지난 5월 출범 당시 ‘탈원전’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정책을 발표하면서 신고리 5·6호기 폐기를 1호 과제로 삼았다. 하지만 정부로서는 앞으로의 전력 수급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와 2조원 이상의 경제적 손실에 대해 막대한 부담감을 느꼈을 것이다. 공론화는 정부에게 대안이 됐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정치 공약을 없던 일로 되돌리는 일이 됐다. 특히 결과적으로 공론화의 권고안을 의회 토의나 다른 절차 없이 그대로 수용했다는 점에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문 대통령이 자신의 공약을 다른 의지 없이 너무 쉽게 놓아버렸다는 인상을준 것이다.


합숙 토론으로 진행된 4차 조사 당시 설문지에 향후 원전 정책의 방향에 대한 의견을 묻는 항목이 담겼다는 것은 다소간 의심의 여지를 준다. 설문 결과 원전 축소 53.2%, 원전유지 35.5%, 원전 확대 9.7%라는 응답이 나왔다. 이는 공사 재개와 중단 사이에 분명한 결론을 끌어내기 위한 유도 장치로 작용했다. 설문 참여자들은 자신이 신고리 5·6호기 원전 공사 재개를 찬성하는 답을 내린다고 해도 정책 방향에 대한 의견을 따로 표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월한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4차 조사에서는 건설재개·중단의 의견 차이가 6% 이내면 공론화위는 1~4차에 걸친 조사결과를 종합 분석하여 권고안을 작성해야 했다. 만약 양측 주장이 대등하게 맞서 결론이나지 않았다면 찬반논쟁과 사회적 혼란은 장기간 지속됐을 것이다.  


김지형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은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반반으로 나왔으니 정부가 다시 알아서 하쇼’ 이렇게 하는 게 논리적으로 맞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공론화 과정이 아까웠다. ‘뭔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단서 같은 것은 찾아줘야 하지않나’라는 게 위원회의 고민이었고 그 방법이 뭐가 있을까 궁리했다. 그래서 ‘건설 재개’와 ‘건설 중단’을 주장한 양쪽에 ”당신들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이런 거라도 조치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보완 항목을 달라고 했고 그것을 반영한 설문을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해당 설문의 답은 정부에게 탈원전 정책을 그대로 추진하겠다는 명분을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숙의 민주주의’가 바로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해본다면 어떨까.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잘 책임지기 위해서 공론화 과정을 진행했다고 볼 수도 있다. 공론화 결과는 예측할 수 없고 어떤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수용 방침을미리 정해놓았기 때문에 건설 중단 결정이 났다고 해도 정부는 그대로 따라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첨예한 갈등 상황에서 의견을 조율하고 정책 결정 과정에 주목하게 함으로써 사안에 대한 국민의 이해도를 높여 합의에 이르게 하는 ‘숙의 민주주의’는 정상적으로작동한 것이다.  


우리나라 첫 번째 ‘숙의 민주주의’ 시도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번 공론조사는 우리나라에서 중요 정책에 대해 시민의 숙의 과정으로 도출된 결론을 정부가 직접 수용한최초 사례다. 대의제와 직접민주주의와 동시에 작동할 수 있는 ‘숙의 민주주의’는 혼란과갈등을 담보한 의사결정의 적극적 대안으로서 선택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정치적 독재나 갈등이 생겨났을 때 극단적 해결의 대안으로 국민 여론이 ‘숙의 민주주의’를 제안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번 사안의 결과와 관련 없이 의미 있는 수확이다.  


지난 30일 세계일보와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 ‘공공의 창’, 여론조사기관 ‘타임리서치’가 성인 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 결과 수용도 조사에 따르면 공론화위 활동에 대한 긍정 평가가 56%, 부정 평가가 32.1%로 집계됐다. 또한 공론조사의 향후 도입과 상설화에 각각 83.2%, 72.7%가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들의 반응은 ‘합격’에 기울었다고 봐도 될 듯하다. 하지만 합의에 이른 것은 아니다.여전히 ‘숙의 민주주의’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신고리 5·6호기 원전이 공론화를 통해 공사 재개로 일단락 났으니 이제 ‘숙의 민주주의’를 숙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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