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의 거부감도 있어
과거‘정찰제’, ‘정가제’가 신뢰의 상징처럼 여겨질 때가 있었다. 바가지를 씌우지 않고 정해진 가격만 받겠다는 의지는 소비자에 게 신뢰를 주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소비자가 정찰제를 원하는 않는 시대가 왔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의 발전으로 인해 실시간으로 수요를 예측하고 그에 따라서 가격을 낮추고 올리고는 다이내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이 가능해졌기 때문이 다. 이제 이러한 가격의 변동은 오히려 소비자가 더욱 바라는 바이다. 타이밍을 잘 노리면 얼마든지 더 저렴한 가격에 원하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항공, 호텔, 전자상거래 등의 특정 업계에서 제한적으로 활용되었지만, 최근 에는 기술의 광범위한 반전으로 인해 이제 일반적인 공산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은 물론 보험업계, 공연 티켓, 음식 배달 서비스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 다양한 목적 위해 활용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원시적 형태는 ‘떨이’였다. 물건을 팔다가 손님이 사라질 즈음이거나 마지막 남은 물건을 몽땅 팔고 싶은 판매자가 가격을 내려서 소비를 촉진하는 방식이었다. 여기에 첨단 기술이 개입될 여지는 없었다. 그냥 ‘주인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계획적인 소비를 하기보다는 역시 기분에 의존하기도 했다. 언제 다시 가격이 낮아질지 모르니까 ‘일단 사두자’라는 마음이 작동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가격 역시 감에 의해서 결정되는 일이 대다수였다.
이러한 떨이가 아닌 다이내믹 프라이싱이 시작된 시기는 명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 단초로 여길 수 있는 일이 발생한 것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세계 최대의 승차 공유 플랫폼이었던 우버가 영국 런던에서 발생한 테러를 계기로 일시적으로 가격을 올린 일이 있었다.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났기 때문에 이를 빠르게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우버는 엄청난 사회적 비난에 직면했다. 누군가 다치고, 사망하는 테러의 상황에서 가격을 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일반적인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생각해 본다면 그다지 비난받을 일은 아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사람이 너무 몰리게 되면 수요를 감당하기가 힘들어지고, 결국 가격을 올려 기업이익을 극대화하고 일시적으로 수요를 떨어뜨리는 것도 합당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체계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가격을 올리는 것만이 아니라, 빠르게 내리면서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기업은 미국의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이다.
이곳의 전체 가격은 하루에 250만 번이 바뀔 때도 있다. 실시간으로 경쟁사 가격을 모니터링할 뿐만 아니라 수요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제품의 경우 10분마다 가격이 바뀌는 일도 발생한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펼쳐지고 있다. 다만 이들이 단순히 최저가만을 노리지는 않는다. 이른바 ‘저관여 상품’이라는 것이 있다. 가격의 변동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 제품들이다. 이때 아마존은 가격을 조금 올려서 자신의 마진을 확보하기도 한다.
또 저관여 상품중에서도 ‘히트 상품’이 있을 경우에는 오히려 가격을 적극적으로 내리는 경우도 있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 S7이 출시되었을 때는 가격을 14%까지 내린 적도 있다. 이러한 가격 조정은 ‘아마존 은 저렴한 쇼핑몰이다’라는 인식을 주기 위해서였다. 아마존은 이 방법을 통해서 전체 매출을 25% 이상 끌어올린 적이 있다. 이는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다양한 목표를 위해, 다양한 경우에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단순히 감과 주인의 마음에 의지했던 떨이나 바가지와는 그 차원을 달리한다.
■ 소비자들의 거부감도 있어
초창기 도덕적인 비난을 받았던 우버 역시 지금은 더욱 정교해진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선보여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이른바 ‘서지(Surge) 프라이싱’이라는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손님은 많지만, 드라이버가 별로 없는 경우에는 가격을 조금 올려 드라이버가 해당 지역으로 몰리게 하고, 드라이버가 많은 상태에서 손님이 별로 없으면 가격을 떨어뜨려 다시 드라이버를 분산하게 된다.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가격을 결정하는 과정이 상당히 놀랍고 디테일하다는 점이다. 대체로 이러한 가격 결정은 우버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작동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해당 지역의 날씨, 지역별 특성, 주변 도로 상황까지 예측된다. 예를 들어 폭설이 내리는 지역이라든가, 인기 가수의 콘서트가 끝난 시간에는 가격이 빠르게 올라가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정교한 가격 변화는 해외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인공지능의 시대에 앞서나가는 국가인 만큼, 이제 여러 기업이 서둘러서 이러한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활용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회사가 바로 쿠팡이다. 이곳에서는 경쟁사 온라인 쇼핑몰의 가격을 24시간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때 자사보다 더 저렴한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 있으면 곧바로 가격을 동일하게 하거나 약간 더 낮추게 된다. 이러한 가격 조정을 통해서 쿠팡은 ‘최저가 쇼핑몰’이라는 명성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쿠팡이츠 역시 우버의 서지 프라이싱을 차용하고 있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 많은 배달이 예상되는 날이라면 배달 요금을 높게 책정해서 많은 라이더가 유입될 수 있도록 했다.
어차피 해당 지역의 라이더들은 한정되어 있어서 쿠팡이츠는 더 빠른 배달을 약속하게 되고 이것이 소비자들에게 매력 포인트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카카오 택시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마찬가지로 지역의 수요와 날씨 등을 감안해 가격을 조절하면서 매출의 극대화를 이뤄내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보험업계에서도 이러한 방법이 활용되고 있다. 보험사들은 가입자의 건강 관리를 위한 노력을 반영해 매달 보험료를 조절해 주는 획기적인 방법을 선보였다. 앱으로 측정한 걸음수나 건강검진 여부가 반영된다.
식료품 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큰 유행을 하며 판매가 늘어나고 있는 밀키트 제품이 대표적이다. 이제는 냉동, 냉장 자판기를 통해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실시간으로 판매 개수를 측정할 수 있고, 여기에 남아 있는 재고, 유통기한까지 감안해서 가격을 떨어뜨린다. 특히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작동하는 디지털로 가격을 표시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다이내믹 프라이싱이 언제가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서 비난받을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소비자들은 가격에 매우 민감해서 때로는 고객 신뢰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한때 아마존은 충성도가 높은 고객에게 오히려 높은 가격을 제시하고, 신규 고객의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오히려 저렴하게 판매했다가 이 사실이 발각되기도 했다.
이때 소비자들은 불매운동까지 펼치기도 했다. 또 영국 공연업계에서 티켓의 다이내믹 프라이싱에 대한 찬반 설문조사를 한 결 과 반대가 71%에 달하기도 했다. 가격의 변동이 언제나 소비자들로부터 환영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심지어 탑승객이 몰린다고 해서 택시 요금을 너무 급격하게 올려서 비난을 받기도 한다.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최첨단 기술의 시대에 기업에게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도구이기는 하지만, 정반대로 소비자를 잃을 수 도 있는 최첨단 도구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