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눈 온다, 사랑한다 - 이신

2018-01-22     이신

 

 

 

눈 온다, 사랑한다

 

세상에 있는 너, 없는 너

너, 나 사이 빌딩이 서 있고

호칭과 격식이 서 있고

말 하는 네가 있고, 말 못 하는 네가 있고, 눈 온다

알몸의 플라타너스가 길에 서 있고

앞집 담이 들고양이를 내려놓는,

너와 나의 거리들을 당기며 눈 온다

어렴풋이 닿는 손가락 같은 너, 꽃이 온다

말이 온다, 따스한 눈이 온다

 

다족류들아 사랑한다, 파충류야 사랑한다

흰 눈이 쌓이는 날은 바퀴벌레야

너도 사랑한다, 눈 온다

보이지 않는 너와 보이는

나 사이가 밝아진다

사랑한다, 눈 온다

 

가볍고 따스한 손들 내린다

내 머리와 내 어깨를 다독이며

가슴에 가슴을 포개면서, 눈 온다

저, 천지에 꽃잎 같은 하얀 발자국들

스르르 잠이 온다

내 꿈으로 맨발의 손님들 온다

 

고요한 너와 나 사이를 불사른다, 눈 온다

온 겨울을 불태워 흰 숯으로 만드는

사랑 온다, 눈 온다


 

이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