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되짚어 보는 시간 우리들은 가끔 과거가 그립습니다. For 1970년도
추억을 되짚어 보는 시간 우리들은 가끔 과거가 그립습니다. For 1970년도
  • 이가영
  • 승인 2019.04.1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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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의 추억을 돌아보는 길
때론 우리들은 추억에 잠기면서 그땐 그렇게 지냈지. 라고 말할 때가 있다.
각박한 현대보다 과거가 좋았다, 또는 그 시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지금은 없지만 옛날엔 있던 그런 고리짝 이야기. 1970년대 베이붐 세대의 끝을 장식하고 유신시대로 넘어가며 미풍양속을 중요시 여기던 시대. 새로운 문물의 도입과 남북문제, 그리고 현대까지도 이어지는 문제점 등이 있었다.
 
1970년대는 유신의 시대
남북분단이 완전히 굳어진 시기로 볼 수 있으며, 제4공화국시작이며 박정희 정부의 시대 통칭 유신의 시대. 스포츠가 성장기를 거치는 시기로 이 시기에 진행된 1976 몬트링로 올림픽 레슬링 경기에서 처음으로 레슬링 선수 양정모가 대한민국에 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안겨줬다.
 
서울에선 아시아경기대회(아시안 게임)를 1970년도에 주최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북한의 위협문제를 비롯한 경제문제 등으로 반납하게 된다. 지금에야 남북의 관계는 나름 평화로운 분위기지만 1970년 당시엔 남북의 관계가 준전시 상태로 갈 뻔한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으로 남북관계는 상당히 험악했으며, 이들의 도발은 과거에도 계속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신정권에 대한 반발과 자유성을 표현하기 위해 남자들은 장발, 여성들은 미니스커트를 착용하던 시기로 이 당시 대학에 경찰을 배치해 장발의 남성과 미니스커트를 착용한 여성을 단속하며 미풍양속에 대한 강조와 청년들의 자유성을 억제하는 등이 있었다.  특히 미니스커트 단속 방식은 지금 생각해보면 미풍양속을 오히려 해치는 요소가 아닐까 상기하게 된다고...
 
70년대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左)와 음악을 틀어주는 DJ(右)
70년대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左)와 음악을 틀어주는 DJ(右)

 
당시 단속 방식은 이러하다. 경찰들은 30cm의 자를 소지하고 여성의 치마길이를 직접 재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그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도 경찰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마저 나올 정도. 장발 또한 그 시대 청년들의 현 정권을 향한 반발심으로 표출되는 요소였으며, 당시 경찰들은 장발남성들을 잡아 머리를 깎은 후 보내는 방침으로 단속을 진행하곤 했다.
 
1970년대의 경제
경공업위주에서 중공업 육성정책으로 변해감과 동시에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자 태동의 시기지만, 왜채(일본인에게 비싼 이자로 빌려 쓴 빚)의 급증과 물가 상승으로 인해 60년대에 비해선 둔화되었다. 당시 GDP(국내총생산량)는 연간 7~8%이상씩 성장하며 잘 나가는 해엔 12%까지 성장했다. 이 성장은 2, 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국민들의 노력에 의한 영향력 및 기성세대(1900~1930년생)의 집단주의적 특성도 한몫했다.
 
물론 국가 규모의 지표는 급격하게 발전 중이었으나, 군부독재의 한계로 인한 저임금 정책, 노동인권 탄압이 이뤄지는 시기로 1970년에 발생한 분신사건과 함께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학생들과의 연대가 이뤄지며, 이 때 고착화된 노동 인권적 가치가 현대까지도 이어져 이른바 열정페이로  정의되는 이것은 지금도 이어지는 고질적 문제로 꼽는다.
 
1970년대의 문화: 음악
흔히 말하는 7080 세대들의 노래가 세상에 선보인 시기.
1970년대 가요계의 아이콘이었던 나훈아, 남진의 투톱 체제와 트로트 가수들의 최전성기를 맞이하며, 송창식, 양희은, 김민기와 같은 초창기 포크 가수들이 등장하며 한국의 음악 장르 확장에 기여하며, 신중현에 의해 록 음악이 본격적으로 태동하기 시작했다. 70년대 후반엔 대학가요제, 강변가요제등이 개최되며 한국의 밴드음악에 활기를 불어넣기 시작한 시대로 꼽는다. 이 시기에 데뷔한 유명한 가수론 조용필과 태진아.
 
우리가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 음악들의 대다수인 7080 복고노래는 이 시기부터 시작되었고,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가수들도 이 시대에 데뷔하고 활동하는 분들도 포함되어 있다.
 
