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이 가진 자아 확장의 욕망, 부캐
현대인이 가진 자아 확장의 욕망, 부캐
  • 최운정
  • 승인 2021.03.23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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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部) 캐릭터’를 의미하는 ‘부캐’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시대다. 애초에 부캐 열풍은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이 트롯가수로 변신한 ‘유산슬’과 이효리가 전혀 다른 욕망을 품은 ‘린다G’로 변신한 것에서 유래했다. 우리가 원래 알고 있던 유재석과 이효리는 ‘본캐’이지만, 여기에 또하나의 확장성을 지닌 부캐가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한 예능 프로그램의 문제로 그치지 않았다. 자기 본연의 모습을 찾고 싶은 현대인의 욕망과 맞물리면서 ‘부캐 전성시대’를 만들어 냈다. 답답한 사회에서 좀 더 행복하게 살고 싶은 개인의 욕망, ‘멀티 페르소나의 시대’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살펴보자.  /편집자주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직장인 마음속의 멀티 페르소나

부캐 열풍의 시초는 사실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연예인들이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자신의 캐릭터를 변화시키는 과정이 바로 부캐의 출발점이었다. 그런데 과거의 연예인들은 캐릭터를 변화시키면서 과거의 캐릭터가 잊히기를 원했다. 그래야 새로운 캐릭터가 인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캐와 부캐’라는 이중적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부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부캐의 특징은 원래의 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점에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린다G로 변신한 이효리다. 그녀는 성공한 아이돌 가수였지만, 어느 순간 제주도에 가서 명상과 요가를 하며 살아가는 털털한 소시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예능에 등장한 린다G는 원래의 그녀가 완전히 사라진 채 뻔뻔하고 이기적이며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누군가에게 관심받고 싶어 하는 캐릭터다. 물론 훨씬 진한 화장 등으로 자신을 섹시하게 포장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렇게 ‘전혀 다른 또 다른 나’의 모습이 부캐의 핵심이다. 그런데 예능 속에서 벌어진 이러한 일들은 대중들의 욕망을 자극하면서 사회적 논의를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부캐는 답답한 현실 속에 갇혀 있던 자신의 또 다른 모습에 대한 강렬한 갈구였기 때문이다. 

다음의 설문 조사는 TV 화면 속의 부캐가 어떻게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2020년 잡코리아에서는 559명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멀티 페르소나 트렌드 조사’를 했다. 그런데 전체의 77.6%의 직장인이 ‘회사에서의 나의 모습이 평상시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라고 답했다.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졌다. 20대의 80.3%, 30대의 78%가 이런 대답을 했다. 이는 곧 ‘사회적인 나’와 ‘본래의 나’가 극명하게 분열되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러한 ‘멀티 페르소나(Multi Persona)’는 심리학적으로 여러 개의 자아가 내재해 있는 것을 말한다. 페르소나(Persona)란 고대 그리스 가면극에서 배우들이 썼다가 벗었다가 하는 가면을 말한다. 스위스 출신의 정신과 의사 칼 융이 최초로 사용한 용어로서 사회에서 요구하는 도덕이나 질서, 의무를 따라야 할 때 자신의 본성을 감추고 타인에게 보이는 최적의 이미지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페르소나에서는 본래의 모습이 억압되고 최대한 타인과 잘 지내기 위한 형태로 만들어지게 된다. 문제는 이런 페르소나에 의해 원래의 본성이 지나치게 억압되면 우울증, 열등감이 내적으로 자라게 되어 정신적인 문제까지 발생할 수가 있다는 점이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행복을 찾고 싶은 사람들

페르소나의 문제는 원래부터 인간에게 내재한 심리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 한국 사회의 지나친 집단주의가 결합이 된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는 그간 초고속발전을 해오면서 집단주의적 의식이 형성되어 왔다. 다양성이나 개인의 취향이 존중되기보다는 모두 하나가 되어 피폐한 삶을 고양해야 한다는 생각이 암묵적으로 작용해왔다. 그러다 보니 개인보다는 집단이 우선시 되는 상황에서 각 개인은 자신의 본성을 최대한 억제해야 하는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으로 인해 이러한 억압이 더 통하지 않게 됐다. 자유로운 감성을 지닌 이들은 기성세대의 요구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살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대 앞에 나타난 ‘유산슬’과 ‘린다G’는 자신이 간절하게 바라던 해방구의 역할을 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본캐와 부캐로 구분하기 시작했다. 직장에서는 본캐의 역할을 하지만, 취미의 영역 사적인 영역에서는 부캐를 본격적으로 가동하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성실한 직장인지만, 밤에는 파티 플래너로 활동한다든지, 낮에는 자본주의에 잘 적응하는 비즈니스맨이지만, 휴가지에서는 한없이 낭만과 자유를 추구하는 자연인으로 지내게 된다. 그리고 이럴 때는 자기 생각과 행동마저 여지없이 바뀌게 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활을 즐기다 보면 부캐가 본캐가 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취미로 활동했던 유튜버로서의 활동이 너무 재미있어 퇴사한 후 아예 본격적인 방송 활동을 하게 되는 경우다. 

이러한 부캐 열풍은 한국 사회의 변화에도 일조하고 있다. 집단이 강조되는 획일화된 사회에서 개인이 강조되는 다양성의 사회로 진입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 사회의 문화적, 예술적 저변을 넓히고 국민의 행복도를 높이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특히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일수록 경제적으로도 더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부캐의 발전은 창조적인 일로 진입하는 더 많은 사람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특히 한국인의 행복도는 OECD 국가 중 최악의 상황이다. 국가의 경제 자체는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이 되었지만, 그사이 그만큼 많은 개인의 행복이 희생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통계청의 ‘2019 사망원인통계 결과’를 보면 자살 사망자가 1만 4,799명으로 전년보다 0.9%가 늘어났다. 특히 10~30대의 사망원인 중 1위는 바로 자살이었다. 자살이란 결국 스스로 행복하지 못했고, 또 그 행복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의 마지막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부캐를 통해 행복을 찾아 나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사회 분위기도 좀 더 편하게 변할 수가 있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부캐만이 강조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사실 인간은 통합된 인격체로서 매우 다양한 본성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것을 서로 적절하게 조화할 수 있을 때 개인적으로도 행복하고 사회적으로도 융합될 수 있다. 만약 정말로 현실에서 스스로 본캐와 부캐를 혼동하며 살아가게 되면 이는 정신분열의 한 양상이 아닐 수 없다. 기존의 답답한 사회에서 틈을 내서 부캐를 통해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나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정체성 자체를 잃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사회적 삶과 개인적 삶이 조화되는 사회. 경제적 발전만큼이나 개인의 행복 추구도 충분히 인정되는 나라가 되어야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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