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끝없는 인간의 욕망– 조영환 남화토건 전무이사
[칼럼]끝없는 인간의 욕망– 조영환 남화토건 전무이사
  • 조영환
  • 승인 2018.12.10 12: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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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연을 정복했지만 그만큼 자연과 분리되었다. 도시인들은 자연의 숲 대신 빌딩숲에 산다. 하지만 빌딩숲은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틈만 나면 자연에 가려 한다. 힐링 투어가 인기이다. 자연과 숲이 주는 안온함과 생기를 얻어가려고 말이다. 숲 속에서 삼림욕을 즐기다가 요즘에는 아예 캠핑 도구를 갖추어서 캠핑카를 타고 자연으로 나간다. 그 곳에서 적당한 수준의 원시생활을 즐긴다. 사냥은 못하지만 덩어리 고기를 불에 굽는다. 나무 위는 아니지만 텐트를 치고 쪼그리고 자면서 별을 본다. 일주일에 한 번 자연 속으로 들어가 식물인 척 흉내를 내보는 것이다. 과거에 인간이 자연의 일부였던 것을 아직 기억한다는 증거이다.


아프리카 사파리 관광객들은 야생동물을 만나기 위해 이 나라 저 나라를 넘나들어야 한다.  동물들에게는 국경이 없다. 국경은 무엇인가? 인간의 욕망이 그려놓은 선이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라는 너른 땅에 자신의 욕망의 양만큼 그려놓은 선! 하지만 동물들은 그런 거 모른다.
 

욕망은 인간의 삶을 활기차게 하지만 인간을 파멸시키기도 한다. 동물들의 욕망은 무한정하지 않으며 사자도 배가 부르면 앞에서 깡총거리는 토끼를 건드리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어떤가? 한 번 토끼고기 맛을 보면 일대에 토끼 덫을 촘촘히 두고는 토끼들을 일망타진할 것이다. 꼬챙이에 줄줄이 꿰고는 소금에 절이거나 냉동하거나 하여 쟁여 놓고 두고두고 즐길 것이다. 보관을 잘 못하면 불쌍하게 희생된 토끼고기를 썩힐 수도 있겠지. 인간의 무한욕망은 지구상의 다른 동물들을 괴롭히거나 싹쓸이했고 그것도 모자라 동종에게까지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옛 중국에서는 적장의 살을 저며 썰어 장조림을 만들어 두고두고 씹었다. 공자의 갑작스런 죽음이 사랑했던 제자 자로가 잡혀 젓갈로 담가진 충격에 의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인간은 참으로 희한한 생명체이다.
 

생물학적 진화는 식물에서 동물로 진행되었지만, 인류의 정신과 문명의 발전은 한동안은 동물적인 것에서 식물적인 것으로 이동했다. 먹을 것을 해결하기 위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정처 없이 살아가던 인류는 처음에는 수렵과 채집으로 근근이 생명을 이어갔지만, 씨앗을 땅에 심으면 다시 열매를 먹을 수 있다는 걸 안 다음부턴 강가에 자리 잡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동물적 이동생활에서 식물적 정착생활로 옮아간 것이다. 서양의 삶이 이동과 정복의 동물적 스타일이라면 동양의 삶은 정착과 조화의 식물적 삶이었다. 
 동양의 세계관은 농경적이다. 리듬과 일정한 주기가 있고 시작과 끝이 꼬리를 물고 순환한다.  도가가 추구하는 고요함과 텅 빔, 부드러움과 연약함, 골짜기와 여성스러움 등은 자연에 순응 하는 ‘식물적 삶’의 모습의 전형이다.


이러한 동양의 전원적 풍경은 공격적인 서양의 동물적 도발에 밟히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서양제국들에 의한 동양의 식민지화이다.  그리고는 식물이 동물의 먹이가 되는 것처럼 동양과 신대륙도 서양과 구대륙에게 자신을 내주게 되었다. 서양은 일찍이 자연을 객관화하여 조사하고 연구하고 개발하였다. 그렇게 얻어진 기술과 문명은 자연을, 다른 종을, 심지어는 동종인 인간까지도 지배하고 복속시키는데 쓰여졌다.
 

그런데 중세이후 근대의 이성, 과학, 제도의 발전은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만들었다. 이제 인간의 세계는 신과 분리되었다. 자연도 더 이상 신의 그늘 아래 있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구분하는 이성의 능력은 이제 구분을 넘어 차별과 정복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인간은 동종의 고통과 아픔을 제물로 받아 자신을 살찌울 수 있는 재미있는 생명체이다. 생존이라는 절박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이념이 달라서, 종족이 달라서, 신앙이 달라서, 심지어는 기분이 안 좋아서 동종을 살해한다. 동물들의 힘겨루기가 항복과 복종의 의사표시로 종결되는 데 비해 인간의 동종 살해는 조직적이고 거대하다.
 

현대문명은 다시금 동물적인 스타일로 선회하고 있다. 정보와 자본과 기술의 이동이 숨 막히게 빠르다. 현대인들은 마음으로나 몸으로나 시시각각 움직인다. 생존을 위해 재빨리 이동해야만 하고 남들을 제쳐야 하고 변화해야 한다. 그래서 숨 돌릴 겨를이 없다. 그렇게 바쁜 생의 회로를 돌다가 언제 끝이 오는 지도 모른 채 죽음을 맞는다. 하늘 보고 별 보고 달 보면서 별자리에 얽힌 전설과 달 속의 토끼를 상상해보는 작은 낭만조차 누리지 못하는 게 요즘 사람들이다.
 

이러한 동물적 스타일의 삶은 가정과 학교, 사회와 국가에서 지극히 장려되는 삶의 방식이다. 재빠른 움직임에 따라 석차가 매겨진다. 학교에서는 학생의 성적을, 사회에서는 구성원의 서열을, 국가에서는 기업과 기관, 심지어 대학의 순위까지 친절하게 매겨준다. 국제적으로도 예외가 아니다. 국민총생산과 교육, 의료, 복지수준을 낱낱이 조사하여 국가별 등위를 만들어준다. 그래서 지구상의 모든 존재는 이 기준들에 의해 한 줄로 세워질 수 있다. 국가-기업-학교-성별-가정의 계층에 따라 누구든지 일련번호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이제 각자의 삶의 목표는 이 일련번호를 어떻게 앞으로 당기느냐가 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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