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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 Science] 죽은 사람을 구현하는 ‘디지털 휴먼’, 단지 기술이 전부일까?
[Future Science] 죽은 사람을 구현하는 ‘디지털 휴먼’, 단지 기술이 전부일까?
  • 임지원 기자
  • 승인 2022.06.21 1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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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인간을 만들어 내거나 죽은 사람도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을 살려낼 수 있다. 이런 인간과 관련한 새로운 기술적 영역을 ‘디지털 휴먼’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몸을 움직이고 표정을 짓고 행동한다. 물론 그렇다고 보는 사람이 이들을 진짜 인간으로 착각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현실의 인간이 하는 행동이나 표정에 비하면 매우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예 가상의 디지털 휴먼이라면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을 되살려는 디지털 휴먼 기술에 대해서는 그 도덕성이나 정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것이 어떠한 명분을 가지고 있든 간에, 사업적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휴먼의 등장과 함께 제기되는 이들 문제에 대해서 살펴본다. 

 

죽은 정치인을 미화할 가능성
지난 20대 대통령 선거 TV 방송에서는 매우 이색적인 광경 하나가 펼쳐졌다. 모 TV 프로그램에서 디지털 휴먼 기술을 통해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 노무현 등 역대 대통령을 등장시켰기 때문이다. 방송사는 전직 대통령과 유사한 체형을 가진 사람을 섭외하고 여기에 얼굴을 합성해서 완성했다. 목소리는 생전에 녹음되었던 것을 사용하기 때문에 실제의 음성과 거의 동일했다. 문제는 앵커가 이들 대통령에게 생전에 어떤 세상을 꿈꿨는지, 그리고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를 물었다. 물론 디지털 휴먼 대통령은 마치 살아있는 듯 답을 했지만, 그 역시 과거의 음성을 발췌한 것에 불과하다. 물론 어떻게 보면 이런 기획은 매우 신선할 수도 있다.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자리에서 과거 대통령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대답이, 정말 자신의 생각이 아닌 작가에 의해 쓰여진 시나리오에 따라 기계가 합성한 것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진짜 박정희 대통령의 생각, 진짜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일 수가 없다. 물론 ‘어차피 전부 허구가 아니냐’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미 죽은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다소 황당할 수가 있다. 자신도 아닌 컴퓨터 그래픽이 자신의 음성을 흉내 내면서 자신의 생각도 아닌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과도하게 표현하면 ‘고인 모독’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전직 대통령이 하는 대부분의 말이 ‘덕담’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정당화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이러한 전직 대통령에 표현은 그들의 과오를 잊어버리게 만들고 ‘미화(美化)’를 할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누군가는 민주 투쟁을 하던 사람을 죽였으며, 권력을 가지고 각종 악행을 서슴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다시 2022년의 현재에 되살아나 덕담을 한다는 것은 그들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심각한 위험성이 있다. 죽은 사람을 되살린 디지털 휴먼이 TV에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과거의 가수들이었던 故김현식, 故신해철, 울랄라세션의 故임윤택 등도 가끔씩 방송사에서 살아 돌아왔다. 심지어는 그가 한 번도 부르지 않았던 미발표곡이 그들의 음성으로 재생되기도 했다. 기술적으로 생전의 음성을 합성해 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다. 물론 오락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충분히 수긍할 수도 있다.  ‘그리운 얼굴들을 다시 만난다’는 카피 정도라면 과거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릴 수도 있고, 또 너무 일찍 죽은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추모의 정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생전에 그들을 사랑했던 팬들이 본다면 가슴 뭉클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개인의 인격권 침해 가능성도
하지만 역시 가수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에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한 가수의 노래라는 것은 그들의 진심과 음악적 능력이 총체화된 것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 발전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미 짧으면 수년 전, 길면 10년이나 넘은 목소리를 오늘에 재현한다는 것이 과 연 온당한 일이냐는 점이다. 결국 본질적으로 보자면 ‘그 가수의 현재의 감성이 아닌 과거의 감성이 재현하는 기계음’에 불과하다. 

또한 죽은 사람 자체를 되살려내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도 할 수 있다. 이러한 행위가 상업적인 행위와 결부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죽은 사람을 되살려내는 명분 자체는 순수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방송 프로그램은 시청률도 평가되고 거기에 따라 광고비가 책정된다. 고인의 모습으로 직접 돈을 벌지는 않지만, 그것이 시청률에 투영되고 그것이 다시 광고비와 관련이 될 수밖에 없다.

대선 개표 방송에 나타난 전직 대통령 모습. 왼쪽부터 비브스튜디오스가 버추얼 휴먼으로 구현한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대선 개표 방송에 나타난 전직 대통령 모습. 왼쪽부터 비브스튜디오스가
버추얼 휴먼으로 구현한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물론 유가족의 동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역시 마찬가지다. 고인이 된 개인에게는 동의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유가족’이라고 하더라도 고인의 모든 것을 대변할 수는 없다. 살아있는 한 개인도 그의 가족이 모든 것을 대변할 수 없듯이, 고인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그들은 고인이기에 더욱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접근해야만 한다. 하지만 디지털 휴면이라는 생경 한 기술과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신기함만으로 무턱대 고 할 일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조금 더 악의적인 상상력을 발동해본다면,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면 산 사람을 복제하는 것도 큰 무리가 없다. 그렇다고 이제는 누군가 가 ‘나’를 복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며, 이는 한 개인의 인격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은 물론 사회적 문제도 야기할 수 있게 된다. 

향후 디지털 휴먼 기술은 ‘성격’에 대한 개입도 가능할 수가 있다. 인공지능이 생전에 누군가가 보였던 말투, 표정, 그와 관련된 각종 사건들을 취합해 딥러닝을 하게 되면 살아 있을 당시의 성격을 구현해 내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이 역시 마찬가지의 윤리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사람의 성격 역시 세월이 흐르면서 당연히 변화하게 된다. 과거에 난폭했던 성격이 겸손해지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러한 반성은 오로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숭고한 정신적 활동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개인적 인 선택과 결단, 그리고 양심의 문제도 결부될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중대한 문제가 기술이 개입해서 특정한 인물의 성격을 영원히 ‘박제’ 해버리는 결과를 만들어 버린다. 

산업혁명의 초창기 시대부터 인류는 기술에 대한 의존성을 심화했고, 또 기술이 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어왔다. 물론 기술은 그 기대에 걸맞는 긍정적인 면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긍정성 못지않은 심각한 문제를 발 생시켰다. 지금의 기후위기는 물론이고 각종 해킹으로 인한 피해는 전 지구적인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 역시 기술의 발전이 만들어낸 부작용들이다. 따라서 기술을 대 할 때는 언제나 그 부작용을 충분히 예상하면서 발전시켜야 한다.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디지털 휴먼 기술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현재 기술업계에서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아직 많은 사람이 그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 제기는 반드시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이며, 집단적인 토론의 결과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고인’을 대하는 숭고한 자세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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