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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과 전통 발효과학으로 빚어낸 식초, 건강을 살린다
유기농과 전통 발효과학으로 빚어낸 식초, 건강을 살린다
  • 정하연
  • 승인 2021.10.2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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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군 오곡발효마을 최해성 대표

우리 민족의 전통 식생활 곳곳에는 발효과학이 숨 쉬고 있다. 김치와 장 등 상차림의 기초가 되는 음식에서부터 젓갈과 식초에 이르기까지 발효를 응용한 식품은 매우 다양하다. 특히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진 식초는 발효의 정점을 보여준다. 문헌에 따르면 전통발효식초는 조미료의 기능을 넘어 부패를 방지하는 효능까지 지녀 식품의 저장에 이용되거나, 부스럼과 중풍 등을 치료하는 약품으로도 종종 쓰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유의 방식으로 전통발효식초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전남 화순군 오곡발효마을을 찾았다.

전남 화순군 오곡발효마을 최해성 대표(사진=종합시사매거진)
전남 화순군 오곡발효마을 최해성 대표(사진=종합시사매거진)

마을기업 선정, 유기농으로 재배한 밀과 돼지감자로 식초 개발

“KT에서 33년간 근무했습니다. 조기퇴직을 하고 고향에 내려온 것이 2009, 아버님께서 작고하신 이듬해였습니다. 처음에는 어머님을 곁에서 모시며 물려받은 땅에 농사를 지으며 조용하고 소박하게 지낼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한 2년을 지내다 보니 아무래도 대책이 필요하다 싶었습니다. 농사 자체로 거두는 수익이 많지 않았을 뿐 아니라 손해를 감당해야 할 상황이 수시로 생기는 걸 그저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지요. 농업기술센터를 찾아가게 된 것은 그 무렵입니다,”

마을기업 오곡발효마을최해성 대표가 화순군농업기술센터를 찾은 것은 2011, 당시 그는 2년 동안 매일 출퇴근 하다시피 하며 센터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 수업을 받은 시간을 모두 합치면 1,000시간 정도. 이 기간에 얻은 지식과 경험은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당시 마을에서는 제가 나이가 젊은 축에 속했습니다. 어르신들 추천으로 이장 역할을 맡게 되었고요. 덕분에 마을 주민분들과 교류가 활발했습니다. 면사무소를 오고가면서는 전남도예비마을기업 신청을 해보라는 제안을 받게 되었고, ‘오곡발효마을로 마을기업 지정을 받으며 사업의 구색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센터에서 여러 교육을 받고 처음 일군 밭에는 고추 1,000포기를 심었습니다. 그것도 자신만만하게 기왕이면 유기농으로 짓겠다고 마음을 먹었지요. 하지만 결과는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애초에 고추는 농약을 치지 않고는 짓기 어려운 품종이라는 걸 그때는 잘 몰랐던 겁니다. 하지만 당시의 경험은 두고두고 도움이 되었습니다. 현재는 유기농으로 밀농사를 지어 식초를 발효시키는 누룩의 재료로 사용하고, 돼지감자도 같은 방법으로 손수 재배해 특화된 전통발효식초를 만들고 있지요.”

최 대표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오곡발효마을을 설립한 것은 2013, 자본금 500만 원으로 만들어진 작은 법인이었다. 전남도예비마을기업에 선정되어 받은 지원금으로 공장을 신축하고 전통발효식초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첫 시도는 10개의 항아리. 그 중 7~8개는 바로 시판해도 될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돼지감자 현미식초(사진=오곡발효마을)

자연의 섭리에 따르다, 널리 이롭게 하다

“2014년에는 행정자치부 지정 정식 마을기업사업에 선정되었습니다. 그때 받은 보조금으로 항아리 100개를 마련했고요. 함께 발효를 배운 동기들과 총 80개의 항아리에 담았으니 이때 처음으로 규모를 키운 겁니다. 그런데, 항아리를 저을 때 사용하던 도구에 문제가 있었나 봅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서서히 식초를 담근 항아리의 기색이 좋지 않아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때의 시련은 최 대표에게 두고두고 큰 교훈이 되었다. 발효 환경을 잘 조성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에 대해 몸소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 덕분에 배움은 더 깊어졌고, 더 이상의 실패는 없었다. 밤낮으로 읽은 여러 권의 책도 도움이 되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받은 닷새간의 천연발효 수업은 전통발효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 인생이 전환점에 들어섰을 때 만난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고요. 선생님이 계신 진도로 직접 찾아가 배우기도 했는데, 그 깊은 산골에서 선생님이 스스로 암을 이겨내신 경험을 듣고 우리 땅에서 건강하게 자란 곡물과 전통발효의 신비로운 힘에 대해서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전통발효식초의 효능에 대해 초는 성()이 온()하며 맛이 시고 독이 없어 옹종(擁腫)을 없애고 혈운(血暈)을 부수며, 모든 실혈(失血)의 과다와 심통(心痛)과 인통(咽痛, 인후염)을 다스린다라고 했으며 또한 일체의 어육(瘀肉, 군살 부스럼 사마귀)과 채소독(菜蔬毒)을 소멸시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전통발효식초가 다스린다는 옹종은 화농성 염증을 말한다. 혈운을 부수며, 모든 실혈의 과다를 다스린다는 기록과 같이 전통발효식초는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혈관을 튼튼하게 한다.

