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al] ‘나를 찾아 떠나는 유라시아 대평원 - 함영덕 작가
[Serial] ‘나를 찾아 떠나는 유라시아 대평원 - 함영덕 작가
  • 정희
  • 승인 2018.07.05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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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편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가 탄생한 도시 피렌체

레오나르도는 밀라노를 떠나 고향 피렌체로 17년 만에 귀향하였다. 피렌체에서 미켈란젤로라는 22세의 젊은이의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 미켈란젤로는 역동성과 폭발적인 에너지로 어렵지 않게 그림을 그려내는 스타일인 반면에 레오나르도는 매사에 너무 신중해서 작업이 매우 더뎠다. 따라서 사람들은 주어진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미켈란젤로를 더 선호했다. 두 사람의 성향도 뚜렷이 달랐다. 레오나르도는 때로는 수학에 골몰하고 때로는 그림에 몰두하면서 창작활동을 하였다. 차분하고 온유한 성품이었던 까닭에 매순간을 즐겁게 받아들였고 작품이나 행동에서 우아한 기품을 잃지 않았다. 반면에 매순간 삶의 열정에 휩싸여 살았던 미켈란젤로에게는 삶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했다.

 

레오나르도는 수도원의 제단화祭壇畫를 포기하고 피렌체 사교계의 여인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피렌체의 부호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의 부인을 모델로 불후의 명작 모나리자를 그렸다. 그는 4년이란 시간을 투자해 모나리자의 초상화를 완성했다. 프랑스아 1세가 45000프랑에 그 초상화를 가져가려 할 때 레오나르도는 아직 완성된 그림이 아니라고 극구 만류했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의 화풍을 거의 완벽하게 설명해주는 그림 중 하나다. 그는 미술뿐만 아닐라 수리시설을 비롯하여 기계제조와 특이한 구조물들을 설계하거나 발명하여 다방면에 다양한 천재성을 발휘하였다.

반면에 미켈란젤로는 따분한 문법공부에서 벗어나 그림그리기를 좋아했고 마침내 가족들에게 문법공부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부친은 그들 가문에서 예술가가 나온다는 것은 가문의 수치라고 여겼다. 당시 미켈란젤로의 아버지는 부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아들은 기를란다요의 작업실에 도제로 보내야 했다.

기를란다요는 예술을 향한 미켈란젤로의 열정에 감동해서 옛 대가의 그림 하나를 주면서 모사하도록 했다. 미켈란젤로는 그 그림을 모사한 후에 원화 대신 모사화를 스승에게 돌려주었으나 기를란다요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숙달된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어느 날 공원을 산책하던 로렌초가 목신의 얼굴을 다듬고 있는 미켈란젤로를 보게 되고 그의 열정에 감동되어 미켈란젤로를 자신의 곁에 두게 되었다. 로렌초는 젊은 조각가인 미켈란젤로를 틈나는 대로 불러서 자신이 평생 수집한 온갖 종류의 예술품들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와 예술가들의 화려했던 시절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없었다. 로렌초가 겨우 마흔 네 살의 나이에 치명적인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위대한 르네상스의 후원자 로렌초 메디치는 149249일 세상을 떠났다.

 

피렌체를 대표하는 불후의 건축물들과 단테의 골목길

피렌체의 심장부인 두오모광장은 종교와 정치의 중심지였던 아름다운 베끼오궁이 있는 시뇨리아광장에서 불과 10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성모마리아성당과 둥근 지붕인 쿠폴라와 조토의 종탑은 두오모광장을 이루는 3대 건축군이다. 꽃의 성모마리아대성당은 길이 153m, 넓이 38m로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성당이다. 대성당 전면은 고딕양식으로 피렌체의 수많은 성당들처럼 수세기를 거쳐 시민들의 기부금으로 건축되었다. 아름다운 외부와는 달리 내부공간은 단순하고 거의 장식이 없으며 소박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도시 안팎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높이 114m의 거대한 브르넬리스키의 돔은 밀라노 두오모성당 못지않게 우아한 고딕양식 건물로 르네상스의 걸작품이다. 대성당 바로 옆에는 조토의 종탑이 반듯하게 솟아 있다. 조토 종탑은 두오모광장의 한 귀퉁이에 독립적인 건축물로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조토에 의해 건축된 아름답고 화려한 84m의 사각형 종탑은 시민들의 요청에 의해 계획되었다.

조토는 초상화를 창시한 화가였다. 그의 친구인 단테를 그린 초상화가 바로 조토의 작품이다. 조토 이전에도 일부 화가가 실제 인물의 얼굴을 유사하게 그리려 애썼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조토는 실제의 인물과 비슷한 얼굴을 그려낸 최초의 화가였다.

조토의 종탑은 1300년 대 이탈리아 건축물 가운데 고전적인 로마네스크양식과 우아한 기품의 고딕양식을 융합하여 독특한 미적 감각을 느끼게 하는 건물이다. 이 건축물에 3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하는데 조토의 설계로 1층이 완성되고 안드레아 피사노는 벽기둥과 양쪽으로 열린 창과 함께 2층을 건축하고 마지막으로 프란체스코 탈렌티는 그의 세공 기술을 이용하여 세 가지 대리석으로 종탑을 섬세하게 덮었다. 로마네스크양식의 화사한 대리석 색감과 고딕양식의 우아한 기품이 조화를 이룬 조토종탑은 도심 한 가운데를 우뚝 솟구쳐 올라 수백 년 동안 부서지거나 흐트러짐이 없이 한결 같이 세상에 울려 퍼지고 있다.

 

종탑 맞은편 5세기에 건축된 산 조바니세례당이 자리 잡고 있다. 로마네스크양식의 우아한 장식과 3개의 문으로 장식되었는데 안드레아 피사나의 남문, 기베르티의 북문과 천국의 문이다. 특히 기베르티의 작품인 두 개의 문 중 하나는 미켈란젤로에 의해천국의 문이란 찬사를 받았다.

단테의신곡은 르네상스 화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미켈란젤로보다 두 세기 앞서 태어난 단테는 지옥의 예언자로 그림 대신에 글로 형상화했다. 단테와 미켈란젤로는 보통 사람들에게 저승의 세계를 시와 그림으로 보여주었다. 각기 표현 방식은 달랐지만 인간을 교화하는 수단으로 종교에 가장 필요한 수단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단테가 애모愛慕했던 아름다운 여인 베아트리체를 생각하며 좁은 골목길을 돌아나오니 단테의 집 앞에 20여 평 되는 낡은 단테교회가 나타난다. 성 프란체스코 제자인 단테는 정변으로 고향에서 추방되어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 짝사랑 했던 베아트리체가 살았던 중세의 골목길이다. 이제 그도 그녀도 없고 단지 그의 명작신곡만이 후세의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을 뿐이다. 그녀와 그의 이름을 생각하며 찾아온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분주히 오가고 있다. 단테가 생각했던 천국과 지옥은 어느 세계 어느 곳에 위치하는지 알 수 없지만 세속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경건함과 사랑을 실천하는 진실의 통로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나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들처럼 전능함을 마음속에 동경하며 세월을 반추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더 강력하고 가슴 아린 사연들을 각색하고 윤색하여, 드디어 전설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에 상징과 은유의 날개를 달아 나약한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고 위안을 삼고 있는지 모른다. 중세의 골목길에서 거리를 꽉 메운 수많은 베아트리체를 보았다. 단테에게 그녀가 천사 같은 존재이듯이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에게는 그들만의 베아트리체가 가슴 속에 살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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