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간의 공직생활과 지도자로서의 삶, 이제는 전도를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리고자 합니다

영동중앙교회 김재철 장로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셔 자신이 가진 것 남에게 베풀어야 더 커진다

2024-05-22     취재_정하연기자, 사진_이 신 기자

Power Interviwe

영동중앙교회 김재철 원로장로

 

33년간의 공직생활과 지도자로서의 삶,

이제는 전도를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리고자 합니다

 평생 공직에서 헌신하고 투절한 신앙심으로 종교생활을 해온 화제의 인물이 있다. 바로 영동중앙교회(강남구 논현동 소재, 도산대로 248, 논현16-24, 노진국 담임목사) 김재철 원로장로이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대통령비서실 인사행정관을 통해 권력의 핵심에서 활동했으며, 전남도 행정부지사, 행정자치부 의정국장, 국가전문연수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또 육사 졸업 후 재직 중, 영남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한양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미국에서 체류하던 2년 동안 현지 교민사회 파악 및 60여개 이민 및 현지교회등을 살펴보는 특이한 경험도 했다. 33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한 뒤에는 차관급 대우를 받고 있다는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직에 공개 채용되어 근무하는 특별한 경험도 했다.

 또한 이 기간에 한국직장선교연합회 이사장을 맡아 당시 77만여 직장 기독인들에게 다섯바뀌 전도론을 주창하며 선교활동을 주도했다고 한다. 이러한 성과와 공직생활의 모든 공적을 바탕으로 홍조근정훈장을 수훈하였으며 특히 사무총장 시절 국민체육진흥과 국가대표선수에 대한 적극적 후원으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 훌륭한 성적을 거두도록 지원하여 국위선양에도 기여했다고 한다.

 그의 평생을 요약하면 국가와 하나님에 대한 헌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는 자신이 지도자로서의 길을 걷게 된 배경에 흥미로운 쌍기역()리더십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셔

 김재철 장로는 남다른 추진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어렸을 때부터 책상이나 노트의 표지 앞면에는 하면 된다라는 표어가 적혀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온 그의 친구들 역시 추진력이 남달랐다고 평가한다. 33년간의 공직 생활에서도 늘하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일해왔고, 주변에서는 김 장로의 그런 모습을 무척 좋아했다고 말한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변곡점이었다면 단연 대통령 비서실(당시 청와대)에 들어간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위대하고 절대적인 힘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는 자칭 전남 영암 촌놈으로 6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광주로 유학한 그는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고, 소위로 임관되어 전방 철책선 부대에서 전투소대장과 중대장을 역임한 후 1977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총무처(행정안정부) 사무관으로 채용되었다.

 당시에는 사관학교출신 국가공무원 특별제도를 시행하여 1기생으로 채용, 근무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약 6년 정도 근무할 때였다고 한다. 그때 상사가 자네, 청와대에 가보지 않겠는가?”라고 제안해 왔다는 것.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서기관으로 승진하여 가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당시에 이는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다.

 보통 청와대 서기관으로 승진하기 위해는 적게 잡아도 9년 정도의 경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승진과 동시에 청와대로 전출시켜 준다는 제안이었다. 믿어지지 않았지만 당시 상사의 진지한 모습에 눈물이 맺힐 지경이었다고 회고한다. 결국 승진 후 대통령비서실로 전출되었고 그 상사분과 함께 처음으로 청와대를 방문하여 해당 수석님께 인사드리고 임무를 부여받는 과정에서 또 기적이 일어났다고 했다.

 비서실에서 부여받은 직책이 인사행정관’... 김 장로는 물론 그의 상사도 그 직책에 더 놀라는 눈치였다고 한다. 서기관 승진도, 청와대 전보도 가문의 영광이요, 하나님의 은혜인데 인사행정관 보직까지...  지금도 그때를 회고하는 김 장로의 모습은 글썽이는 눈과 처연함이 돋보인다.

 임무를 부여받은 후 3년여 근무했을 때, 전두환 대통령에서 노태우 대통령으로 권력이 이양되던 시기에 많은 직원들이 교체되면서 기존 직원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진행되고 있었다한다. 이 무렵 과속 승진? 인사행정관 보직 등 특혜의 연속으로 보일 수 밖에 없었던 김 장로도 이른 바 뒷조사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김 장로가 부모님 모시고 살고 있는 신사동 집(지금도 39년째 살고 있다고 함)을 포함해서 일거수 일투족을 체크 한 것이다. 노부모님과 노태우 대통령을 거쳐 김영삼 대통령 위임 6개월여 후 이사관(2) 계급으로 미국으로 떠났다고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겪은 김 장로는 도저히 감당키 힘들고 벅찼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이 문제를 이끌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대응했고 결국 승리했었다고 회고한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의 가장 큰 뒷배경은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저는 평생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믿음 때문에 공직생활을 바르게 잘 할 수 있었고 매사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자신감 있게 살 수 있었습니다. 특히 행정관료로서 국민을 생각하면서 그때그때 제 역할을 잘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이때를 회고하며 김 장로는 예수믿고 가장 큰 복을 받은 최고의 영암촌놈이라고 고백한다 했다.

 그의 이력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바로 1997년 정부종합청사에서 근무 당시에 맡게된 한국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 창립과 초대 회장의 취임이었다. 거대한 공직 내 믿음의 행사가 있었고 그 당시 교계의 큰 뉴스였다고 한다. 당시 김 장로는 중앙청기독공무원연합신우회 회장이었으며, 이 모임을 중심으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지자체까지를 망라한 전 공무원을 대상으로 연합회를 결성하자고 제안하여 그 결실을 보았고 그 초대 회장으로 취임한 것이다. 당시 기독교계에서는 공직사회가 기독교 문화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는 큰 기대를 했었다고 한다.

