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남한산성 애상
8월의 뜨거운 열기가 무색하게 남한산성 언저리는 눈이 시리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한낮의 열기는 온데간데없고, 지나는 마스크로 인해 한겨울 추위보다 더 시리다. 활짝 핀 손바닥으로 성을 밀어 본다. 손바닥으로 전해오는 군상과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죽어가는 자의 비명에 가슴이 멍해진다. 지난 시절 (20~30대)에 이 산성은 연애의 데이트 장소이고, 이곳에서 사랑도 얻었으나, 지나간 역사 속의 사람들에 대하여 안중에 없었다.
고난의 시간들을 제법 겪으며 들과 산의 고난의 시간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오늘 찾은 남한산성은 그러한 고난과 경험의 시간이 보태져 그 시대를 온몸으로 받는 것이리라.
이 성은 한 나라가 꺾여 망한 현장이다. 애시 당초 그때의 전쟁은 이 겨레에게 어떤 것일까
이 전쟁의 시작은 관념적 주자학이 근대적 합리주의에 일시적으로 정신 승리하면서 발발한 것이라고 감히 주장한다. 광해군을 역사가 그를 어떻게 평가하던 임진, 정유의 전란은 민초의 삶과 무너진 경제를 회복시키는데 그 힘을 다하였다. 그러던 중에 신흥강국인 여진족은 중원을 향해 나아가고 동북아시아에서 그를 대적할 자 없었다. 다만 그들 여진족은 7년간의 전쟁에서 피폐해진 조선에 대해 안중에 없었고, 광해 역시 강국인 여진족에게 대항할 여력이 없었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여진족은 전쟁만 능한 것이 아니라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무기체계와 군사편제가 제법 근대적 조직을 갖추었고, 이후 중원을 차지한 후 시행한 고증학이라는 근대 학술도 발전시켰다. 즉 여진족은 이미 근대화가 되어 중원을 차지할 준비를 마쳤다. 이에 반해 조선은 왜란을 혹독하게 경험했음에도 관념론을 주류로 하는 주자학이 정신세계와 국가체제를 지배하였다.
그러나 민초들은 왜란 후 조선 지배층의 무능함을 알고 있었다. 이는 변하지 않으면 국가가 무너질 것이라는 위험 신호이다.
임진왜란은 이긴 전쟁이다. 임진왜란의 승리는 백성이 그나마 조선 지배층에 대한 어떤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이 있은 후 주자학적 관념 층은 더더욱 지배층을 강하게 자리 잡았지만, 민초들은 전쟁 후 오직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 본능만 있었을 뿐이다. 이러한 과거는 여진족의 정묘호란, 병자호란의 두 번의 전쟁에서 임진왜란과 같은 제대로 된 의병이 없었다는 것을 보면 이를 증명한다.
이제 주자학의 관념론이 정신 승리하여 전쟁은 시작되었다. 이는 앞서 본 바와 같이 근대적 무기 및 군사조직을 가진 야만족인 여진족에 대한 곧 죽음을 의미하였다. 전쟁은 시작되었지만, 관념론에 사로잡힌 위정자들은 전쟁을 아주 우습게 알았다. 전쟁은 시작하면 지난 임진년처럼 민초들이 촛불처럼 일어나 사나운 여진족을 막아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전쟁은 한 달여간 제법 버텼지만, 왕조가 없어지는 사정에 처하게 되자 그나마 현명한 최명길의 주청에 따라 살기 위해 항복하였다. 그런데 인조의 항복은 왕조로서는 수치스러운 것이었지만 조선의 왕조는 없어지지 않았으며, 민초는 전쟁이란 생존 게임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남한산성의 전쟁은 민초들의 삶을 도외시한 채, 오로지 지배 논리에 치우친 주자학의 관념론자들이 자신을 위하여 전쟁을 시작하고, 민초들이 이에 응하지 않자 그 자신들이 먼저 살려고 많은 것을 내어주고 항복하였다. 그 전쟁 배상금은 결국 민초들의 세금으로 충당하였다.
남한산성은 내게 말하고 있다. 전쟁의 시작점에 관념론자들은 세 치의 혀로써 국가 운명을 결정하는데 백성의 삶을 생각한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니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오로지 자신의 우주관에 사로잡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 것이다, 그래서 관념론자들이 위정자가 되었을 때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쟁의 끝 지점에 관념론자들은 마치 전부 집단 자결이라도 할 듯이 길길이 날뛰다가 막상 왕조의 말살 위정자 집단의 집단 학살이라는 두려움 앞에서 아주 쉽게 항복하였다. 아주 쉽게 항복하였다고 단언하는 이유는 항복 이후에 그 누구도 국가를 위해 자살한 자도 없으며 전쟁배상, 공녀는 전부 백성의 몫이었고, 그 관념론자들은 지위와 재산을 그대로 보존하였다.
오늘에 이르러 이러한 관념론자들이 위정자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니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때의 민초는 누르면 그대로 어쩔 수 없이 당하였지만, 이제는 누르면 정강이를 내리칠 줄 아니까. 남한산성 그 속에서 처절함이 있지만, 그것이 민초, 국민이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지 온몸으로 말하고 있다.
어느덧 뜨거운 햇살과 마스크들은 점점 엷어지고, 남한산성에서의 격정도 이만 멈추었다. 이제 세상이 검고, 흰 마스크 속에 전쟁을 치르고 있고, 역시 힘겨운 것은 오늘 민초, 곧 국민이며 그때나 이때나 각자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고, 위정자들 역시 그때의 관념론자와 별다를 것이 없으니 어이 할꼬. 어느덧 뜨거운 햇살이 물러서고, 옆을 오가던 검고 흰 마스크들도 어느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 남한산성에 다가섰던 과객의 눈가에 낙조에 맺힌 이슬을 닦아 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