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브레이커블’에서 ‘글래스’까지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선사하는 새로운 히어로물의 쾌감
‘언브레이커블’에서 ‘글래스’까지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선사하는 새로운 히어로물의 쾌감
  • 전인수
  • 승인 2019.01.2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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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가 있습니다.
히어로물을 표방하는 ‘글래스’의 마지막 장면은 기묘하다. 영웅의 아들과 몬스터의 친구 그리고 빌런의 어머니가 나란히 앉아 죽은 그들의 능력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기다린다. 빌런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과 몬스터에 의해 죽은 사람들 그리고 영웅과의 악연은 잠시 잊혀 진다. 왜 이들은 분노 혹은 추모의 감정이 아니라 열렬한 기대의 감정으로 한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일까. 우선 다른 히어로물들과 달리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만든 ‘글래스’의 세계가 완전한 현실 세계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히어로물의 세계관은 다양하다. 현실 세계에 판타지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개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불가능한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 작가나 감독은 현실 세계에 작은 틈을 만들어 낸다. 최초의 영웅들은 대체적으로 무능한 사법기관을 대신하는 사설 경찰의 이미지와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영웅들의 캐릭터에 입체감을 높여가면서 인물들은 점차 복잡해졌고 이들이 사회와 관계 맺는 모습 역시 다양화됐다. 그 과정에서 영웅들은 좀 더 사회 현상은 반영하는 방향으로 풍부함을 더해갔다. 단순히 미지의 힘을 가진 외계의 영웅에서 고도의 기술적 발전에 따른 도구를 이용하는 등 설득력을 갖기 위해 여러 설정들이 이용됐다. 생물학적 변종이 히어로가 됨으로써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소수자들의 모습과 공명하는 캐릭터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히어로물을 감상하는 관객들은 관대해진다. 상상적 현실의 재현을 즐기는 관객들은 이미 설정상의 일부 공백을 눈감아줄 준비가 되어 있다. 사람이 하늘을 날아다녀도,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신비한 물질이 등장해도 한 두 문장의 설명이면 대개 납득하고 만다. 오히려 이러한 허술한 약속이야말로 아슬아슬하게 판타지와 현실을 넘나들고 싶은 히어로물과 관객의 유쾌한 공모 관계라고도 할 수 있다.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글래스’의 세계는 이러한 판타지적 공모를 완전히 제거하려고 노력한 세계다. 세팅 단계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이 오히려 현실이라는 한계이다. 세 편의 시리즈 물 중 마지막 편인 ‘글래스’는 그래서 관객을 놀라게 하는 화려한 특수효과나 액션신이 등장하지 않으며 캐릭터들의 초인적인 능력들도 보편적인 인식을 넘어서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히어로물 영화들이 현실의 물리적 법칙을 초월한 장면들을 통해 극도의 쾌감을 선사한다면 ‘글래스’는 히어로물의 장점을 상당 부분 포기한 설정을 선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신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세계관이 주는 쾌감은 단단한 현실감에 기반한다. 영웅의 세계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세계와 측거점이 완벽하게 일치한다면 아주 작은 능력의 차이도 강력한 파동을 만들어 낸다. 또한 세계의 일치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도 초월적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상상을 가능하게 만든다. 혹은 관객 자신이 어쩌면 영웅의 자질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을 가능하게 만들면서 은근한 희열을 불러일으킨다.
 
언브레이커블(2000)
언브레이커블(2000)
 
이러한 재미가 가장 극대화 되었던 영화가 시리즈의 첫 편이었던 ‘언브레이커블’(2000)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자신의 능력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 데이빗 던이 부서지지 않는 몸을 가진 비범한 능력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알아가게 되는 과정을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특히 데이빗 던은 부상으로 풋볼 선수를 그만두고 경기장 경비로 살아가는 평범한 인물로 설정됐다. 게다가 주인공은 아내와의 관계에 문제를 겪고 있으며 자신이 가진 능력과 달리 어둡고 침체돼 있다. 데이빗 던의 캐릭터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도구적 존재로 주변부에서 살아가는 대다수의 소시민을 표방한다. 그런 그가 자신의 진정한 힘을 알게 되었을 때 영화는 극적인 쾌감을 선사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 초월적 영웅이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은 가능성에 대한 긍정이다.
 
