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같이 사는 국민 시인 ‘나태주’
"시는 짧고 쉽고 단순해야 감동을 준다."
나태주(羅泰株) 시인은 1945년 충청남도 서천군 시초 면 초연리 홍현마을에서 출생했다. 소작농이던 아버지 나승복의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시초초등학교, 서천중학교, 공주사범학교(공주교대)를 졸업하였고, 한국 방송통신대학교 초등교육과 졸업하고, 1987년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교육심리 및 교육방법 전공으로 교육학 학위를 취득했다. 공주사범을 졸업 후 1964년 경기도 연천군 군남초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43년간 교직 생활을 했고 2007년 공주 장기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정년 퇴임했다. 정년 퇴임 할 때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07년 정년 퇴직 후에는 2010년부터 2017년까지 공주문화원 원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공주풀꽃문학관 소속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제43 대한국시인협회 회장을 맡았다. 공주중앙장로교회 명예 집사이기도 한 그는 신앙적 체험을 소개하기 위해 간증 집회도 나간다. 평생을 풀꽃처럼 살아온 평범한 국민 시인의 모습이라서 더욱 아름답다.
대표적인 시로는 '풀꽃' ‘행복’ ‘사랑은 담합이다’가 있다. 풀꽃은 현대 시 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 중에 단연 최고이다. 그래서 그를 풀꽃시인이라는 호칭을 붙여졌다.
그의 시는 짧고 쉽고 단순하지만 깊은 감동을 준다. 시에는 시인의 인생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오랜 기간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서 시어가 마치 천진한 아이처럼 순수하고 솔직하다. 소탈하고 가슴에 퍽 다가오는 감동이 있다. 꾸미지 않은 순수함 그 자체가 나태주 시인의 시향이다.
그가 시인이 된 것은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대숲 아래서’라는 시가 박목월 선생의 눈에 띄어 시인으로 등단했다. 올해로 등단한지 54년 차로 시단의 어른이다. 시집이 50권이 넘고 출판한 작품집만 190권이 넘게 출판했다. 이런 그를 사람들은 ‘다작 시인’이라고 말 하기도 하지만 그는 자신이 시를 쓰는 것이 아닌, 시가 자신에게 찾아왔다고 말한다. 교사직에서 퇴임 후에 공주문화원장, 한국시인 협회장 등을 역임했고 10년 전부터는 ‘공주풀꽃문 학관’을 운영하면서 ‘풀꽃 문학상’, ‘해외 풀꽃 시인 상’ 등을 제정해서 시행해 오고 있다. 유재석씨가 진행하는 ‘유퀴즈’ 등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정도로 시를 대중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나태주 시인의 고향을 ‘공주’로 잘못 알고 있다. 사실은 충남 서천군 기산면이 그의 고향이다. 그런데 그가 활동한 곳은 공주다. 공주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공주의 장기 초등학교에서 43년 넘게 교직 생활을 했고 정년퇴직 후에는 ‘공주 문화원’ 원장으로 7년 동안이나 재직하시는 등 거의 생의 대부분을 공주(公 州)에서 활동하다 보니 공주 출신으로 기억하고 있다. 비록 공주가 그가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시인과 시가 함께 자라고 성장한 고향이라는 의미에서 나태주 시인의 시의 고향을 공주라고 부른다.
그는 어떻게 운명적으로 시를 만났을까? 집안 내력에 글을 잘 쓰는 문학적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사모하던 여학생에 대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를 궁리하다가 시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 시절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신석정, 김영랑, 김소월의 명시를 즐겨 읽었고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등 청록파 시인들의 시를 만난 것이 시인이 된 큰 동기가 되었다.
나태주 시인은 자신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가 시를 쓰게 된 중요한 동기라고 피력한 바 있다.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군에 입대하여 월남 비둘기부대 병사로 근무한 후 제대하고 현직에 복직하 여 한 여성을 만나게 되 었는데 그 연인에게 호되 게 실연의 고배를 마시고 삶의 혼미와 비애감을 시 로 표현한 것이 바로 1971 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에 당선된 「대숲 아래서」 란 시다. 당시 심사위원은 자신이 소년 시절 좋아했던 박목월이었기에 그에게 시는 천운인 셈이다.
그 후 그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 권의 시집(37권) 과 산문집(13권) 그리고 두 권의 동화집, 네 권의 시화 집, 여러 권의 시선집을 냈다. 2014년 가을에는 그의 시 「풀꽃」을 기념하여 공주에 공주풀꽃문학관이 개관 되었고 풀꽃문학상도 제정되었다. 그를 소재로 한 동화 『풀꽃』도 출간했다. 올해는 공주풀꽃문학관이 개관한 지 10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평생동안 시를 썼고, 이미 많은 시가 국민들의 가슴을 울렸다는 것은 시에 깊은 내공이 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 한다. 그의 시가 너무 쉽고 단순해서 툭툭 내뱉는 말처럼 보이지만 누구나 그렇게 쓴다고 해서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다.
짧고 쉽게 단순하게 쓰여진 그의 시에는 분명 가 슴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그 감동을 받으면 “그래 너무 나 좋아, 그러니 한 번 멋지게 살아보자구” 저절로 감탄과 동기부여를 준다.
나태주 시인은 한 강단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 시대에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렵고 소임이 막중하고 무겁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으로는 풍족함을 누리지만 영혼이 고달프고 지쳐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 시인들이 이들과 함께 같이 가주고 동행해주고 손을 내밀어 주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태주 시인은 요즘 시들이 너무 높이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자리에 있다며 내려와야 한다고 말한다. “시인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스스로의 경계를 두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이처럼 나태주 시인은 시인으로서 많은 이웃들과 함께 숨 쉬고, 함께 울고, 함께 길을 가는 것이 바로 시인의 길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시는 쉽고 간명한 시어들로 잔잔한 감동으로 위로 의 손길을 건넨다. 이미 고희(古稀)를 지나 팔순을 앞두고, 그의 삶은 여전히 소년 같은 맑은 눈빛을 간직한 채 시인의 시어는 푸르름과 짙은 에너지를 발산한다. “저는 잘생긴 사람이 아니에요. 못났고 늙고 가난한 사람입니 다. 이런 사람한테 좋은 시로 위로해 달라는 강연 요청이 전국에서 들어옵니다. 좋은 시란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 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나 태주 시인의 시는 모든 장벽과 갈등을 뛰어넘어 사람들을 아픈 마음을 감싸고 보듬고 쓰다듬어준다.
나태주 시인은 2007년 교장 퇴임을 앞두고 췌장암으로 오랜 기간 투병 생활을 해왔는데 그동안 13년간 쌓아놓 았던 시들을 묶어서 지난달 8월 8일 시집 '버킷 리스트'가 출간했다. 시집 내용은 '삶과 죽음에 대한 바라봄'을 그대 로 승화시킨 삶에 대한 처절한 독백이다. "살아줘서 고맙다"는 안부 인사와 함께 모두에게 행복한 삶을 빌어주는 따스한 기도가 녹아있다. 오랜 투병 생활에서 기적적인 회복까지, 일상에서 미처 돌아보지 못한 소중한 순간들을 시로 남겼다. 아마도 삶의 여정이 끝날 때 그의 마지막 멘트는 “퇴근” 이라고 쓸 것 같다. 나태주 시인이야말 로 올가을 꼭 만나야 할 분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