 

자신이 가진 것 남에게 베풀어야 더 커진다

그가 처음 종교생활을 하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시절 지금의 아내인 이설자 권사의 오빠(이계섭; 당시 대학생)가 전도했다.

 이후 육군사관학교에 다닐 때 세례까지 받았으며, 장교 임관 후 결혼해 딸 하나를 두었고 그 딸이 결혼하여 21녀를 두어 현재 모두 대학원과 대학을 마치고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지난 20년간 매일 새벽기도를 해왔으며, 일과 여행으로 지방이나 해외 출장때에도 결코 새벽기도를 빠뜨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쌍기역(ㄲ) 리더십이라는 내용을 정리하여 널리 알리고 있다.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 소개한다. 그 내용이 , , , , , , , 등 모두 쌍기역으로 시작하는 한 글자 단어로 시작된다. 우선 그는 꿈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꿈이란 리더십 덕목에서도 소중하게 최급 된다. 우리 주변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지도층 인사들은 하나같이 자신만만해 보이고 항상 내일을 꿈꿉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들을 따르고, 자신들도 야망을 품게 된다. 이러한 건전하고 희망찬 꿈이 리더로서의 밑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꿈이 있는 자에게 사람이 모이고 꿈이 있을 때 자기 계획을 펼칠 수 있다. 끼라는 것은 기질과 지식, 정성과 진심으로 이루어진 소양, 그리고 학문적 배경이다. 본인 역시 경영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기회 있을 때 최선을 다하여 확보했었기에 훗날 큰 효과를 발휘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김 장로는 한양대대학원에서 특임교수 8, 세한대 석좌교수 8, 대학원에서는 협상, 갈등관리, 리더십 이론등를 강의했고 학부에서는 주로 교양과목, 미래 준비 실무 등을 강의 했다고 한다.

 이어 꾀라는 것은 지혜를 의미하지만, 잔기술이 아닌 성경적 양심이라고 말한다. 특히 기도와 헌신, 봉사로서 축적될 수 있다. 리더십의 요체로서 지도자라면 공동체의 목적 달성을 위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덕목, 즉 지혜()가 필요하다.

 

 꼴은 외모를 의미하는 것으로 표정, 인상 등 눈으로 보이는 전부를 의미하며 건강을 최종적으로 포괄한다. 잘 생기기를 소망하지만 더 중요한 가치는 건강이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많은 이들이 건강한 외모로 무병장수하기를 바란다. 김 장로 역시 우연한 기회에 심장의 문제를 발견해 대동맥 관막 교체 수술 후 현재 건강관리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한다.

 ”전문 현대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연줄이나 인맥이며, 전도를 위한 인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는 구성이 다양하고 복잡할 뿐만 아니라 섬세하고 분할되어 있어 전문성과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각 분야에서 많은 인맥을 확보하는 것이 지도자에게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끈의 길이가 깊고 세분화 되어있을 때 전도와 선교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끈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름 챙겨보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우선 자신의 핸드폰에 저장되어있는 총 연락처 숫자를 확인해 보는 것이다. 김 장로는 수시로 입력 명단을 정리하면서도 현재 3500여개의 연락처를 확보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깡은 추진력, 소신, 결단을 뜻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 교회와 교인을 지키는 사역등에 깡이 필요하다. 지켜줄 수 있는 것이다라는 믿음이 갈 때 따르게 되고 믿음을 주게 되는 것이다. 이런 관계가 형성될 때 전도는 가능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마지막 덕목은 바로 이다. 이는 베품을 상징하고 원활한 인간관계의 촉매가 되어 준다. 자신이 가진 것을 자랑하지 말고 그 이상 수준을 베풀도록 노력해야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이야말로 자기 소유의 것이 커지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걱정, 두려움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시도해야

그는 미래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이제는 전도를 생의 마지막 목표로 잡고 있다고 한다.

저에게 이제 남은 꿈이 있다면 하나님 나라를 넓혀나가는 전도의 꿈입니다. 이를 위해서 아주 사소하지만 만남의 인연을 소중히 여겨 전도를 잘하고 싶습니다. 이를 보다 잘 해내기 위해 요즘 기도 제목으로 삼고 있습니다. 또한 저는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면 김재철 같은 사람이 된다,’라는 말을 증명하고 싶고, 또 그렇게 기억되고 싶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반드시 큰 복을 받는다는 샘플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는 후배들에게도 이러한 삶의 메시지를 남겼다.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시도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해보지 않으면 더욱 후회하는 것이 바로 세상의 일이기고 합니다. 하나님의 힘을 믿고 전진 하다 보면, 분명히 그 길이 열릴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기회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공부하고 건강을 관리하면서 체력을 만들어야 합니다. 영혼과 육체가 준비되어 있다면 미래로 향하는 길은 반드시 열리게 됩니다.”

 

 김 장로에게는 21녀의 손자, 손녀가 있다. 그들이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자신들의 길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옆에서 할아버지의 역할을 하면서 지켜보고 싶다고 한다. 손자손녀들은 재료공학, 바이올린, 의사의 길을 걷고 있다. 각각 창의성, 리더십, 치유의 은사를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하면된다는 신념으로 젊은 시절 무작정 뛰었던 시절...그렇게 열심히 뛰었더니 그런대로 다 이루워진 것 같다. 이제는 어떤일을 해 볼까...? 결국 하나님 나라를 넓혀나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 나라확장, 전도와 선교.

 김재철 장로는 요즘 평생을 살아온 아내와 둘렛길 산책도 하고 책도 보면서 건강관리를 하는 한없이 평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든든한 배경으로 가족과 이 사회에 더욱 헌신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