가상적 세계를 만들어낼 필요 없이 현실 세계가 품고 있는 놀라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샤말란 감독이 제시하는 상상의 끈은 만화다. 태어날 때부터 부서지기 쉬운 몸을 타고난 엘리야는 히어로 만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초월적 능력들이 인류 역사를 반영한 결과라고 믿는다. 그의 믿음은 자신처럼 부서지기 쉬운 몸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있다면 반대로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 몸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생각으로 이끌고 그를 찾아 나서게 한다. 그는 수차례의 인위적 대형 사고들을 만들어 내고 결국 부서지지 않는 사람인 데이빗 던을 찾게 된다.
 
샤말란 감독은 만화의 세계를 재창조하기보다는 만화를 끌어들인 새로운 현실 세계를 창조했다. 이 세계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진 세계다. 그리고 현실 너머의 어떤 영역을 세계로 불러와 이 세계를 더욱 풍부하게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식스센스’(1999)에서 감각하지 않는 세계, 미신적 세계와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현실을 확장하는 작업을 한 것과 동일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식스센스’에서 영적 세계에 포함된 주인공의 깨달음이 결국 인물들의 화해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글래스’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내재한 영웅적 면모와 현실 세계의 가능성을 확장하려 한다.
 
23 아이덴티티(2016)
23 아이덴티티(2016)
 
‘글래스’에 등장하는 악역 역시 단순한 몬스터가 아닌 현실에 기반한 상상의 창조물이다. ‘23 아이덴티티’(2016)에 등장한 다중 인격을 소유한 캐릭터 ‘케빈 웬델 크럼’은 정신과적 증상을 갖고 있는 환자이지만 동시에 여러 인격의 능력을 발휘하는 가능성의 존재다. 그에게 문제가 발생한 이유 역시 어린 시절 학대라는 단서를 달아 두었으며 짐승의 힘을 발휘하는 24번 째 인격 ‘비스트’를 깨우려고 하는 것은 ‘상처 입은 자들이 더 진화된 존재’이며 이들에 대한 보상을 하기 위해서다.
 
 
‘언브레이커블’과 ‘23아이덴티티’를 통해 샤말란 감독은 히어로 만화의 두 축인 빌런과 몬스터 그리고 영웅을 모두 준비한 셈이 된다. 그런데 ‘글래스’에서 영웅과 악역의 대결과 승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애초 이들이 대결하는 초반부 장면에서 영화는 관객들의 기대를 무너뜨리고 경찰과 정신과 의사 엘리스테이플 박사에 의해 스펙터클을 중단시킨다. 그리고 박사에 의해 정신병원에 갇힌 ‘데이빗 던’, ‘케빈 웬델 크럼’, ‘엘리야’는 자신들을 과대망상증으로 의심하는 박사에게 설득 당하지 않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영화의 전개 부분이 온전히 박사의 설득과 논리 전개에 치중돼 있다. 설득하려는 자와 설득당하지 않으려는 자들의 싸움이다. 복잡한 도심과 개활지,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싸움을 벌이는 다른 장르영화들과 공간도 다르다. 외따로 떨어진 정신병동에서 인물들은 고군분투한다. 히어로물들이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의 대결이라는 선명한 구도를 구축하고 있는 반면에 ‘글래스’의 인물들은 선악의 구분이 모호하다. 이는 실제로 인물들이 서로 대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글래스’에서 선역과 악연은 비범한 능력을 가진 이들과 그들의 자각을 무마시키려는 제도권의 압력이다. 정신병원이라는 공간과 하얀 옷을 입고 감시인을 맡은 정신과 의사 엘리스테이플 박사의 이미지에서는 이미 제도적 강압과 권력의 작용을 암시하는 여러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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