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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되짚어 보는 시간 우리들은 가끔 과거가 그립습니다. For 1990년도
추억을 되짚어 보는 시간 우리들은 가끔 과거가 그립습니다. For 1990년도
  • 안철홍
  • 승인 2019.06.18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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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우리들은 추억에 잠기면서 그땐 그렇게 지냈지. 라고 말할 때가 있다.
각박한 현대보다 과거가 좋았다, 또는 그 시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지금은 때때로 떠오르는 추억을 떠올리는 시간. 1980년대가 끝나고 1990년대는 지금과 문화와 기술적 발전점만 제외하면 가장 비슷한 시기이며 현재의 2~30대들은 이 시기에 속할 것이다. 다양한 문화가 들어오고 아이들이 가장 뛰어놀기 좋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그 시기. 순수하게 서로 상부상조를 하던 그 시기를 떠올려봅니다.
 
 
1995년에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부실공사의 위험성을 상기시켰다.
1995년에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부실공사의 위험성을 상기시켰다.
 
1990년대 현재와 가까운 천국과 지옥 사이
1990년대는 문화와 기술의 발전이 없을 뿐. 의외로 현재의 모습과 거의 비슷했다.
서로 상부상조하며 놀이터엔 아이들이 뛰어놀면서 즐겁게 놀던 시기.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에겐 90년대의 놀이방식이 가장 나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에 와선 활발하게 노는 것 보단 얌전히 집에서 전자기기를 가지고 노는 방향으로 나아가거나 어린나이에도 학업에 집중해야만 하는 사회인만큼 안타까운 일이다. 이 땐 인명재난 또한 많이 발생했었는데 대표적인 사건으론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 사고(1994), 성수대교 붕괴사고(1994), 삼풍백화점 붕괴사고(1995)가 있다. 특히 부실공사로 인해 발생한 성수대교 붕괴사고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부실건설로 인한 결과와 함께 안전불감증에 대해 철저하게 알려준 사건으로 남겨져 있다. 일부 미디어 매체 및 창작물에선 이 사건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있는 만큼 직·간접적으로 접해본 사람들도 있다. 인명사건 외에도 1990년 말에 발생한 경제위기로 인해 1990년대의 우리나라는 천국과 지옥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금모으기 운동 사진자료=산림청
금모으기 운동 사진자료=산림청
 
1990년대의 경제
1997년에 발생한 외환위기(IMF)가 발생하기 전까진 우리나라의 경제생활은 황금기라 부를 수 있었다. 1990년 6,000달러에 머물던 1인당 소득은 1994년 1인당 GDP가 1만 달러를 돌파하고 1996년 13,138달러에 달했으며 OECD에 가입하기에 이를 정도였으나 1997년 동아시아 전체를 휩쓴 외환위기는 대한민국 조차 피할 수 없었다.
1980년부터 1990년대 까지 이어진 대한민국의 한강의 기적이란 이름의 고속 경제성장은 이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끝을 맺게 되었다. 이때의 여파는 경제에 대해 잘 아는 사람 또는 이 현상을 직접적으로 겪은 사람들이라면 잘 알 것이다. 이 외환위기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사회적으로도 많은 여파를 남겼다. 이혼, 자살, 가정붕괴 등 많은 악몽을 낳게 되었다. 이 상황을 타파한건 1998년 1월부터 4월까지 실시한 금모으기 운동. 하지만 이 운동으로 외환위기는 벗어는 났지만 위기회피에 도움만 되고 국민에게 돌아온 것은 전혀 없었으며, 그 여파로 매년 상승하는 물가와 안정적인 직업류를 원하는 취업 준비생들 및 청년실업은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로 남게 되었다.
 
