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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하고 우울한 세상, 막장 드라마가 돌아왔다
심심하고 우울한 세상, 막장 드라마가 돌아왔다
  • 백경화
  • 승인 2021.03.23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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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하면서 본다는 드라마가 막장 드라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서는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설정이라 욕을 할 수밖에 없지만, 그 자극적이고 짜릿한 내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게 된다. 최근 TV 채널은 막장드라마 전쟁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순옥 작가의 <펜트하우스 시즌2>와 임성한 작가의 <결혼작가 이혼작곡>이 한창 시청률 경쟁을 벌이고 있다. 도대체 왜 막장드라마는 여전히 높은 시청률을 보이며, 그 사회적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 편집자주

드라마 '펜트하우스2'
드라마 '펜트하우스2'(사진=SBS 제공)

개연성을 포기한 드라마들

TV 평론가들은 최근의 막장 드라마들이 새로운 진화를 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일단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개연성이 무너지고, 더욱 자극적으로 변했다고 말한다. 개연성 부분에서는 아예 포기수준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전후좌우 관계가 완전히 사라져버렸고 인간의 추악한 욕망만이 자리하고 있다. 불륜, 살인, 누명, 복수, 불치병, 출생의 비밀 등이 수시로 등장하는가 하면, 그 전개 속도도 매우 빨라졌다는 점이다. 개연성이라는 족쇄가 사라졌으니 작가들은 폭주를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런데 시청률은 놀랍도록 높게 나온다. 낮은 수준이 8~10% 정도이고 많으면 40%까지 뛰어오른다. 점점 더 막장스러워질수록, 더 높은 시청률을 끈다는 아이러니가 방송계의 새로운 룰로 자리잡았다.

<펜트하우스 시즌2>는 한마디로 막장의 모든 요소를 전광석화처럼 진열한다. 주인공 천서진(김소연)은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적적인 의술이 등장해 망가진 성대가 복원되는가 하면, 모든 대중을 속이면서 립싱크 가수로 완벽하게 변신하기도 한다. 이러한 놀라움의 연속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게 되고 그것이 묘한 중독성을 이끌어낸다고 볼 수 있다.

<결혼작가 이혼작곡>은 약간 결이 다른 방식의 막장을 추구한다. 세 남녀의 불륜이라는 점에서는 전형적인 막장의 공식을 따르지만, 인간의 치졸한 감성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닭볶음탕의 레시피를 절대로 알려주지 않으려고 한다. 자신의 아들이 며느리가 만든 닭볶음탕을 먹고 맛있어하는 장면을 상상도 하기 싫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새엄마인 김동미(김보연)은 자신의 의붓아들에게 흑심을 품기까지 한다. 이 정도면 근친상간의 수준에 근접하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퇴직한 의사이자 당뇨 환자인 남편이 화장실에서 방귀를 끼는 모습을 보고 마음속으로 속마음을 경멸적으로 표시하거나, 건강을 해치기 위해서 일부러 탄수화물이 가득한 식단을 만들어 낸다. 이 역시 상상은 가능하지만, 현실적인 설정으로는 무리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어떤 평론가들은 이러한 드라마들을 괴물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전통적인 드라마의 문법을 완전히 해체, 전복하며 오로지 최악의 자극성에만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막장 드라마가 시작된 것은 2000년대 초반 정도이다. 1998년 임성한 작가가 집필한 <보고 또 보고>가 그 시초로 알려져 있다. 당시 최고 시청률 57%를 기록했던 이 드라마는 매우 복잡한 인물관계를 선보이면서 겹사돈이라는 최초의 막장적 요소가 제시됐다. 겹사돈이란 사돈의 관계를 맺은 사람끼리 다시 사돈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 법적으로 따지자면 배우자의 혈족과 결혼하는 것을 말한다. 이후 2007년 방영된 문영남 작가의 <조강지처클럽>에서는 드디어 본격적으로 막장이라는 꼬리표가 붙기 시작했다. 무려 104회까지 방영되었던 이 드라마 역시 시청률이 40%까지 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이 드라마에서는 등장한 대부분의 인물들이 불륜을 하는 기이한 설정이었다. 당시 시청자들은 해도 해도 너무한다’, ‘과장이 지나치다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그 이후는 말 그대로 막장 드라마의 전성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순옥 작가가 <아내의 유혹>을 집필하면서부터 본격적인 막드 월드가 펼쳐진 것이다.

 

전형적 드라마 패턴으로 굳어

모든 인기에는 그 원인이 있다. 막장 드라마의 시청률이 높다는 점은 분명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요소가 있다는 이야기다.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펜데믹 사태로 인한 우울과 스트레스를 이들 드라마가 날려준다는 점이다. 물론 과거 펜데믹 시대가 아닌 상황에서도 막장드라마는 인기를 끌었다. 중요한 점은 과거에 20~30대는 막장드라마의 주요 시청자층이 아니었다. 대체로 40대 이후의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지만, 펜데믹 사태에서의 우울과 스트레스를 겪고,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20~30대들이 막장드라마의 을 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여느 드라마와는 다르게 강렬한 몰입감과 충격을 주는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또 다른 매력 요인은 부인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추악한 민낯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막장드라마에 나오는 많은 설정이 과도하다라고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에서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며느리에서 레시피를 알려주지 않는 치졸함은 현실에서도 가능할 수도 있다. 물론 상식적이지는 않지만, ‘불가능까지는 아니다. 사람에 대해 늘상 질투하고, 미워하고, 분노하는 일반인의 숨겨진 감정들이 막장드라마에 등장함으로서 시청자들은 일종의 쾌감을 얻게 된다.

더구나 막장 드라마들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사회적인 불만을 해소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빈부격차, 약자에 대한 무시와 경멸, 학교폭력, 가정폭력, 부동산 문제 등이 총체적으로 등장한다. 사실 이런 모습들은 대중들이 늘 관심을 가지고 있고, 해결을 원하지만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막장드라마의 끝은 늘 그렇듯, ‘권선징악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결국에는 악한 사람이 패배하고 선한 사람이 승리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시청자들은 이러한 막장 드라마의 끝에서 얻을 수 있는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즐길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에는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자체가 이미 막장일 수도 있고, 그것을 적절하게 반영해주는 막장 드라마가 있으니 대중들에게는 오히려 속시원함을 얻을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를 <펜트하우스>에 등장하는 학부모는 선생님의 얼굴을 발로 차면서 쓰레기라고 부른다. 평소 선생님들에게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시청자라면 스트레스가 풀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막장드라마를 보면서 대리만족, 자유로움을 느낀다는 시청자들도 분명 존재한다. 자신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을 드라마의 주인공이 대신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일반적인 작법에 의해 드라마를 집필하는 작가들도 어쩔 수 없이 군데군데 막장의 요소를 섞는 경향이 생기고 있다. 막장 드라마에 비해 밋밋하다는 평가를 들으면 시청률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막장 드라마는 한국 드라마의 전형적인 장르이자 하나의 패턴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윤리성에 대한 비판이 있더라도 대중들의 시청률이 높은 이상, 계속해서 집필되고 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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