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2 18:09 (금)
왜, 다산학(茶山學)인가?
왜, 다산학(茶山學)인가?
  • 정하연
  • 승인 2023.04.06 17: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산학은 무엇이며, 오늘날 그 가치와 의미는 무엇인가.
▲(사)다산정약용문화교육원의 '정기환'이사장(출처=(사)다산정약용문화교육원
▲(사)다산정약용문화교육원의 '정기환'이사장(출처=(사)다산정약용문화교육원

 

다산 정약용 선생은 정조 임금과 함께 조선 후기 문예부흥기를 이끈 19세기 지성사를 대표하는 대학자이다. 그는 정조 사후 천주교 탄압의 여파로 40세부터 57세까지 18년간 전남 강진으로 유배 가는 역경이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에 그는 500여 권의 책을 집필하였다.

그의 저서는 경학, 역사, 언어, 지리, 예학, 교육, 문학, 정치, 경제, 사회, 과학, 의학, 약학,천문학, 음악 등 다양하고 광범위한 분야를 망라하며, 그의 학문의 세계와 업적은 너무 넓고 심오해 20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학자에 의해다산학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매김하고 연구되고 있다.

 

그러면 다산학은 무엇이며다산학이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가치는 어디에 있으, 오늘날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기술해 보고자 한다.

 


 

 

▲다산 '정약용'선생의 초상화(출처=네이버)
▲다산 '정약용'선생의 초상화(출처=네이버)

 

먼저 다산학(茶山學)은 무엇인가?

다산학은 경학(經學)’경세학(經世學)’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학은 수기(修己)의 학문이고 경세학은 치인(治人,安人)의 학문으로 선생은 이로써 본말(本末)을 다 이루었다.”고고 1822년 회갑 때 쓰신 자찬 묘지명(自撰墓誌銘)에서 말씀하셨다. 여기서 경학이란 유교[儒學]의 경전인 사서(四書:논어·맹자·대학·중용)와 육경(六經:시경·서경·역경·예기·춘추·악기)을 연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선생은 총 232권의 경학집을 저술하셨는데, 그 방식은 육경사서의 기존 학설에 자신의 견해를 상세히 주석으로 붙여 해설한 것이다. 즉 그는 모든 경학서의 저자와 주요 인물 및 저작에 관한 깊은 통찰과 철저한 연구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상을 수립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차별화된 독창성(獨創性)”이 다산학으로 자리매김하는 근간(根幹)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사서(四書)에 대한 저작으로는 논어 주석서인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40, 맹자 해설서인 맹자요의(孟子要義)9, 대학 주석서인 대학공의(大學公議)3, 희정당대학강의((熙正堂大學講義)1, 소학지언(小學枝言)1, 심경밀험(心經密驗)1, 중용을 주석한 중용자잠(中庸自箴)3, 중용강의보(中庸講義補)6권 등이 있으며, 육경(六經)에 관한 저작으로는시경(詩經)에 관한 시경강의(詩經講義)12, 시경강의보유(詩經講義補遺)3, 상서(尙書 또는 書經) 연구서인상서고훈(尙書古訓)6, 매씨상서평(梅氏尙書平)9, 상서지원록(尙書知遠錄)7, 상례(喪禮)에 관한 해설서인 상례사전(喪禮四箋)50, 상례외편(喪禮外篇)12, 사례가식(四禮家式)9권이 있으며, 주역[역경] 해설서인 주역심전(周易心箋)24, 주역서언(周易緖言)12, 춘추(春秋)에 관한 춘추고징(春秋考徵)12, 악기(樂記)에 관한 고증 해설서인 악서고존(樂書孤存)3권 등 총 232권의 유학 경전의 독창적인 주석서를 쓰셨다.

 

그러면 선생이 경학집을 통해 주신 교훈의 핵심은 무엇일까? 선생의 말씀 가운데 답이 있다. 선생은 자신의 경학집을 요약하면 오직 ()’()’ 두 글자를 위해 썼다고 하셨고 ()로써 인()을 이루어야 한다라고 하셨다여기에서 인()인여인지진기도(人與人之盡其道)’로서 사람이 사람(상대방)에 대한 도리를 다하는 것이며, (), 인을 이루는 인술(仁術)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즉 내가 하기 싫은 것을 상대방에게 시키지 않는 것이다.  선생은 서()로서 인()을 실천해야 한다고 하신 것이다. 이것은 성경의 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라는 예수께서 주신 산상수훈(山上垂訓) 중의 하나인 소위 황금률과 같은 뜻이다.

