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전환점에 서서 꿈을 꾼다.

column

2024-12-10     홍석태 기자

전철역근처에 있는 노점상을 지나면서 떡 한 봉지를 샀다.

노점상 주인이 내게 말을 건넨다.

! 인상이 좋으시네요. 제 친정아버님 같아요.”

처음 들어보는 얘기다. 내 존재도 어느 한구석에 칭찬받을 점이 있다는 데서 으쓱해지고 기분이 좋았다. 이것이 상술이라고 쳐도 꽤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이 됐다. 2000원을 건네주고 떡을 받으며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농담 삼아 한 마디 질문을 던졌다.

실례지만, 댁은 몇 살이신데요?”

저요? 54살입니다.”

순간 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내 나이를 80대로 본 것이 아닌가? 이것은 칭찬이라기 보다는 잘 늙으셨다는 얘기로 받아드려야 할 이야기 같았다.

언제부터인가 전철표를 받을 때 묻지도, 요구도 없이 차표를 척척 내어 줄 때 기분이 언짢게 생각되더니 이제는 외모로 보아도 영락없이 늙은이처럼 보여지는 모양이다. 외손녀가 중학교를 다니는데도 늙었다는 생각을 안 하고 살아왔는데 오늘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노인으로서 존재를 의식하게 됐다.

고려 말의 학자 우탁(禹倬),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싀 쥐고

늙은 길 가싀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렀더니

백발이 채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시간은 밤과 낮을 바꾸고, 계절을 바꾸고, 생명의 성장과 소멸을 바꾸면서 어느덧 인생 팔십년이 내 곁에 와 있었다.

오만과 미련함으로 회색빛 인생을 살면서 정신없이 살아왔던 지난 일들을 황혼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허허(虛虛)해 돌이켜 본다. 오늘이 있기까지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과 나를 키워주신 스승님 그리고 나에게 영양을 듬뿍 공급해준 사회와 친구, 동료들의 도움이 없었던들 현재의 나는 없었을 것이 아닌가! 생명, 참으로 놀라운 경로다. 한편, 이 땅 위에 하나의 생명으로 살아간다는 것, 참으로 감사할 뿐이다.

이제부터라도 나는 무엇을 하면서 값진 노인의 문화를 창조해 갈 것인가?

공자님은 六十而 六十化, 七十而 七十化라 하시며 자기 나이에 걸맞은 문화를 만들어가야 함을 말하지 않았던가!

어느 날, () 교수님은 많은 것을 시사하시는 말씀을 하신다.

Time is money가 아니고 Time is Life(생명)이다.

우리에게 맡겨진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내 인생을 아껴 쓰고 낭비하지 마라. 날마다 감사하고 기도하자! 천년을 울릴 종을 마련하자고 하셨다.

말씀은 계속된다.

21세기는 지식의 혁명 시대다. 모르면 아무것도 못 한다. 정보사회는 지식이 자본이다. 그러므로 지능지수(IQ)도 있고 교육지수(EQ)도 있어야 한다. 그것 없이는 대인관계에서 조화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미래학자 토플러(A. Toffloer)<3의 물결>에서 산업사회는 돈, 정보사회는 지식이라 했지만, 4의 물결은 생명(生命)이요, 공생(共生)이요, 공존(共存)이라고 하셨다. 그러기 위해서는 윤리지수(MQ)와 사랑의 지수(AQ)를 높여라.

이 말씀은 바로 노년기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해주셨다고 생각했다. 21세기를 살아가려면 알아야 한다. 나를 알고, 사회를 알고, 시대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사회와 공존, 공생할 수 있는 윤리와 사랑의 지수를 터득하고 몸소 행하며 어른(senior)으로서 사회에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년기를 제2의 사춘기라 하지 않던가. 그러므로 노년에도 꿈이 있어야 한다.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놓고 오늘을 살아라! 그러면 반드시 그 꿈을 이루리라!”

꿈을 꾸는 것이야말로 미래를 준비하는 첫 단계이다.

