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유농업이 우울증과 조현병을 줄일 수 있을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12세 이상 인구의 9.7%가 최근 1년간 우울감을 경험했고, 조현병은 인구 100명 중 1명이 겪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는 현대인의 스트레스와 불안, 우울증 등의 정신 건강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의료진이 적극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최근에는 ‘치유농업’이라는 색다른 방법도 동원되고 있다. 실제 정부에서 이를 활용해 본 결과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 앞으로의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치유농업이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떻게 정신 건강을 위해 활용될 수 있을까?
비약물적 심리 치료의 일환
치유농업은 자연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농업 활동을 통해 사람들의 심리적, 신체적 건강을 증진시키는 치료적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농업 활동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사람들의 정신적, 정서적 치료를 목표로 하는 활동이다. 농업은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의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 채소, 과일, 꽃 등을 기르게 되면 사람들은 성취감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으며, 자신이 기른 농작물을 수확하거나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성취감과 자존감까지 느낄 수가 있게 된다. 또한 이 과정에서 자연과 일종의 상호작용을 하면서 우울증과 불안감을 해소할 수가 있다. 더 나아가 치유농업을 하는 사람들끼리의 소통과 유대감도 형성할 수 있으며 외로움과 고독감에서 벗어나는 사회적인 연결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치유농업은 기존의 정신과 치료 방법에 대한 보완적인 대안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약물 치료나 심리 치료와 병행해 그 치료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최근 농촌진흥청은 약물 중심인 기존 정신질환 치료를 보완할 수 있는 비약물적 심리 지원 기술로 치유농업에 주목하고, 그 효과를 의료기관 현장 실증을 통해 입증했다. 우선 조현병 환자를 위한 ‘긍정심리모형(모델) 프로그램’을 통해 식물을 재배, 관리하는 과정에서 몰입과 행복감 등의 정서를 회복하고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도록 구성했다. 조현병은 현실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심각하게 왜곡되는 정신질환으로, 주로 양성증상, 음성증상, 일반정신병리증상이 나타난다. 양성증상은 환각, 망상, 비논리적 사고, 기이한 행동이며, 음성증상은 감정 표현 감소, 무의욕, 사회적 위축, 무언어증, 쾌감 상실이다. 일반정신병리증상은 우울감, 불안, 집중력 저하, 수면장애 등이다. 프로그램 적용 결과, 치유농업을 병행한 조현병 환자군은 기존 약물 치료 중심의 병의원 치료만 받은 집단보다 음성증상이 10% 감소했고, 일반정신병리증상도 2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프로그램 적용 전후 효과도 뚜렷해 심장 안정도는 전보다 12%, 자율신경활성도는 13% 향상됐고, 양성증상과 음성증상은 각각 13%, 일반정신병리증상은 12% 줄었다. 실제 환자들이 했던 활동은 매우 다양했다. 채소 파종에서부터 허브, 관엽 삽목, 초화, 허브 모종 이식, 병해충 방제, 파종 식물 이식, 거름, 허브차 만들기, 수확과 꽃꽂이 등의 활용, 샐러드와 샌드위치 등에 넣어 먹는 요리와 함께 참여자들이 모두 함께 가든파티를 즐기기도 했다.
또한 우울 고위험군을 위한 ‘인지행동전략 프로그램’도 시행했다. 파종, 수확, 수확 후 활용에 이르는 식물 생애 주기를 사용자 삶에 연계해 부정적이거나 왜곡된 사고를 긍정적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했다. 우울 고위험군 또한 치유농업 적용 전보다 우울감이 30% 감소했다. 감정 안정과 내면 성찰 능력 향상을 보여주는 상대적 세타파(RT)는 29% 증가했고, 심리적 안정과 스트레스 완화를 나타내는 상대적 알파파(RA)도 18% 증가했다.
약물치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장점
이러한 치유농업은 기존의 정신과적 치료 방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여러 장점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도 병원 진료 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신과 치료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나 개인적인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과 치료’라는 말 자체에 거부감을 갖고, 치료를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치유농업은 이러한 진입 장벽을 낮춰, 누구나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병원이라는 폐쇄적 공간이 아닌, 햇빛과 흙 냄새가 나는 자연 속에서 치료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치료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도 훨씬 줄어든다. 환자 본인은 치료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자연에서 하는 의미 있고 재미있는 활동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이렇듯 환자가 자기 스스로를 ‘환자’라고 인식하지 않는 것만 해도 치료에는 도움이 된다.
또한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정신과 상담이나 약물 치료는 장기적으로 적지 않은 비용이 들기 마련이다. 반면 치유농업은 지역 커뮤니티 기반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비용 부담이 낮고, 공공 지원 프로그램과 연계될 경우 무료 또는 소액의 비용으로도 참여할 수 있다. 이는 특히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이들에게 치료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지역에서의 서로의 유대감도 높여줄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치유농업은 약물 중심의 치료 방식과 근본적으로 접근 방식이 다르다. 약물 치료는 주로 불안이나 우울과 같은 증상을 일시적으로 조절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반복적으로 약물을 사용해야만 한다. 반면, 치유농업은 증상 뒤에 숨겨진 내면의 감정과 상처를 마주하게 하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풀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 농작물을 돌보며 책임감과 성취감을 경험하고,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외로움이나 고립감이 완화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활동을 통해 관계 회복의 기회를 얻게 된다. 이는 치유농업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기 돌봄(self-care)’이라는 중요한 치료 요소를 실천할 수 있게 해준다. 이는 단순히 휴식이나 스트레스 해소를 넘어, 자신을 다시 바라보고, 스스로를 돌보며 자존감을 회복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렇게 감정 표현, 성취 경험, 관계 회복, 자기 돌봄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단순한 증상 완화를 넘어 삶의 전반적인 회복과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치유농업은 단순한 치료가 아닌, ‘완치’라는 보다 근본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 환자 자신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자연이라는 치유적 환경 속에서 자율적 회복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치유농업은 기존의 치료 방식이 하지 못하던 근본 치료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 이러한 치유농업을 한 번 경험했던 사람은 그다음부터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치료를 이어 나갈 수 있다. 자연이라는 친화적인 환경을 스스로 찾게 되고, 농업을 스스로 실천하면서 더 나은 삶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농촌진흥청은 올해부터 전국 19개 정신건강 증진 기관에 치유농업을 본격적으로 보급하기로 했으며, 이를 통해 2028년까지 약 23만 명의 환자를 돌볼 계획이다. 이러한 정부 기관의 노력 덕분에 향후 치유농업이 더 많이 확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