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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과 우리 자연을 향유할 수 있는 국민의 문화 쉼터가 되겠습니다”
“국악과 우리 자연을 향유할 수 있는 국민의 문화 쉼터가 되겠습니다”
  • 정하연
  • 승인 2020.08.25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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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남도국악원 명현 신임원장
국립남도국악원 명현 신임원장(사진= 유미라 기자)
국립남도국악원 명현 신임원장(사진= 유미라 기자)

 

공대에서 공학을 배우다 느닷없이 국악을 배우기 위해 진로를 바꾼 사람이 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독특한 녀석’이라는 말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나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분야로 삶의 행로를 바꾸는 일도 쉬운 것은 아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지난 6월 10일 제4대 국립남도국악원에 취임한 명현 원장이다. 전남대 공대에서 공부를 하다 대학원에서 국악 이론을 전공하고 국립민속국악원 장악과 학예연구사를 시작으로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 국악진흥과를 거쳐 국립남도국악원 장악과장을 지냈다. 지난해부터 원장 자리가 ‘일방개방형’으로 바뀌어 공무원도 지원이 가능했고, 당당히 원장으로 취임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술의 고장인 진도에 위치한 국립남도국악원을 찾아 명현 원장을 만나보았다.

박병천 명인의 ‘구음 다스름’ 듣고 삶의 방향 바꿔
국립남도국악원이 속해 있는 기관은 서울에 있는 국립국악원이다. 이곳은 신라 시대 음성서(音聲署)와 고려시대 대악서(大樂署)의 전통을 잇는 기관으로 무려 1천 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있는 국립예술기관이다. 전국에 있는 모든 국악원이 다 소중한 제 역할을 하겠지만, 국립남도국악원은 예향의 고장에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그 위상이 특별하다. 
명현 원장이 그간 국악발전에 기여한 바는 적지 않다. 판소리 조사 연구, 국립국악원 국악 아카이브 구축, 생활 국악 보급, 교육 프로그램 개발, 교육콘텐츠 제작 등을 해왔으며 원장이 되기 직전까지 국립국악원 업무기획과 정책개발을 위해 주력했다. 또한, 소속 연주단의 합리적 운영과 공정한 단원 채용에 기여하기도 했다. 
명 원장이 이제 진도로 내려온 지 한 달이 약간 지났다. 우선 그에게 소감부터 물어보았다. 
“아침에 새소리를 들으면서 잠에서 깨면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라고 싶을 정도입니다. 가족들과 직원들은 답답한 서울에서 생활하는데라고 생각하면 행복함과 미안함이 교차합니다. 그러나 진도에 내려온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환경의 변화와 함께 삶의 양식이 변화했고, 그 변화만큼 전통예술은 생활 속에서 멀어져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진도에는 여전히 우리들의 일상 속에 예술이 살아있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강강술래, 씻김굿, 다시래기, 민요, 닻배노래, 북놀이 등의 전통문화가 전승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지역민들이 전통문화에 대해 관심과 애정이 깊은 곳이기도 합니다. 덧붙여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큰 덤이기도 합니다.”
사실 그는 애초에 원장이 될 생각은 별로 없었다. 그저 진도가 너무 좋아 진도에 있는 국립남도국악원에만 가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래서 서울 국립국악원장님에게 ‘평직원이라도 좋으니 진도로 가게 해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원장으로 오게 되어 그간의 갈고 닦은 역량을 국악발전을 위해 힘쓸 수 있어서 더 행복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의 이 모든 삶의 과정은 하나의 ‘운명’이기도 했다. 원래부터 음악을 좋아하기는 했어도 우리나라 가락이 그토록 인생 전체를 뒤흔들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1993년 경에 출반되었던 고(故) 박병천 명인의 ‘구음 다스름’이라는 음반은 그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것은 마치 그의 표현대로, ‘온갖 인생의 풍상이, 헤져 너덜너덜한 그물 사이를 휑하게 스치는 바람 소리’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그는 ‘국악을 직접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강렬한 생각에 사로잡혔고 짧은 기간이지만 전남 목포에 위치한 ‘극단 갯돌’에 몸담으면서 우리의 소리와 가락, 춤의 매력을 접하면서 결심을 굳혔다. 음반을 듣고 책을 보며 공부하다 결국 1997년경 부모님에게 말씀을 드렸다. 거센 반대에 부딪힐 것 같았지만 의외로 아버지는 그의 결심에 응원을 보내주었고 어머니는 걱정을 많이 했지만 큰 반대를 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그의 제2의 인생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국립남도국악원 정기 공연(사진= 유미라 기자)
국립남도국악원 정기 공연(사진= 유미라 기자)