1990년대의 아이돌 그룹 중 하나인 서태지와 아이들 1집
1990년대의 아이돌 그룹 중 하나인 서태지와 아이들 1집
 
1990년대의 문화: 음악
우리나라의 아이돌 문화의 초창기.
이 시기의 유명 가수들은 부모님과 함께 2019년 기준으로 2, 30대들의 청년들이라면 한번쯤 들어봤다거나 아니면 지금도 즐겨듣는 음악 중 하나를 부른 인물. 1990년대 국내 아이돌 문화와 나아가선 한류 문화를 자리 잡게 해준 이들. 서태지와 아이들을 시작해 HOT, GOD, 핑클, 젝스키스, SES, 베이비복스 등 이 시기에 가장 유명한 그룹 가수들 즉 아이돌이다. 이들이야 말로 대한민국의 1세대 아이돌이며, 당시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지금은 각 그룹들은 해체되어 각자의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일부는 지금도 솔로로 활동으로 유지하거나, 연예인으로서 활동하고 있어 일부 예능 프로그램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1990년대 아이돌문화를 그리워하는 시청자들을 위해 MBC의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특별기획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이하 토토가) 편을 제작해 그 당시의 아이돌 맴버들과 그들의 히트곡을 또는 그들이 직접 무대에 나서는 모습을 다시 들어보고 그 시절을 회상할 수 있었다. 아이돌 가수 외에도 한류열풍 역시 이 때부터 시작했다. 실제로 한류 열풍이 분 것은 2000년대지만 넓게 보면 한류의 시작점은 1990년대부터 그 기틀이 마련된 것이다.

또한 이 시기의 유명 가수는 국민가수로 불렸던 스티브 유. 즉, 우리가 유승준이라 부르던 인물. 이 인물은 90년대 삼성에서 출시한 컴퓨터 중 하나인 매직스테이션 광고CF에 출연했으며 CF로 삽입된 곡 열정 역시 인상이 깊었다. 하지만, 병역기피로 인해 국민들과 국가를 적으로 돌린 덕에  연예계 병역기피의 대명사, 한국 대중가요계의 금지어.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영영 한국 땅을 밟을 수 없게 된 존재로 정의된다.
 
1990년대 문화: 만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게임
1990년대의 만화 산업은 웹툰이란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기 전까지 그렇게 좋은 상태는 아니었으며 여전히 검열제도는 이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이 시기부터 출판만화는 거의 바닥을 치는 침체기로 이후 불법만화 공유와 스캔으로 인해 거의 매장되는 길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 시기엔 서점에서 만화책을 구매하는 것 보단 주로 대여점을 이용해 대여비를 내고 일정기간 동안 책을 빌려보는 것으로 만화책을 보는 것이 주였다. 당시 이 시기 부모들은 아이들이 대여점에서 만화책을 빌려보는 시선을 그렇게 좋게 보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갈등 또한 일어나곤 했었다.
 
옛날 옛적에의 등장인물 배추도사와 무도사
옛날 옛적에의 등장인물 배추도사와 무도사
 
애니메이션 산업은 1993년까진 전성기였으나 이후부턴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이 시기에 나온 한국 애니메이션으론 천방지축 하니, 머털도사, 옛날 옛적에, 영심이, 날아라 슈퍼보드, 팽킹 라이킹, 붉은매 등과 함께 케이블의 도입으로 국내에서도 일본의 애니메이션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1994년 이후부턴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은 쇠퇴기에 이르었지만, 극장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의 대모험을 필두로 영혼기병 라젠카, 하얀마음 백구, 녹색전차 해모수, 검정고무신등 일본 애니메이션에 지지 않는 국내 애니메이션들이 제작되었다. 현 한국 애니메이션이 아동 타겟으로 제작되는 것에 비해 90년대에 제작된 애니메이션들은 연령대가 제법 풍부했던 했다는 것과, 지금 봐도 일부 어색한 전개나 개연성의 부족성만 제외해도 그 시대의 애니메이션들은 제법 뛰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프트맥스사의 창세기전 시리즈는 지금까지도 고전 명작중 하나로 꼽고있다. 다만 온라인으로 출시된 창세기전4는 제외
소프트맥스사의 창세기전 시리즈는 지금까지도 고전 명작중 하나로 꼽고있다. 다만 온라인으로 출시된 창세기전4는 제외
NC소프트의 리니지는 온라인과 함께 다양한 플랫폼으로 나오고 있다.
NC소프트의 리니지는 온라인과 함께 다양한 플랫폼으로 나오고 있다.
 
