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M&A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라는 평가를 받는 ‘사건’도 발생했다. 기업 회생절차를 밟으면서 주인을 찾던 쌍용차가 에디슨모터스에 인수된 것이다. 과거에 M&A는 해외 선진국에서만 생기는 일로만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국내에서도 매우 활발하다. SKㆍ삼성ㆍ롯데ㆍ현대차ㆍLG그룹이 2014년 초부터 2019년 초까지 약 1,096억4,100만 달러(130조9,442억 원)가치의 318개 기업 지분을 매수하고 797억7,200만 달러(약 95조2,557억 원) 가치의 243개 기업 지분을 매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대중들에게는 궁금증이 드는 부분이 있다. 과연 이러한 M&A 시장에서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천억, 조 단위를 넘어가는 M&A 가격의 비밀 속으로 들어가 본다.
M&A과정에서 생기는 갑을 관계
M&A는 스타트업계에서도 매우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숙박 앱인 야놀자는 지난 10월 인터파크를 2,940억 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금융 앱 토스도 2019년 LG유플러스의 전자결제 사업부를 3,650억 원에 인수했다. 부동산 중개 앱 직방은 삼성SDS의 홈 사물 인터넷 사업부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전 직원 300명의 스타트업이 대기업의 사업 부문을 통째로 인수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역시 수천억 원의 인수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보이며, 이 금액은 투자금을 통해 조달할 것으로 예견된다.
그런데 이러한 뉴스를 들을 때마다 수천억 단위, 혹은 조 단위의 인수 금액에 대해 대중들은 몹시 궁금해한다. 구체적인 가격표도 없는 M&A의 가격은 어떻게 정해지느냐 하는 점이다. 물론 업계에서 인정되는 공식적인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재무제표를 분석한다든지, 현금 창출 능력, 향후 성장성 등이 기준으로 작용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만 한다고 해서 M&A 가격이 절대로 합의되지는 않는다. 이는 곧 M&A라는 것 자체가 가진 매우 특수한 성격 때문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지난 2020년 5월, 농구의 황제 마이클 조던이 신었던 농구화 한 짝이 약 7억 원에 낙찰되었다. 이는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다. 이 뉴스를 본 후 어떤 이들은 “7만 원이라면 몰라도 7억 원에는 죽어도 살 필요가 없다”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리고 당장 돈이 급히 필요한 사람에게는 설사 7천 원이라고 해도 별로 살 생각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M&A 시장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예를 들어 한 스타트업의 인공지능 기술이 있다고 해보자. 어떤 기업은 100억 원을 주고도 살 수 있겠지만, 인공지능 기술이 필요 없는 기업이라면 그 기술의 가치는 0원이 된다. 즉, 수많은 M&A 가격 결정의 기준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에 따라서 가격은 천차만별이 된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M&A를 하는 과정에서 갑과 을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인공지능 기술을 빨리 사야만 지금의 기업가치를 3~4배 올릴 수 있는 기업이 있다고 하자. 하지만 정작 그 기술을 가진 기업은 현재도 매출이 그럭저럭 나오고 있어서 굳이 팔 필요가 없다고 해보자. 이럴 때 기술을 가진 기업은 갑이 되고 그 기술이 필요한 기업은 을이 된다. 따라서 만약 기존의 M&A 가격 결정에 따라 기술의 가격이 100억 원이라고 해도, 을은 “별로 팔고 싶지 않다. 500억 원이면 고려해보겠다”라고 말할 수가 있다. 기존의 가격 결정 기준이 완전히 무력화되는 셈이다.
더구나 M&A의 가격 결정은 ‘비교 불가’라는 점에서도 매우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 내가 사는 아파트가 10억 원이라고 해보자. 그러면 그 옆에 있는 집도 대략 10억 원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혹시 누군가가 15억 원에 판다고 내놓는다면 그 사람이 제시한 가격은 ‘말도 안 되는 가격’이라는 공격을 당할 것이 뻔하다. IPO도 마찬가지다. 한 기업이 상장할 때는 비슷한 규모의 다른 기업과의 비교가 가능하기 때문에 주식 가격도 비슷하게 결정되곤 한다.
M&A, 스타트업 생태계의 완성
문제는 M&A에서는 이런 ‘비슷한 비교 대상’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서 숙박 앱인 야놀자가 쇼핑몰 인터파크를 인수했다고 했다. 하지만 과거에도, 앞으로도 정확하게 ‘숙박 앱’이 ‘쇼핑몰’을 인수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점이다. 물론 정말로 이런 경우가 있다면 인수가격인 2,940억 원이 기준이 되겠지만, 동일한 인수 사례가 있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점에서 M&A 가격은 특정한 회사, 혹은 기술에 대한 필요성은 물론이고, 그 사이에서 결정되는 갑과 을의 관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M&A와 관련해서는 하나의 편견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먹튀’라는 불편한 인식이다. 특히 ‘회사를 키워서 판돈을 늘린 후 팔아먹는다’라고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편견은 스타트업 생태계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스타트업과 자영업이 다른 것은 투입되는 돈의 규모 자체가 다르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자영업은 몇억 원 수준에서 충분히 창업과 운영이 가능하다. 즉, 자신이 모아둔 돈이나 혹은 은행 대출로도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비록 대출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결국 돈을 다 갚으면 자신의 돈이 되기 때문에 굳이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한, 남에게 팔거나 M&A를 할 필요가 없다. 돈이 잘 벌리면 자식에게 승계해서 대대손손 회사를 운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경우 일단 조금 활성화되면 수십억, 혹은 더 회사를 키우기 위해서는 수백억 원의 돈이 들어가게 된다. 엔젤 투자자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스타트업은 대규모의 투자를 받게 되고, 이렇게 엔젤 투자자의 돈을 받았다면 어느 순간에서는 그 돈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는 돈을 빌렸다면, 어느 시기가 지나서 빌린 돈을 갚는 원리와 동일하다. 따라서 이렇게 돈을 회수해주어야 엔젤 투자자는 또 다른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면서 전체적인 생태계는 선순환을 이룰 수가 있게 된다. 따라서 M&A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태계 순환에서의 마지막 정점을 이루는 과정이며, 이것이 온전히 수행되어야 생태계라는 싸이클은 계속해서 유지되고 활성화된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이러한 스타트업계의 M&A를 일방적으로 ‘먹튀’라고 보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오히려 이렇게 M&A가 활성화되고 창업자가 거액의 돈을 벌어야만 이를 모델로 삼은 더 많은 창업자가 생기게 되고 이것이 한국 경제를 이끌어 가게 되는 것이다.
이제 한국의 스타트업계는 과거보다 큰 발전을 해왔다. 더 이상 초기 벤처기업 열풍처럼 ‘거품’이 장악하고 있지는 않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유니콘 기업이 나왔고, 정부에서는 이 유니콘 기업을 더욱 많이 발굴할 예정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에서 M&A의 판을 깔아주는 일도 필요하고, 창업자들도 꼭 IPO만을 염두에 두지 말고 M&A를 통해서 자신도 성공하고 투자자에게도 돈을 회수하게 해주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