수평적 어울림 중요시 하는 국악
그가 대학원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국악 이론을 공부하면서 즐거움도 있었지만, 안타까움이 더 컸다고 한다. 우리 음악이 가진 그 놀라운 가능성과 잠재성이 일반인들에게는 많이 유리되었다는 사실을 느꼈기 때문이다.
“처음 공부를 시작하면서 안타까움과 희열이 교차했던 것 같습니다. 안타까움은 지난 한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우리 음악과 삶의 괴리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접해보지 못하고 어려워하며 지루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접해볼수록 느껴지는 풍부함과 유일함은 큰 기쁨이었습니다. 판소리 한 대목에는 수많은 조성(調聲), 장단, 성음(聲音)의 변화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이야기가 확장되는 경향이 있지만, BTS는 유니크한 우리 음악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대중음악과 세계음악 시장에서 전통음악은 가장 한국적이며 가장 개성 있는 음악을 만드는 도구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명현 원장은 국악을 ‘배려와 소통의 음악’이라고 정의한다. 수직적인 어울림인 ‘화성’을 중시하는 서양음악과 달리 국악은 ‘수평적인 어울림’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자연재료에서 나는 각각 다른 소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어우러지기 때문에 하나의 선율을 연주하지만 다른 악기의 소리를 여며주고 채워주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궁중음악, 풍류방음악, 그리고 민속 음악 전반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음악 정신이라고 할까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전통 건축이나 여백을 통해 무한하게 공간을 확장하는 한국 미술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고 봅니다. 그 정신이 소외된 개인이나 갈등 속에 있는 사회를 어루만져줄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두어야 하는 공간적 거리와 시간의 단절을 어루만질 중요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그간 국립남도국악원은 지역에서 많은 일들을 해왔다. 지난 2016년 연수 전문기관으로 특성화한 뒤로 연간 110여 회의 교육과 체험, 80여 회의 공연, 5종의 연구 사업을 추진해왔다. 또 무엇보다 지난 2004년 개원 이후 ‘조사·연구→공연 작품화→ 교육·전승’의 유기적 선순환 구조를 통해 전통예술원형을 발굴하여 전승·보급하고, 새로운 콘텐츠로 활용하는 전형을 창출하기도 했다. 그 결과 진도의 예술 자원은 기관의 공연 종목과 대표작품으로 제작되었고, 예술인, 교원, 일반인, 청소년의 교육과 체험 콘텐츠로 활용됐다. 또 한정된 지역에서 활동하던 예인의 삶과 예술이 기록·연구되었고, 이들의 활동영역은 공연무대로 확장되었으며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러한 과거의 성과 위에서 명현 원장은 지금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는 미래비전을 가지고 있다. 우선 그는 ‘지역과 일상에서 누리는 생활문화, 해외 거점지역 전통예술단체 역량 강화를 통한 한류 확산, 휴식이 있는 국민의 삶 실현’ 등을 주요 방향으로 잡고 있다.

건강한 국악 예술 생태계 만들고 싶어
“원장으로 부임하면서 기관의 비전을 ‘지역에 기여하고 현장을 지원하는 국민의 문화쉼터’라는 것으로 고민해봤습니다. 먼저, 보다 확장된 지역을 대상으로 전통예술자원을 발굴하여 전승하고, 그 성과를 다시 지역에 환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역의 예술가와 예술 단체의 양성도 물론 병행되어야 합니다. 또한, 연수 전문기관으로서 실기 위주의 강습을 벗어나 시의성 있고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공교육과 사회교육을 지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공연과 체험을 통해 원형의 문화와 예술,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을 향유하는 국민의 쉼터가 되었으면 합니다. 물론 이 모든 계획과 진행은 전문가, 예술인, 지역민의 의견을 더 듣고, 구성원들과 함께 검증해야 한다고 봅니다.”
뿐만 아니라 명현 원장은 ‘국립남도국악원 밖의 예술가와 함께 건강한 예술 생태계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고민도 많이 하고 있다. 물론 지금 당장의 성과도 좋고, 국악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지역 예술계 내에 건강한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지속가능하기 때문이다. 
명현 원장에게는 우리 가락 같은 구수함과 인간미가 흘러 넘치는 듯 했다. 그는 국립남도국악원장에 응모하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보다 넓고 깊이 있게 일에 임하지 못했다는 반성을 하기도 했다는 것. 또 그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많은 예술인이 생존의 위협에 처한 상황에서, 나는 월급을 받아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남보다는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명 원장의 고민은 순수하다 못해 지극히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가 이끌어 가는 국립남도국악원의 여러 가지 정책과 프로그램이 우리 국악의 아름다움까지 널리 세상에 전파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국립남도국악원 전경(사진= 유미라 기자)
국립남도국악원 전경(사진= 유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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