게임 산업으론 패키지 게임과 온라인 게임으로 나뉘며 패키지 게임은 도트 그래픽에서 폴리곤이란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게임 제작 선택의 폭이 넓혀졌다. 이 시기엔 상업RPG가 많이 등장한 시기로, 가장 손꼽을 수 있는 상업 RPG로는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와 창세기전. 온라인 게임으론 1996년에 서비스를 시작한 바람의 나라(원작은 만화 바람의 나라)가 있다. 리니지(1998~), 다크세이버(1998~2006)와 함께 1세대 온라인 게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다크세이버는 듣지 못했어도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에 대해서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일부에선 바람의 나라가 최초의 온라인게임이라 알고 있지만 실제론 상용화된 그래픽 기반의 MMORPG의 선두주자로 정의해야 맞다. 현재 우리들이 말하는 게임으로 인한 사회적 사건사고의 시발점은 리니지가 거의 최초가 아닐까 여긴다.
 
1990년대의 문화: 영화
이 시기의 한국영화는 1980년대의 암흑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국내에서 상영된 유명 외국영화 중엔 사랑과 영혼(1990)(원제 GHOST)과 쥬라기 공원(1993)이 있다. 국내영화가 상승세를 타게 된 계기로 제시되는 영화는 서편제(1993) 이 영화는 같은 시기에 상영된 쥬라기 공원과 클리프행어에 못지않은 흥행을 선보이며 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서울관객 100만을 넘긴 기록이 있다.
 
서편제(1993)(左) / 쉬리(1999)(右)
서편제(1993)(左) / 쉬리(1999)(右)
 
서편제의 대흥행을 시작으로 한국영화는 다시금 관심이 고조되고 케이블TV의 도입과 대기업들 역시 영화산업에 시선을 돌리며 대자본이 영화산업에 진출하면서 한국영화의 스케일 또한 커져나며, 본격적으로 기획자와 프로듀서 등 전문적인 인재들이 등장함으로서 영화산업은 크게 성장해나갔다. 이 당시 기획자와 대자본의 유입으로 그동안 시도할 수 없었던 기술 도입과 함께 컴퓨터 그래픽을 도입한 판타지, SF장르 영화의 제작도 이 시기에 이뤄졌다. 이후 외환위기로 인해 주요 대기업들이 영화산업에서 철수하는 악재가 있었으나 CJ, 롯데 등 철수하지 않은 대기업들은 한국 영화 성장 가능성을 믿고 올인 하고, 그들의 기대에 부흥하듯 영화산업의 성장에 발맞춰 영화관 역시 발전하게 되었다. 이 시대의 말쯤에 나온 영화 쉬리(1999)를 시작해 다른 한국영화들 또한 흥행에 성공을 하면서 한국영화산업 부흥의 첫걸음을 뗐다.
 
문명적으론 약간의 과거 시간은 현재
편의성은 지금과 같지 않지만 현재에 가까운 1990년대.
순수한 시절의 끝과 지금 우리가 고통 받는 사회의 시작점. 과거에 행한 일이 그 때로선 최선의 행동이지만 지금에 와선 최악의 결과로 자리 잡고 고치는 것조차 버거운 상태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들의 생활은 편리하게 발전하고 윤택해졌지만 다 같이 함께 뭉치는 것 보단 타인 따윈 필요 없다. 자기 자신을 보전하는 것이 최우선이란 느낌이 많다.
문명이 변화하면 사람도 문화도 전부 변화하듯 그대로 있을 수 없다. 도태되면 낙오란 결과만을 얻는걸 알고 있기에... 그래서 사람들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까?

과거를 추억 하는 건 현재에 치여서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며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서일 것이다. 이 추억의 길 또한 2000년대를 기점으로 곧 끝을 맺는다. 이젠 과거라기 보단 현재를 쓰는 것이 될 것이다.
 
<마지막 시간대 2000년대의 시간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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