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7 09:30 (수)
[Power Interview] 국민대 총동문회 ʻ자랑스런 국민인의 상’ 내설악백공미술관 관장 박종용 화백
[Power Interview] 국민대 총동문회 ʻ자랑스런 국민인의 상’ 내설악백공미술관 관장 박종용 화백
  • 정하연 기자
  • 승인 2022.07.21 1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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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예술 활동을 넘어서 묵언의 수행이자 노동의 기록"

팬데믹이 엔데믹으로 접어들면서 전 세계 미술계도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해외 작가들에 대한 초청과 함께 자국 문화예술에 대한 활성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문화예술의 나라 프랑스와 현대미술을 이끌어 가는 미국으로부터 연이어 초 청받은 한국 작가가 있다. 바로 현 내설악백공미술관 관장인 박종용 화백이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특별한 소질을 보여온 그는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림을 그리며 최근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특히 그는 예술의 전 영역을 넘나들어 예술의 연금 술사’, ‘전천후 예술가로 불리고 있다. 또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 등 화가가 그림을 전시할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을 모두 섭렵 했을 정도로 국내에서의 평가가 높다. 평론계로부터 그의 작품 활동은 예술 활동을 넘어서는 묵언의 수행이자 노동의 기록이 다라고 평가받고 있는 박종용 화백을 직접 만나 창작 활동에 대한 그간의 소회를 들어보았다.

박종용 화백
박종용 화백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에서 모두 전시

최근 박 화백에게는 경사스러운 일이 있었다. 지난 613일 서울 올림픽파크텔 올림피아홀에서 개최된 국민 대 총동문회 창립 72주년 기념행사에서 자랑스런 국민 인의 상을 받았다. 이 상은 매년 정관계, 학계, 재계, 문 화예술계 등에서 뛰어난 업적을 세워 모교의 위상과 명예를 선양한 국민대 동문들에게 수여한다. 이제까지 남덕우 전 국무총리, 손석희 전 JTBC 대표이사, 배동현 전 아모레퍼시픽그룹 대표이사 등이 수상했다. 또 그는 지 난 2016년에도 국민대학교의 설립자인 해공 신익희 선생의 호를 따서 만든 11기 해공 AMP 과정을 거쳤으 며, 과정을 졸업할 당시 해공 지도자상을 받기도 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큰 노력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원했던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국민대 해공과정을 거치면서 작가로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도 좋으신 분을 많이 만났고 그 분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특히 많은 기업 회장 님들께서 저의 그림을 높이 평가하고 구매해주신 덕분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세계적인 작가로 도약하는 큰 기운을 받은 것 같습니다. 부모님에게도 많은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있게 된 것 역시 부모님의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박 화백은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명성을 떨쳤다. 2019 119일부터 27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15년 만에 개인전을 개최했고, 2021119일부터 29일까지 ‘2021 세종컬렉터 스토리_컬렉터 정상림, 화가 박종용전시회를 열었다.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이라면 명실공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거의 모두가 알고 있는 곳으로 예술의전당 개인전 당시에는 개관 30년 만에 일일 400명으로 최대 관객이라는 대기록을 세워 미술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또 창조문화 예술대상(2019·국회), 올 해의 최우수 예술가상(2019·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한국경제문화 미술부문 대상(2019·한국경제문화연구)을 한꺼번에 받는 쾌거를 이룩했다. 2021대한민국미술 대전 비구상부문 대상을 수상하면서 대한민국 최고 작가의 반열에 올라서게 되었다. 특히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매우 수준이 높다.

"마크 로스코가 상징적인 의 화가라면, 박종용 화백은 의 작가라고 할 수 있다."(예술의전당 고학찬 대표)

"박 화백은 우리나라 미술계의 발전을 위해 큰일을 해 왔을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탁월한 화가이다."(임홍순 서울문화사학회장)

특히 박 화백의 작품은 ‘구상 및 사물의 재현에 있어서 는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의 작업 과 정은 ‘작품에 대한 갈망과 우주와 사물에 대한 근본원리 를 탐구하는 생명의 예술이자 이를 창조하기 위한 고된 노동과 수행’으로 정의되고 있다.

