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편안한 영면, 추모객들이 편하게 찾는 ‘명당’을 만들었습니다”
“고인의 편안한 영면, 추모객들이 편하게 찾는 ‘명당’을 만들었습니다”
  • 정하연
  • 승인 2020.09.29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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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개관, 100여편의 영화 드라마에 등장했던 ‘유토피아 추모관’, 우원기 회장

“진정한 명당은 자연환경이나 지리적 조건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신 부모님을 모신 장소를 흡족해하고 그래서 자녀들의 마음이 편한 곳이 아닐까요?”
지난 2003년 경기도 안성시에 개관한 국내 최고이자 최대의 추모관인 ‘유토피아 추모관’ 우원기 회장의 말이다. 이제는 ‘명당’에 대한 토속신앙적인 인식이 많이 사라진 지금, 우원기 회장의 ‘명당론’이야 말로 우리 시대에 적합한 것이 아닐까? 더 나아가 자신을 키워주신 부모님을 수려한 자연 환경과 훌륭한 IT 시스템을 갖춘 곳에 모셔서 언제든지 찾아뵐 수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자녀가 부모에게 드릴 수 있는 마지막 효도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돌아가신 부모님과 자녀가 모두 편안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은 진정한 의미의 ‘유토피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원기 회장을 만나 국내 최대의 추모관에 얽힌 사연과 우리나라 장묘 문화의 발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유토피아 추모관’, 우원기 회장(사진= 김정현 기자)

20년전 장묘 문화 변화 예측해 준비
우리나라는 매장 중심 장묘 문화가 꽤 오랜 세월 깊이 뿌리내려 왔다. 특히 전통적인 유교 문화의 영향을 받아 화장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있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매장 중심의 장묘 문화는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한다. 매장할 터를 쉽게 찾지 못하거나 관리에 애를 먹기도 하고, 거주지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고향에 매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녀들이 편하게 자주 찾아뵙기도 어려웠다. 더욱 ‘공동묘지’를 기피 시설로 여겨서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장묘문화의 문제점을 일찌감치 인식한 우원기 회장은 무려 20년 전에 유토피아 추모관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당시 우리나라 화장률은 30%대에 불과했으나 미래를 내다보는 우원기 회장의 혜안이 오늘날에는 제대로 적중했음이 입증된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었다고 해도 완전히 잊혀지지는 않습니다.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은 고인을 회고하고 추모합니다. 고향에 산소를 쓰는 매장 중심의 장례문화는 묘지로 인한 자연훼손과 추모객들의 불편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2000년 당시에 저는 앞으로 이러한 문화가 크게 바뀔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물론 그때 제가 유토피아 추모관에 대한 기획안을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을 때 다들 ‘미쳤다’고 했습니다. 어떤 친구는 ‘10년이 지나면 되겠다’라는 말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매우 가까운 시일 안에 우리나라 장묘 문화가 바뀔 수 있고, 그렇다면 사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현재 유토피아 추모관은 총 1만 8천여 평의 넓은 면적에 납골당, 수목장, 공원, 인공폭포와 분수대, 조각공원, 예식실 등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 대한 사전 설명을 듣지 않고 추모시설을 둘러본다면 추모시설이 마치 아름다운 공원이나 힐링을 위한 편의시설처럼 보일수 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우원기 회장은 이곳 공사를 끝낸 후 가구를 들여놓을 때 최고급 이태리 가구를 들여왔다. 일반 서민들이 범접하기 쉽지 않은 비싼 고급품이었다. 시계 하나만도 3천만원 정도였으며 다른 이태리 가구들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이처럼 격조높은 추모관을 만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평생 고생스럽고 힘들게 사신 부모님을 편안한 곳에 모시고자 하는 자녀들의 마음은 다 똑같습니다. 이왕이면 최고급 시설에 모셔야만 자녀들도 뿌듯하고 부모님에게 마지막 효도를 했다는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기왕 새로운 장묘 문화를 만들어간다면, 개척자의 심정으로 과감한 도전을 해 보고 싶었습니다. 혐오스럽지 않고 친근감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공원을 만들자. 자녀들이 손자 손녀를 데리고 소풍 올 수 있는 그런 곳으로 만들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추모시설이 공원처럼 아름다운 곳으로 널리 알려졌고, 제가 연예 엔터테인먼트 업계와는 전혀 인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고인이 되신 유명인들이 이곳에 안치되게 되었습니다.”