 

선생은 경전에 대한 자기 생각들을 모두 정리한 다음 해인 1815년에 심경밀험(心經密驗)소학지언(小學枝言)을 저술하신 후, “소학으로 행동을 바르게 하고[小學以治其外], 심경으로 마음을 다스리면[心經以治其內] 성인이 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232권의 경학집외 국토의 강역(疆域: 경계)에 관한 역사 지리서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10, 우리나라 하천에 관한 지리서 대동수경(大東水經)2,국토의 방위에 관한 아방비어고(我邦備禦考)30, 의학에 관한 마과회통(麻科會通)12, 어원 연구서인 아언각비(雅言覺非)3, 우리나라 속담 모음집인이담속찬(耳談續纂)1, 그 외에도 자녀들과 제자들에게준 편지, 또는 하피첩(霞帔帖)과 같은 문집이나 현실과 세태를 비판하고 고발한 2,500여 수의 한시(漢詩)는 그것이 주는 가르침과 교훈으로 많은 학자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가 2,000년 전의 성경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몸을 닦듯이 선생의 경학집과 여러 문집으로부터 우리는 살아있는 많은 교훈을 받을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의 경전(출처=(사)다산정약용문화교육원
▲다산 '정약용'의 경전(출처=(사)다산정약용문화교육원

 

그럼 다산학의 한 축인 경세학은 무엇일까?

경세학은 경학의 정치적 실현을 목표로 하는 학문으로 일표이서(一表二書)로 대표되는데 선생은 이 저술을 통해 세상과 백성을 섬기고 경륜(徑輪)하는 지침과 정책을 설()하셨다.

경세유표(經世遺表)(1817)는 당시국가의 관제(官制군현제(郡縣制전제(田制부역(賦役공시(貢市창저(倉儲군제(軍制과제(科制해세(海稅상세(商稅마정(馬政선법(船法등 나라를 경영하는 데 필요한 제반 제도와 정책을 기술하고, 신아구방(新我舊邦) 즉 구습에 젖은 우리나라를 새롭게 개혁해 보려는 의지를 담아 저술한책으로 총 48권이다.

다산은 흑산도에 유배된 형 약전에 쓴 편지에서 당시 조선 사회에 대하여 세상은 이미 썩어버린지 오래다[천하부이구이(天下腐已久矣)]”라고 썼으며 또 경세유표 서문에서 털 하나 머리카락 하나 병들지 않은 게 없다.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망할 것이다.[일모일발무비병이 급금불개필망국(一毛一髮無非病耳 及今不改必亡國)]”라고 개탄하였다.

 

다산은 당시 조선의 정치·경제.사회 등 국가 제도와 법제를 완전히 개혁하여 부국강병을 이루기를 바랐던 것이다. 특히 당시 사회의 모순이 집약되어 있던 토지제도 개선에 60%의 지면을 할애하여 정전제(井田制)를 제안하였고 서얼과 중인, 상민들을 흡수할 수 있는 과거제 개혁안도 제시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불합리한 각종 제도와 관행을 개혁할 준거(準據)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1818)에는 현행 법제 하에서 백성들을 구제하고(濟民) 편안하게(安民) 하기 위해 목민관이 가져야 할 자세와 규율을 기술한 책으로 부임(赴任율기(律己봉공(奉公애민(愛民), 여기에 이전(吏典호전(戶典예전(禮典병전(兵典형전(刑典공전(工典) 등 육전(六典), 그리고 진황(賑荒해관(解官) 12편에 각 6조로 나뉘어서 총 72조로 편제되었고총 48권이다.

 

그는 목민심서 서문에서 오늘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부양할 바는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백성들은 야위고 곤궁하고 병까지 들어 진구렁 속에 줄을 이어 그윽한데도 그들을 다스리는 자들은 고운 옷과 맛있는 음식만으로 자기만 살찌우니 슬프지 아니한가!” 하고 개탄하였다.

그리고 목민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정기(正己: 몸가짐을 바르게 함)와 청백(淸白) 사상이다.”라고 말하고, “청렴은 수령의 본무(本務)이며 모든 선의 원천이며 덕의 근본이니 청렴하지 않고 수령 노릇할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부패와 폐단을 청산할 지혜와 방안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흠흠신서(欽欽新書)(1819)는 공정한 수사와 재판으로 억울한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과 뜻을 담아 기술한 책으로 총 30권이다. 그는 "살인사건의 심리,처형과정이 매우 형식적이고 무성의하게 진행되는 것은 사건을 다루는 관료 사대부들이 율문(律文)에 밝지 못하고 사실을 올바르게 판단하는 기술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라고 지적하고 이에 따라 생명존중 사상이 무디어져 가는 것을 개탄하였다. 그리고 경국대전의 형벌규정의 기본원리와 지도이념을 논술하고 중국 79, 조선 36건 등 모두 115건의 판례를 분류 소개하고 필요에 따라 자신의 의견과 비평을 덧붙여 억울한 사례가 없고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흠흠신서는 최초의 법률 연구서이며 동시에 살인사건을 심리하는 실무지침서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진정한 법철학의 가치와 인명존중 사상을배울 수 있다.

 

상기 일표이서(一表二書) 외에도 다산의 경세론집(經世論集)원목(原牧)탕론(湯論)에서는 통치자는 오직 백성만을 위해서 있으며,임금이나 통치자가 잘못할 때는 언제라도 백성들이 뜻을 모아 갈아치울 수 있다.”라는 민본(民本)사상의 핵심이 담겨있다200년 전 다산은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고, 통치자는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공복(公僕)임을 명확히 밝혔다.