2022년 자랑스런 국민人 시상식
2022년 자랑스런 국민人 시상식

 

12살 때부터 ‘신동’ 소리 들어
박 화백은 오랜 시간 동안 미술관 관장을 역임하면서 한국 미술계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동서울미술관 관장(1986~1988)을 시작으로 서울역사프라자 미술관 관장(1989~1992)을 지냈으며, 현재 내설악백공미술관관장(2011~현재)을 지내고 있다. 내설악백공미술관을 설립한 백공 정상림(1940~2019)은 법조인이자 전문 컬렉터로서 50년 동안 수많은 각종 미술품을 수집하였으며, 2011년 내설악백공미술관을 설립할때부터 작품들을 소장시키면서 문화발전에 기여했다. 그의 미술품 수집열의는 오랫동안 미술계에 회자되며 늘 화제가 되곤 했다. 최근까지 근현대의 명작들을 수집해 ‘1급 미술관으로 만들었다.

백공 정상림(1940~2019) 전문컬렉터와의 인연으로 오랜 시간 관장을 지내면서도 결코 작품 창작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2019년부터 완전히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잡게 됐고, 당시의 일들을 회상하며 예술 운명의 전환을 예고하는 질풍노도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작가 노트에는 이렇게 기록되고 있다.

너무 어렵게 먼 길을 달려왔다.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언제나 공허했다. 채워지지 않은 갈증이 바윗덩어리처럼 육신을 지배했다. 남은 생의 시간들이 얼마인지 모르고 나의 예술이 어디까지 갈런지는 알 수가 없지만, 새롭게 탄생한 <>의 작품들에 예술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다. 결의 완성을 위해 남은 인생을 불태울 것이며, 이를 위해 생의 종점까지 쉬지 않을 것이다.’ 당시에 대해 박 화백은 이렇게 소회를 밝히고 있다.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생겼 습니다.

오는 102일부터 18일까지 프랑스 파리 전시 초청이 예정되어 있으며 2023년 미국 전시 초청에 대한 협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가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먼저 저를 알아보고 초청하는 희한한 일이 생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저는 화가로서의 자신의 운명과 사명에 대한 깊은 생각에 잠겼고, 최후의 순간까지 치열하게 예술혼을 불태울 결심을 했습니다.”

미국의 페이스갤러리(pace gallery) 조셉 부사장과 함께

 

박 화백이 작품과 관련해서 해외와 인연을 맺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꽤 오래전부터 일본인들에게 작품을 판매해왔다. 민화와 조각품, 심지어 생활 자기들도 일본인들이 구매해갔다. 과거 10년 이상 인연을 맺었던 바이어가 있었던 탓에 그가 일본인들에게 박 화백의 작 품을 많이 소개했던 것이다. 이미 박 화백의 작품은 해 외에 최적화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술의전당에서 전시회를 했을 때도 전체 50점 중 25점 정도를 일본인들이 구매해갔고, 한국인은 10점 정도 구매했다. 박 화백이 처음으로 그림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였다. 경남 함안 출신인 그는 8살 때인 1960년부터 스케치 활동을 시작했으며 12살에는 신동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소년 박종용은 풍경화, 정 물화를 그렸으며 동양 및 서양의 유명 영화배우 그리기에도 푹 빠졌다.

당시 그는 눈썰매머리 용조각을 제작하기도 했고 마산으로 유학을 가 마산중학교에서도 작품 활동에 심취했다. 이후 그가 더욱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던 것은 일명 인사동 시절이었다. 17세에 서울로 올라 와 학업을 진행하는 동시에 고려민예사라는 곳에 취업해 만화, 극장, 간판, 풍속 및 산수화, 화조도 및 인물화를 그렸다. 인물화의 경우 초상 인물, 누드까지 전부 섭렵했 고, 특히 민화와 불화로 불리는 불교미술에 매우 심취해 창작을 이어갔다. 또 이때부터 지방전시를 시작해 대구 반월당(1973)에 전시를 했으며 이후 군복무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 기간에도 작품 활동을 지속했으며 전역 후 인사동으로 다시 돌아와 활동을 이어나갔다.

