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의 심정으로 살아가야 하는 한국인들
Desk column 민주주의의 모든 것은 국민으로 이어져
“민주화를 위해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가 법정 최후 진술에서 남긴 말이다. 물론 이 말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지만, 그가 더 이상 독재 정권을 묵과하기는 힘들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지난 2024년에 발생했던 ‘12·3 비상계엄 사태’로 시작된 일련의 급박한 정치적 상황을 목도한 한국인들의 심정이 바로 이러지 않았을까? 분노한 2030세대를 중심으로 많은 국민이 추운 날씨에도 여의도 국회 앞에 모인 이유 역시 이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단이 있기까지는 몇 개월이 걸려야 하고, 그때까지 한국인들은 또다시 야수의 심정을 졸이면서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문제는 탄핵이 된 후 국민의힘 의원들이 보여준 모습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말은 ‘탄핵이 기각되면 찬성했던 여당 의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한 명 한 명이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의 정당한 권리인 탄핵을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은 21세기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어울릴 법한 말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어쩌면 이러한 극우화는 최근 유럽의 정치 지형에서 보이는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 독일에서는 지난 2024년 9월, 나치 패망 후 79년 만에 극우 정치 세력이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는 돌풍을 불러일으켰다. 독일대안당이 무려 32%, 보수 성향인 기독민주당이 23.6%로 그 뒤를 이었고, 진보 성향인 사회민주당의 득표율은 6.1%로 완전히 쪼그라든 상태였다.
민주주의의 모든 것은 국민으로 이어져
프랑스에서는 7월,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이 유럽의회 선거에서 31.4%를 얻어 역사상 최초로 단일 정당이 30% 이상 득표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어 12월에는 프랑스의 미셸 바르니에 내각이 의회 불신임으로 붕괴에 이르렀다. 독일 정부 역시 신임 투표에서 패배하며 붕괴하는 등 유럽 주요 국가에서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또한, 2025년 1월 취임식이 예정된 트럼프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극우 보수 대통령으로, 그의 당선은 미국 정치에서 극우적 성향의 정당이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탈리아, 헝가리, 폴란드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결과적으로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극우 세력이 완전히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민주주의의 선두 국가로 불리는 한국에서도 탄핵 사태를 겪으면서 극우 세력의 목소리가 잦아들기는커녕 더욱 확대되고 있다.
이 즈음에서 우리는 독일 출신의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 정치학자인 막스 베버가 말한 ‘직업으로서의 정치’와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시류를 틈타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기회주의적 정치인을 뜻하며, 소명으로서의 정치는 진정으로 국민과 나라를 생각하는 정치인을 의미한다. 물론 여당에도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하는 정치인이 있고, 야당에도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하는 정치인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러한 기회주의적 정치인이 언제든 나타날 수 있으며, 기회를 노려 국민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치를 반복한다는 점이다.
결국 민주주의의 모든 것은 ‘국민’에게서 시작되고, 국민에게로 귀결된다. 결국 민주주의를 향한 ‘야수의 심정’을 가진 국민들이 더욱 늘어나야만 한국 민주주의가 계속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