오곡발효마을에서는 현미식초를 시작으로 현재는 돼지감자식초와 과일식초 등 총 15종 가량의 식초를 제조하고 있다. 소규모로 시작했던 회사 부지도 현재는 7,074에 이른다. 이 땅에서는 원료가 되는 우리밀과 돼지감자 등의 유기농 재배도 이뤄진다. 매출액도 서서히 증가해 최근 손익분기를 벗어났다.

2017, 사업이 안정기에 접어들자 그는 후진양성에도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는 현재 전남농업기술원 강단에 서서 전통발효식초 강의를 올해로 4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가 후배들에게 항상 가장 먼저 전하는 메시지는 발효는 자연의 몫이라는 것이다. 적당한 환경을 조성해 오래 묵히는 것이 전통발효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토굴 항아리에서 익어가는 전통식초 장인의 마음

전통발효식초는 누룩과 효모를 이용해 만들어 지며, 일정기간 발효 과정을 거친다. 특히 오곡발효마을의 식초는 오랜 기간의 경험을 토대로 환경을 조성한 토굴에서 2년 동안 자연 숙성한 후 판매한다.

좋은 식초를 만드는 데는 누룩이 몹시 중요합니다. 좋은 재료로 정성껏 잘 띄운 누룩에서는 구수하고 향기로운 풍미가 나옵니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초복부터 말복 사이에 누룩을 만들었습니다. 이때가 가장 미생물이 활발한 시기이기 때문이지요. 발효 과정을 지켜보면 정말 재미있고 신기합니다. 그야말로 미생물이 만들어가는 세상이지요. 결국 발효는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전통발효에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자연의 순리에 맡기고 따르는 거죠.”

시중의 식초 대부분은 합성식초와 주정식초이다. 석유에서 추출한 아세트산에 인공화합물을 첨가해 만들기 때문에 별도의 발효가 필요하지 않다. 주정식초는 에탄올에 초산균을 넣어 1~3일 속성 발효 후 제조한다. 전통발효식초와 여타 식초 모두 신맛을 내는 것은 비슷하지만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차이가 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지원을 받아 FDA 인증기관에 돼지감자 현미식초 성분분석을 의뢰해본 적이 있습니다. 결과를 받아보니 2년 숙성된 식초에서 1년 숙성된 식초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셀레늄이 검출되었고, 칼륨도 1년 숙성된 것보다 2년 숙성된 식초에서 두 배 가량 높게 나오더군요. 저희 식초의 숙성기간을 최소 2년으로 둔 것은 그래서입니다.”

오곡발효마을의 전통발효식초는 최근 고객의 입소문을 타며 매출이 급격하게 늘었다.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진 누룩과 유기농 작물만을 원료로 사용하며 자신의 방법을 고수한 성과로 여겨진다. 그는 식품첨가물과 인공감미료도 사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크고 작은 시행착오로 얻은 경험과 고객의 신뢰가 그에게는 가장 큰 자산이기 때문이다.

소득을 떠나 저는 제가 하는 일이 정말 소중합니다. 최근에는 울산의 한 고객께서 최근에 직접 전화를 걸어오셨어요. 저희 돼지감자식초를 한 보름간 드셨는데, 200이상까지 나오던 혈당수치가 90에서 85까지 떨어졌다면서요. 저희 식초를 드시며 칼륨을 섭취하게 된 것이 도움이 되셨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참관객이 많이 줄기는 했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식품박람회에 참가해보면 누룩으로 담근 식초를 알아보시는 분들이 꽤 많았습니다. 3~4년 이상 단골로 계시는 고객들이 현재 100여 분 정도 계시는데요, 건강이 많이 좋아지셨다며 간간히 안부를 전해 오십니다. 초심을 잃지 말고 계속 좋은 식초를 만들어 달라는 당부와 함께요. 이런 말씀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깊어가는 가을, 식초가 담긴 항아리가 가득한 토굴에서는 오곡발효마을에 대한 고객의 믿음도 함께 무르익어간다. 자연과 공명하는 순리를 일찌감치 깨달은 선인들의 슬기로운 마음가짐에서 우리는 세상사는 이치를 다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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