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 과정서 적지 않은 생채기
지금 안철수 의원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위기의 계절’이라고 해도 무리한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무엇보다 우선 자신의 장기 플랜에 큰 차질을 빚게 됐다. 그의 계획은 단일화를 통해 윤 대통령 당선 이후 당 대표를 거쳐 자신만의 독자적인 체제를 구축해 내년 총선을 치른 후, 그 성공을 밑바탕으로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 1차 단계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당 대표의 꿈을 이루지 못했으니 총선에서의 주도권을 잃을 것은 뻔한 일이고, 당연히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것조차 점점 요원해지고 있는 상태다.
더 중요한 사실은 선거 기간 내에 대통령실, 윤핵관과 날카롭게 날을 세우면서 결정적인 패착을 두었다. 그는 시민사회수석실 한 행정관의 김기현 후보 선거운동 지원 의혹이 제기되자 당사자를 고발했고, 심지어 투표 종료 하루 전날에는 당시 황교안 후보와 공동 기자회견을 하면서 대통령실을 맹렬하게 비난했다. 이는 향후 펼쳐질 정국에서 안철수 의원이 확장성에서 완전히 무리수를 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돌아갈 다리에 불을 지른 형국’이라고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제 국민의힘에는 ‘윤석열 친정체제’가 구축됐고, 최고위원도 모두 윤심을 매우 충실하게 반영하는 인물이다. 이들이 안철수 의원에게 고운 시선을 보낼 리가 없다. 사실 그 이전부터도 안철수 의원에 대한 비토 정서도 있었다. 대통령실이 그를 ‘국정 운영의 방해꾼이자 적’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비난했고, 심지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하며 ‘자중하라’는 강한 의지를 전달했다. 이미 이런 상황에서 안 후보 스스로가 기자회견을 통해서 대통령실 행정관을 고발했으니, 이제 둘의 관계는 ‘파국’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안철수 의원은 선거가 끝난 이후에는 마치 ‘그간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라고 싶을 정도로 당 행사에 참여해 “당을 적극 돕고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압도적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어떤 역할이라도 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이미 당 대표 선거 과정에서 생겨난 생채기를 그리 간단하게 해결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안철수 의원은 향후 국회의원 공천마저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이러한 걱정은 선거 후 홍준표 대구 시장의 발언에서 매우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홍 시장은 한 기자 간담회에서 안 의원의 미래에 대해서 이렇게 걱정하기도 했다.
중도층 확장 쓰임새 남아
“분당(안철수 의원의 현재 지역구)은 자기 집이 아니라 셋집으로 원주인은 김은혜(대통령실 홍보수석)이다. 김은혜가 내 집 내놓으라면 집 내주고 갈 때는 (원래 안 의원 지역구였던) 노원병뿐으로 이준석하고 붙어야 한다 (…) 당 대표 됐으면 그림이 달라지지만 당 대표가 안 되는 순간 자기도 대상이다.”
이와 함께 홍 시장은 ‘공천은 무서운 것이다. 나 역시 공천받지 못한 것을 보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공천과 관련해 향후 안철수 의원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처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번 당 대표 선거를 거치면서 안철수 의원의 정체성 자체가 애매해졌다는 점을 치명적인 약점으로 꼽을 수 있다. 한마디로 ‘확실한 국민의힘 사람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다’라는 이야기다. 또 ‘언제든 등을 돌려 당과 대통령실을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생긴 것도 안철수 의원으로서는 큰 부담감이다. 과연 이러한 이미지로 당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안철수 의원에 대해 “친윤도 아니고 반윤도 아니고 풀도 아니고 나무도 아니고 (…) 대통령이 볼 때는 ‘이게 우리 식구냐’ 이렇게 되는 거예요”라는 말을 했다. 이는 안철수 의원의 정체성에 대한 매우 날카로운 지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이제 더 이상 안철수 의원은 분당이나 별도의 독자적인 정치 결사체를 구성하기는 매우 힘든 상황이다. 이미 그의 잦은 창당과 탈당 이력이 논란이 되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그는 과거 “우리 당(국민의힘)에 뼈를 묻겠다”는 말까지 한 적이 있다. 더 이상 국민의힘에서 벗어나는 일을 했다가는 그의 정치적 명분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과의 약속을 어긴 불신의 정치인으로 낙인찍힐 가능성까지 있다. 따라서 안철수 의원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국민의힘 내부에서 자신의 활로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다만 한가지 호재인 것은 당내 일각에서도 여전히 안철수 의원의 쓰임새를 강조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점이다. 당 대표 선거 당시 김기현 현 당 대표의 후원회장을 했던 신평 변호사는 최근 BBS <전영신의 아침저널>에 출연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안철수 대표만큼 중도층을 흡수할 수 있는 인물이 과연 국민의힘 당 내에 과연 누가 있겠느냐. 안철수 의원이 3등을 했다. 그러면 다시 기회가 주어지기 어렵겠습니다만 그래도 2등을 했지 않습니까?”
이 말은 곧 향후 총선이나 대선에서 안철수 의원의 중도층 흡수 능력을 인정한 것이고, 이 부분에서 충분히 안 의원은 정치적 활로를 모색할 가능성도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만약 이런 분위기가 지배적이라면, 안철수 의원은 다시 국민의힘에 조력할 기회도 생길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 프로필 사진 캡처(출처=위키백과)
결과적으로 봤을 때 현재 안철수 의원은 ‘벼랑 끝’이라고 평할 수 있다.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아래로 굴러떨어지지만, 반대로 한 걸음만 다시 안쪽으로 들어오면 그나마 목숨은 부지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따라서 안 의원으로서는 이제부터 신중한 행보가 필요하다. 만약 국민의힘에서 계속해서 정치적 발전을 모색하려고 한다면 이제부터 대통령이나 대통령실, 그 어떤 곳과의 대립각도 세우지 않은 채, 당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런 역할에서만 머물러서 과연 차기 대통령 후보로서의 능력과 위상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