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FAIR

2025-10-10     최보람 기자

KIAF에서 만난 차세대 유망 작가 10인


9월 3일부터 7일까지 개최된 ‘키아프 서울 2025’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경기 침체 우려 속에서도 고가 작품부터 중저가 작품에 이르기까지 활발한 거래가 이어지며 젊은 작가들의 작품 또한 컬렉터와 관람객의 이목을 끌기 부족함이 없었다. 키아프 참가 갤러리들이 추천한 작가 가운데, 주요 미술관 학예사와 독립 기획자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공정한 심사를 거쳐 최종 10인을 선정하는 ‘Kiaf HIGHLIGHTS’. 올해 선정 기준은 동시대 시각예술의 흐름을 반영하면서도 새로운 창작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잠재력에 맞춰졌다. 소재와 매체 실험을 통해 독자성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차세대 작가들을 소개한다. 

 

 

김아라 작업의 가장 큰 특징은 그림을 받치던 ‘지지체’를 작품의 주인공으로 내세운다는 점이다. 그는 문과 창문의 격자구조, 지붕의 무게를 받치는 공포(栱包) 등 전통 건축 요소들의 형태와 원리를 빌려와 나무 캔버스 틀을 새롭게 조각하고 재구성한다. 여기에 실제 오래된 목조 건물에 칠해진 단청의 독특한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전통 동양화 물감인 분채와 현대적인 아크릴 물감을 섞어 쓰는 등 재료에 대한 탐구를 더했다. 단순히 옛것의 형태를 따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통과 현대를 잇는 새로운 만남을 만들어내려는 작가의 고민이 담긴 결과다.

 

 

그는 자신의 기억을 뒤섞어 그림으로 표현한다. 그는 일부러 연관 없는 사진이나 풍경, 기억의 이미지들을 캔버스 위에 콜라주처럼 펼쳐 놓는다. 쉽게 읽히지 않는 이 구조는 오히려 관객으로 하여금 더 오래 그림 앞에 머물게 만든다. 김정인은 작업을 통해 현실을 다시 조율하고 배열한다. 그는 “예술은 자유로운 생각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전시나 판매 같은 현실의 틀 안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털어놓는다. 그럼에도 붓을 놓지 않는 이유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어지럽고 해석되지 않는 현실의 파편들을 다시 배치하며 나만의 질서와 리듬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무나씨는 보이지 않는 ‘마음’을 그리는 작가다. 그의 흑백 그림 속에는 표정 없는 인물들이 등장해, 손짓과 몸짓만으로 슬픔, 기쁨, 고독 같은 감정을 연기한다. 작가는 자신의 예명 ‘무나씨’가 “‘나’라는 존재에 갇히지 않고 세상으로 열려 있고자 하는 뜻을 담은 ‘무아(無我)’에서 왔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은 구체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감정의 순간을 포착해 조용한 위로를 건넨다. 무나씨는 홍익대학교에서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일찍이 일러스트레이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2014년 영국의 ‘YCN 프로페셔널 어워드’에서 수상했다. 이후 순수미술 작가로서 서울은 물론 파리, 시카고 등 해외에서도 꾸준히 개인전을 열고 있으며, 뉴욕과 독일 라이프치히의 A-World-Between_Ink-on-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등 국제적으로 활동 무대를 넓혀가고 있다.

 

 

 

 

 

박그림은 한국 전통 불화(佛畫)의 형식에 자신의 이야기를 겹쳐 그린다. 성스러운 종교화의 양식 안에 자신의 퀴어 정체성과 경험을 담아내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사회를 나누는 여러 이분법적인 시선 속에서, 퀴어라는 존재가 차별 없이 동등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그는 전통을 빌려 현재를 이야기하고,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소외된 존재들을 위한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낸다. 작가는 “‘간택’이라는 제목을 거꾸로 뒤집어, 스스로를 선택하는 퀴어한 주체의 이야기로 읽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박노완은 거리를 배회하며 발견한 사소하고 기이한 풍경을 그린다. 깨진 주차금지 표지판, 군복 입은 마네킹, 미용실 앞 빨래 건조대, 인삼 모양 조형물처럼 누군가의 왜곡된 취향과 무관심이 뒤섞여 사회의 단면을 이루는 대상들이다. 작가는 이들을 충실히 재현하는 대신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해 일부러 모호한 얼룩과 흔적으로 남긴다. 이를 통해 쉽게 읽히고 사라지는 이미지들 사이에서 잠시 멈춰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회화를 선보인다. 그의 그림에 담긴 ‘김빠진 농담’ 같은 허무함과 자조적인 태도는, 불안한 현실을 견디며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작가의 솔직한 모습과도 겹쳐진다