전론(田論)에서는 30호 단위의 ()’를 조직하여 공동소유, 공동노동, 공동분배를 통해 빈부의 격차를 줄이고 농민들이 농지를 경작하고 국가에 1/10 세금을 내게 하는 여전제(閭田制)를 주장하였다. 이는 토지 국유제 개혁안으로 토지와 관직을 독점하고 있던 집권양반층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지만 당시로서는 대단히 혁신적이고 선진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다산의 일표이서(一表二書)를 비롯한 많은 경세학 저술의 기저에 깔린 사상과 정책은 기존의 것과 차별화된 독창성(獨創性)”이 있으며, 한결같이 공정과 청렴”, 그리고 위국애민의 개혁정신에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선생의 백성과 나라를 위한 공정과 청렴의 정신, 위국애민의 각종 제도와 부패한 나라를 새롭게 변화시키겠다는 개혁 정책들이 당시 국정에 반영되지 못하고 유표(遺表)와 심서(心書)로만 전해진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며 만약 선생의 각종 제도와 정책들이 당시 국가경영에 반영되었다면 우리나라는 훨씬 더 일찍 선진국이 되었을 것이다.

 

이상 살펴본 경학경세학에 관한 다산의 독창적인 사상과 철학은 1930년대 위당(爲堂) “정인보”, 민세(民世) “안재홍을 중심으로 선생의 저서를 모아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76권이 출간되었고, 창해(滄海) “최익한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를 독함()이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에 65회를 연재함으로 다산학 연구의 초석을 다졌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통치철학, 사상,이념이었던 성리학의 공리공론(空理空論)의 관념성과 경직성을 비판하며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새로운 학풍인 실학(實學)”이라는 새로운 사상조류로 조명을 받으며 다산학으로 평가받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1959홍이섭정약용의 정치경제사상 연구라는 최초의 독립된 저서를 출간하였고, 현암(玄庵) “이을호1979정다산의 생애와 사상, 1983다산학입문1989다산 경학사상 연구,1991다산역학 연구, 그리고 다산학강의, 목민심,논어고금주연구,다산학 각론등 다양한 저서로 다산학을 체계화시킴으로 비로소 다산학이 확실하게 자리매김 하기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다산은 당시 자신의 시대가 국부의 분배가 공정하지 못하고, 능력 있고 지위에 걸맞은 사람이 해당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국론의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붕당(朋黨) 간의 이해관계로 결정하는 혼탁(混濁)의 시대라고 개탄하였다.

 

▲다산 '정약용' 선생 상 앞에서 (사)다산정약용문화교육원의 '정기환'이사장(출처=(사)다산정약용문화교육원)
▲다산 '정약용' 선생 상 앞에서
(사)다산정약용문화교육원의 '정기환'이사장(출처=(사)다산정약용문화교육원)

사실 오늘날 우리의 시대가 18세기와 비교하여 얼마나 더 진전되었을까. 오늘의 세상도 여전히 불공정하고 불공평하여 MZ세대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권력자만이 나라의 주인행세를 하며 가장 공정해야 할 검찰과 법관들마저 사익을 위해 움직인다. 정치집단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당의 권익과 세력 확장을 위한 정쟁만 일삼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팽배로 빈부격차와 양극화 현상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200년 전의 다산이지만 오늘날에도 선생의 정신은 살아 빛을 발하는 정신적 유산이 되고 있지 않은가. “공정과 청렴의 정신그리고 국민 모두의 행복을 지향하는 위국애민의 개혁정신이야말로 오늘날에도 꼭 필요한 시대정신이 아닐까 생각한다.

 

현대를 사는 지금의 우리는 200여년 전 선생이 구상하셨던 경세(經世)와 제민(濟民)에 관한 각종 정책이나 제도들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많은 저술 속에 면면히 흐르는 선생의 정신과 사상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부패와 타 락을 방지할 그릇된 관행을 청산하고 청렴한 공직자 윤리를 회복하고자 할 때, 그리고 불합리한 각종 제도와 법률 개혁에 나설 때 다산은 많은 가르침과 교훈을 줄 것이다. 바로 여기에 다산학의 현대적 의미와 가치 그리고 존립의 명분이 있지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많은 학자는 다산학을 전공하고 많은 논문을 생산하고 있으며 또한, 많은 국민이 다산학에 관심을 가지고 배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800 (여의도파라곤 1125)
  • 대표전화 : 02-780-0990
  • 팩스 : 02-783-25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운정
  • 법인명 : 데일리뉴스
  • 제호 : 종합시사매거진
  • 등록번호 : 영등포, 라000618
  • 등록일 : 2010-11-19
  • 발행일 : 2011-03-02
  • 발행인 : 최지우
  • 편집인 : 정하연
  • 종합시사매거진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종합시사매거진.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isanewszine@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