1970년대의 문화: 만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게임
만화와 애니메이션 문화는 1960년대와 거의 동일할 정도로 좋지 않은 시대로 불리며 현대의 만화산업에 있어 암흑기.
1960년대에 이어 이 시기에도 만화에 대한 검열은 이어지고, 만화의 설정을 모방하다 사망에 이른 정병섭군 자살사건으로 인해 그 인식은 바닥을 쳤다. 이 사건은 현재에 와선 악몽 또는 흑역사 취급을 받지만, 그 당시엔 노골적으로만화를 비판. '불량만화'라 분류된 만화책을 수거 후 불태우는 등의 부정적 인식과 시선은 급상승하고, 만화가들의 사회적 지위는 거의 나락으로 추락했다. 지금에야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일부 행동은 현실에서 불가능하단걸 알리기 위해 ‘이 행동들은 현실에선 불가능하니 절대 따라하지 마세요.’ 등 주의 문구나 영상을 출력하는 방안이 있지만 당시엔 이런 것조차 없었으니 바닥을 칠만했다. 애니메이션 역시 만화산업과 마찬가지로 침체기였으나, 1976년도에 와서 로봇이 등장하는 일련의 SF애니메이션의 제작으로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새롭게 부상되었다.
 
로봇태권V 디지털복원상영 포스터(左)와 이상무 화백의 독고탁(달려라 꼴찌)시리즈 복간본(右)
로봇태권V 디지털복원상영 포스터(左)와 이상무 화백의 독고탁(달려라 꼴찌)시리즈 복간본(右)

 

이때 나온 것이 바로 로보트 태권V. 태권V가 히트를 친 후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주로 SF 로봇 특촬물이 주를 이뤘으며 방학을 맞춰 어린이를 타겟으로 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개봉되는 흐름이 만들어졌다. 로봇물의 등장과 함께 야구 붐을 타고 제작된 황금의 팔, 독고탁 태양을 향해 던져라 등 독고탁(달려라 꼴찌) 시리즈와 같은 야구 애니메이션이 개봉되며 종교성향을 담은 애니메이션 다윗과 골리앗과 당시 유행중인 과학소년 성향을 반영한 꾸러기 발명왕 등이 있었다. 이런 발전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전체적으로 표절하거나 로봇 애니메이션의 경우 일본의 특촬물 속의 로봇을 그대로 가져와 베낀 예가 빈번했을 정도. 국내 게임 문화의 경우 비디오게임을 비롯한 전자기기 게임의 기원은 확실치가 않기 때문에 개발보단 도입 위주로 언급하면, 1970년대 중반인 1975년 서울 명동에 위치한 지금의 명동 롯데 영플라자(당시엔 미도파백화점 본점)에서 컴퓨터 TV란 이름으로 퐁 클론을 입하한 것이 한국에서 최초로 등장한 비디오 게임으로 추측되는 상황.
이 시기 이후 초반엔 미국과 일본의 해외 게임을 수입하는데 주력했으며 오락실 게임이나 컴퓨터 게임 구분하지 않고 해외에서 들인 게임들 혹은 게임을 카피하거나 해킹하는 게임들이 주를 이뤘다.
 
1970년대의 문화: 영화, 음식
1970년대의 영화문화는 1960년대에 비해 침체되는 시기였다. 침체의 원인 중에는 1970년대 10월 유신에 인한 사회문화적으로 표현의 자유가 검열되는 문제점을 꼽으며 당시 텔레비전의 보급화를 통한 극장의 이용이 적어지고 외국의 영화들이 침범함으로서 큰 침체기를 겪게 되었다. 당시 외국의 영화들은 한국영화의 사회사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신선한 재미와 화제로 이목을 끌었고, 한국 영화업계들은 이 외국영화 수입을 위한 쿼터제를 맞추기 위해 그야말로 엉성함과 부실함만이 부각된 졸작을 양산해 영화의 전체적인 질적 저하를 부르는 대 참사를 일으켰다. 이 시기의 영화들은 흑백에서 컬러로 변화를 거친다. 선 촬영, 후 녹음에서 동시 촬영하는 과정에서 촬영과 함께 녹음이란 방식으로 변경을 통한 발전으로 나아간다. 대대적인 장르는 '청년영화'와 '액션영화' 청년영화는 당시 억압적인 사회를 배경으로 이상을 추구하고 번민하고 고뇌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그려내는 영화가 주를 이루었다. 1970년대의 끝 무렵에 등장한 패스트푸드는 서울 중구 소공동에 롯데리아 1호점이 들어선 이후부터 시작된다. 이 당시의 패스트푸드는 간단하게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을 어필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당시 젊은 층에게 양식화 경향에 따라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맨발의 청춘(1979)의 한 장면
맨발의 청춘(1979)의 한 장면
 
어두운 점과 밝은 점이 함께하는 시절의 기억
서서히 지금 알고 있는 현대와 조금씩 가까워지는 시대인 1970년대.
문화적으로 서서히 침체되어 가고 전쟁 직전까지 이를 뻔한 사건도 있었지만 그렇게 어두운 면만이 있던 시대는 아니었다. 모두가 함께 경제적인 성장을 이루고 함께 웃고 즐기고 새로운 맛을 알아가던 시기일 것이다. 때론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그 시절이 그리워하며 때론 동심으로 가고 싶은 게 아닐까?
 
<1980년대의 시간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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