 

 

 

 

 

 

 

 

이동훈은 조각을 만들고, 다시 그 조각을 그린다. 그는 “그림을 어떻게 그릴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조각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스스로 만든 조각을 정물처럼 관찰하며 캔버스에 옮기는 독특한 순환 구조. 이를 통해 작가는 조각과 회화의 경계를 탐색한다. 최근 그는 K팝 아이돌의 역동적인 춤 동작을 주요 소재로 삼아 그 순간의 에너지와 형태, 색채를 나무 조각과 회화로 포착하고있다. 그는 조각을 관찰해 그림으로 그린다. 조각을 다시 그리는 과정을 통해 그는 형태와 색, 재료의 질감을 바라보는 방식을 집중적으로 탐구한다

 

 

유 시아오 작가는 캔버스를 자르고 접고 다시 조립한다. 그는 이 과격한 행위를 통해 회화의 숨겨진 구조를 드러내고, 사회적으로 외면받아온 여성의 신체적 트라우마와 감각을 이야기한다. 작가에게 그림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상처받고 애도하며 마침내 자유를 재구성하는 ‘살아있는 신체’와 같다. 그는 자신의 작업 방식을 ‘절단의 역전 기법’이라 부른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캔버스 천을 잘라 보통은 숨겨져 있는 나무틀이나 캔버스 뒷면의 얼룩을 그대로 노출시킨다. 그는 “언제나 회화의 겸손한 ‘종’으로 기능해왔던 스트레처는 이제 빛 속으로 걸어 나와 주연의 자리를 차지한다”고 말한다. 버려진 마스킹 테이프를 뭉쳐 만든 공, 작품 위에 찍힌 붉은 점 등은 상처와 생명을 상징하는 그만의 언어가 된다.

 

 

프랑스 작가 지오프리 피통의 작품은 보는 이에게 즉각적인 즐거움과 기쁨을 선사한다. 그래픽 디자인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는 생생한 색채와 추상적인 형태로 가득한 종이 위 회화를 선보인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마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주문한 음식의 첫 입처럼 즉각적인 만족감을 주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 말대로 그의 그림은 관객을 에너지 넘치는 시각적 축제의 장으로 불러모은다. 그의 작업 방식은 전통적인 회화의 틀을 벗어난다. 캔버스 대신 재활용지를 사용하고 , 안료와 아크릴 바인더를 직접 섞어 자신만의 물감을 만들어 쓴다. 빠르게 마르는 물감과 매끄러운 종이의 조합은 예상치 못한 질감과 생생한 에너지를 표현하게 해준다. 

 

 

홍세진 작가는 감각이 기술과 환경을 통해 어떻게 새롭게 구성되는지에 주목한다. 어린 시절 청력을 잃고 인공와우를 통해 세상을 접하게 된 개인적인 경험이 작업의 출발점이다. 작가는 “감각은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환경을 통해 끊임없이 변형되는 과정임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그의 회화는 이처럼 온전히 합쳐지지 않고 어긋나고 겹쳐지는 감각의 구조를 기하학적인 조형 언어로 탐구한다. 그의 그림 속에는 기계 부품이나 산업적 풍경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이는 감각이 기술 장치를 거치며 나타나는 단절과 왜곡, 지연의 상태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다. 

 

 

조은시의 회화는 정교하게 설계된 암호이자 수수께끼와 같다. 그는 개인과 공동체, 부분과 전체의 상호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기호와 상징, 도표 같은 형식으로 풀어낸다. 작가는 가족, 먹이사슬, 자연재해처럼 인간의 의지로 제어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구조’와 ‘닮음’의 원리에 주목한다. 그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인가의 일부이면서도 온전한 하나로 살아간다”고 말하며 관계 속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독특한 회화를 선보인다. 그의 작업 방식은 개념적이며 치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