유토피아 추모관과 안중근의사 추모비(사진= 김정현 기자)

뛰어난 IT 시스템 갖추고 편리하게 제사 지내
유토피아 추모관은 이제까지 약 100여 편의 영화, 드라마에 등장했다. 가장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의 한 장면도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또 고(故) 가수 신해철, 박상규, 유니, 거북이, 배우 정다빈, ‘바니걸스’의 쌍둥이 자매 중 한 명인 고정숙 씨도 안치되어 있다. 또 안중군 장군의 추모비도 세워져 있다. 일반인들은 ‘안중근 의사’로 알고 있지만, 원래 안 의사는 독립군의 중장이었으며, 지난 18대 국회에서 1계급 특진을 해서 장군이 되었다. 고인이 돌아가신 지 11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시신을 못 찾은 상태이다. 민간신앙에서는 시신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 ‘혼이 구천을 떠돈다’고 말한다. 우원기 회장은 안중근 평화재단 청년아카데미와 함께 안 장군의 편안한 영면을 기념하기 위해 추모비를 세웠다. 
특히 유토피아 추모관은 IT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다. 고인의 모습을 영상으로 볼 수 있는 예식실과 웹에 고인의 추모글을 남길 수 있는 ‘하늘에 보내는 편지’도 매우 인기가 많다. 모든 추모객들의 기록이 다 남기 때문에 누가 언제 다녀갔는지 알 수 있다. 이런 기록을 통해 고인이 외롭지 않도록 가족이나 친지들과 방문계획도 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기 등은 모두 무료로 쓸 수 있으며, 청소까지 모두 해주고, 식당에서 음복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초창기에 유토피아 추모관을 짓고, 추모문화를 안착시키기까지는 한마디로 ‘엄청난 고생’을 했다고 한다. 
“20년 전만 해도 화장 문화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시절이라서 지역 주민들이 생각보다 너무 강하게 반대해서 매우 당황했습니다. 거기다가 최초 삼성엔지니어링과 이 사업을 같이 시작했습니다. 당시 삼성에서 최고급 건축설계사와 함께 설계를 했고, 펀딩도 받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권이 바뀌면서 삼성 회장님이 ‘꼭 필요하지 않고 지역 주민의 민원을 야기하는 사업은 일체 정리하라’는 지시를 함에 따라 결국 공사가 중간에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국내 최고 기업인 삼성이 동참한다는 점에서 우원기 회장은 매우 큰 꿈에 들떴다. 이제 얼마 가지 않으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에 큰 실망을 하게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업을 멈출 수는 없는 일. 결국, 우원기 회장은 자체적으로 건축비를 마련하기 위해 ‘봉안증서’를 발행해 판매함으로써 부족한 돈을 메우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 때만 해도 지명도가 낮은‘유토피아 추모관’에서 만든 증서를 믿고 사려는 사람은 없을 것만 같아서 고등학교 선배인 대한토지신탁 사장님을 찾아가서 추모관 사업의 취지와 전망에 대하여 설명하고 새로운 추모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고 간곡히 부탁하여‘대한토지신탁-유토피아 추모관 공동명의의 증서’를 발행할 수 있었고 그제서야 겨우 판매를 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몇 번 위기가 있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겨우 3년만에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향후 서울에서 더 가까운 강북지역에 지을 생각

“당시에도 지자체에 납골당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예산이 60억 원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하여 시설이 볼 품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토피아 추모관이 생기면서 한국의 추모문화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후에 전국 75개의 시·군에서 유토피아 추모관을 벤치마킹했고, 국회에서도 예산을 대폭 증액해주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그나마 납골당들이 고급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어쨌든 유토피아 추모관으로 인해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 낸 것도 큰 자부심입니다.”
향후 유토피아 추모관은 지역의 관광자원이 될 수 있을 것으로도 보인다. 음악가 모차르트의 묘역에는 일 년에 380만 명의 관람객들이 다녀가고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 기념관에는 관람객이 15불씩을 내고 입장한다. 그런 점에서 유토피아 추모관 역시 충분히 향후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제 우리나라 화장률이 무려 90%에 육박하기 때문에 거부감도 많이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향후 우원기 회장은 빠른 시간 안에 강북지역에 추모관을 또 하나 지을 생각이다. 이렇게 하면 서울 시민들이 보다 편리하게 고인을 찾아뵐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에는 우원기 회장도 유토피아 추모관을 ‘사업적인 측면’을 많이 고려했으나 고인을 찾아오는 유족들의 마음을 보면서 점차 우리나라 장례 문화의 발전에 일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더 큰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매장 중심 장묘문화를 새로운 형태의 추모공원으로 혁신한 우원기 회장. 그는 앞으로 또 다른 사업을 준비하면서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제까지 그가 유토피아 추모관을 지으면서 보여주었던 뚝심, 추진력, 진정성이라면, 그의 계획이 충분히 달성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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