어머님이 생전에 타이르시기를 어려서 품은 생각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히얀 하게도꼭 이루어지더라.”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꿈이나 이상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는 꿈속에 있는 미래의 희망이 오늘의 나를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바로 어머님이 주신 말씀처럼, 이루기를 바라는 상()을 그려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러나 때로는 꿈이 과거에 있었던 에덴동산의 시나리오, 영광의 순간을 간직한 채 그 절정에서 정지되고 거기서 갇혀버리게 된다. 중요한 것은 적체된 과거의 경험 때문에 오늘의 삶이 제한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고무적인 깨달음에 이르기를 바란다. 노년의 새로운 패러다임¹을 가지려는 마음은 낡은 과거의 것은 잊어버리고 새로운 생각으로 미래에 도전해야 한다. 한동안은 그 일이 내 삶의 전부인 것처럼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되새기며,

 

노년은 내 인생의 수막 3장의 마지막 무대나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외로움이나 고통까지도 예술로 승화시켜야 한다.

그간 바쁜 삶으로부터 미처 개발하지 못한 창의성과 잠재적 능력을 개발하면서 삶의 지경을 넓히고 참으로 이 땅 위에 왔다가는 생명으로서의 교향곡을 만들어 가야 한다. 언제부턴가 노년은 더 강해졌다. 또한 뇌세포도 더 생겼다. 이제부터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시간이 얼마든지 허락되어 있다. 나만의 귀중한 시간을 갖게 되는, 그야말로 인생의 보람 있는 시간에 들어간다. 앞으로의 10~20여년의 능곡지변(陵谷之變)의 생이 자신을 위하여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나이 듦에 대한 낡은 고정관념과 선입견은 과감히 던져버려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성숙한 인생, 보람있는 삶으로 정리를 하자.

후반 인생의 생산성이란, 당신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의미하기도

------------------------------------------------------------

1) 패러다임(Paradigm Shift)은 자연과학에서 생겨난 용어로서 사고방식이나 기본 모델을 제공하는 틀로서 인식되었다. 패러다임이란 하나의 세계관, 인생관, 학문연구관 등을 뜻하는 가치체계를 말한다.

한다. 이 시기에 봉사는 노년기에 꽃이며 유일한 낙이다. 상심(傷心)으로 얼룩진 젊은 날이 갖다 준 상처에 대한 보상의 기회이며 선물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노년을 고독하다고 한다. 때로는 내가 필요하지 않은 가정에서 혼자 있는 연습을 해야 하고,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야 한다. 그러나 버려진 상태의 노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노년의 생산적인 고독을 즐겨라!

“The preciousness lies in the solitary mind of a men"

소중한 것은 인간이 외로움을 느낄 때 찾을 수 있다.”

쓸쓸한 노년의 뒷모습에서 소중한 것을 찾아 새롭게 시작하는 성숙한 노년의 모습을 보여주어라. 그리고 “Time is Life(생명)”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오늘의 삶을 겸손하게 받아드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자. 소유(所有)나 욕심(慾心)보다는 너그러운 성품을 지닌 이름다운 노년의 내 모습을 그리며 나는 오늘도, 나를 찾아 떠나는 나그네다.

 

준비하는 사추기

언젠가 교수님은 사추기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앞을 다투어 무성했던 왕성한 나뭇잎들도 힘없이 떨어지는 저 낙엽을 보라

저는 그 말씀에서 잠시 인생의 무상(無常)함을 보았습니다.

얼마 전에 친구가 힘없이 말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사는지 모르겠어!” 그래서 저는 운명 앞에 비문으로 준비해두신 선생님의 글을 읽어주었습니다.

여기 아우성의 역사는 끝났다. 이제는 이곳에 한 사람이 길손으로 살다가 이곳 본향인 대지의 품속에 묻혔노라.” 진주강 씨

그리고, 나는 사추기로 외로워진 가엾은 친구에게

노랗고 붉은 낙엽에 묻혀 긴 겨울잠을 자면서 만취(晩翠)의 아름다운 새봄을 조용히 기다리자고 했습니다. 길손이 지니고 갈 리포트를 준비하면서,

혼자 있기 때문에 고독한 것이 아니다. 버려진 상태가 고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