이후 1980년대와 90년대는 용인 시절이라고 볼 수 있다. 인사동에서의 본격적인 활동에 이어 작가로서 도약하고 자신의 능력을 확장하던 시기로 이때에는 평면 회화 예술을 넘어 판화, 도자, 조각 등 입체예술에 대한 분야를 개척했으며, 만화와 조각을 그려 일본인들에게 판 매하기도 했다. 이 시절에는 호랑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활발한 작품 활동과 함께 용인문화원, 수원 크로바 백화점, 서울 한양파르코 백화점, 서울 진로백화점 등 다 수의 그룹전 및 개인전을 이어갔다.

1990년대 이후부터는 원숙한 전천후 예술가로 활동을 했다. 이때는 여러 예술의 장르를 넘나들면서 실력을 뽐 냈고,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창작했다. ‘용인 시절의 작 품들이 한층 깊어지면서 왕성한 활동을 했으며 이때부터 예술의 연금술사’, ‘전천후 예술가로 불리기 시작했다. 2006년부터 현재까지는 설악산 시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는 세계를 향해 비상하는 시기였다. 2006년에 착공된 내설악백공미술관이 개관하고, 개관기념전 이 탄생함과 동시에 전시 열풍이 불었다. 이때부터는 말 그대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전시와 작품 판매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코엑스 조형아트, 창원국제아트페어, 인사프 라자, 상해아트페어, KIAF 등에 참여했다.

 

장엄하고도 격렬한 드라마

앞으로 박 화백은 그의 작품 <> 시리즈에 혼신의 힘 을 다 할 예정이다. “어떻게 보면 그림과 저는 하나의 숙명으로 만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작품이었고, 작품이 저에게 일체화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죽는 날까지 함께 가는 동반자 의 관계라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 시리즈는 만물의 가치를 담아내려고 한 작품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국가, 그리고 사회는 모두 우주의 이치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모든 만물은 움직이고 있으며, 그 안에서 우리의 정신을 추구하면서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 다. 따라서 <>이라는 것은 현대 사회의 인간들이 해나 가는 활동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자각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새로운 부활을 꿈꾸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봤을 때 과거에 해왔던 활동이 그의 말을 증명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한마디로 그는 광대무변한 예술의 경치를 스스로 개척해왔다. 동양화와 서양화를 넘나들었고, 구상과 비구상 작품을 오갔다. 여기에 만화, 화조도, 인물, 누드, 정물화, 불화를 넘어 조각 분야에서 는 구상, 목불, 추상을 섭렵했다. 여기에 도예까지 전방위적인 작품을 했다. 특히 2004년부터는 자신만의 예술관을 정립하기 위해 무려 10여 년 간이나 묵언수행을 했 다. 어떻게 보면 그의 삶 자체가 땀과 눈물로 범벅된 장엄하고도 격렬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해줄 수 있는 한마디의 말을 부탁했다.

예술가가 가식에 물들게 되면 제대로 된 작품 활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헛된 명예에 홀려도 안 됩니다. 작품 이란 결국 피와 땀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자신만의 가치를 담는 것이 관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평소 자신의 세계관, 예술관을 갈고 닦아 나만의 가 치를 만들어 나가야 됩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작품 이야말로 진정으로 예술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예술이란 매우 고급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돈이 없으면 예술도 하지 못한다.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비용이 지출되어부잣집 자녀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인식도 있다.

하지만 박 화백은 그 대척점에 서 있다. 특히 중학교 국 어 선생님이었던 아버지가 40세에 돌아가시면서 6남매를 키우는 것은 오롯이 어머님의 몫이었다. 그러니 그가 풍족한 환경에서 그림을 그렸을리는 만무하다. 그에게 그림은 생계였고, ‘생존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 만 그 오랜 세월들이 결국에는 고된 수련의 과정이었고, 오늘날의 박종용 화백을 만든 밑거름이 됐다. 오랜 무명 생활은 결국 대기만성과 더 거대한 세계로의 비상을 준비하는 법이다.

올해 프랑스 파리 전시회와 내년 미국 전시회가 끝나면 이제 박 화백에게 한국의 미를 알리는 세계적인 화가라는 타이틀이 붙는 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이제까지 보여왔던 그의 투지와 몰입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한국 미 술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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