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0일 총선은 한동훈 위원장에게 어떤 의미였나?
이번 총선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정치 신인’이라면 단연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대위원장이었다. 법무부 장관에서 일약 여당 대표로 활약하면서 선거를 이끌었다. 그렇다면 과연 총선 후에는 그는 어떤 행보를 보일까? 일각의 평론가들은 ‘토사구팽 당할 것이다’라는 의견을 제시하거나 ‘36계 줄행랑이 답이다’라는 말은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까지 한 위원장이 했던 말을 분석해보면, 총선은 그의 정치 인생의 출발점에 불과하다. 앞으로 그 어떤 시련이 있더라도 대통령이 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으려는 모습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총선 이기든 지든, 내 인생 꼬였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혜성처럼 등장해서 벼락처럼 사라진 몇몇 인물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2017년 정치판에 등장한 반기문 전 유엔총장이었다. 그는 정치를 선언한지 단 3주만에 낙마했다. 비록 초창기에는 보수층의 격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결국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반 전 총장보다 더 격렬한 환영을 받으면서 정치판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한동훈 위원장이었지만, 그의 미래는 완전히 다를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과거 반 총장 보다는 훨씬 더 강한 맷집을 자랑하며, 이재명 대표에 대한 촌철살인 같은 비판을 통해서 보수층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또 한때는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가져올 정도로 정치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중요한 점은 그의 마음 속에는 이미 ‘대권’이라는 것이 매우 확고하게 들어서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매우 확실한 것 중의 하나는 4월 총선에서 이기든 지든, 그 대권가도에는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단서는 지난 3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향후 대선 도전 여부에 관한 질문에 “4월 10일 이후 제 인생이 꼬이지 않겠나. 이기든 지든. 저는 그것을 알고 나왔다”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이기든 지든’이라는 말이다. 만약 총선에서 이긴다면 누구나가 축하할 일이지만, 한 위원장은 설사 선거에서 이겨도 자신의 인생이 꼬인다는 의미의 말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의 뉘앙스는 ‘꼬여도 그것을 이겨나겠다’는 의미이지, 그것으로 정치판을 떠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는 검사 시절, 법무연수원으로 발령이 나면서 한직에 머물렀지만, 그렇다고 검사를 그만 두지는 않았다. 일시적으로 꼬였을 뿐, 그것을 이겨내고 법무부장관에까지 오른 경험을 이미 가지고 있다. 그러니 총선 뒤에 자신의 인생이 꼬인다고 한들, 그것으로 간단히 정치를 두지는 않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 위원장은 이번 총선을 이기고 지는가의 문제로 보기 이전에, 그 어떤 경우든 ‘자신의 전격적 정치 데뷔 무대’로 여기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비록 선거에 진다고 하더라도, 그의 행보가 달라질 이유가 없다. 그가 애초부터 ‘총선 불출마’는 선언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얼마든지 비례대표로도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4년간 국회의원에 묶여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대선으로 향하는 길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차라리 윤 대통령처럼 아무런 정치적 경험이 없이 대통령이 되는 길이 훨씬 더 빠른 길일 수도 있다. 국회에서 상대방 의원들과 계속해서 말싸움을 하고 정쟁에 머물러 있는니, 차라리 ‘더 높은 꿈’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판단했다는 이야기다.
총선 이후에도 정치판 남겠다고 천명
그런데 문제는 총선 이후 대선으로 가는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다름 아닌 윤석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총선에서 패배했으면 어느 정도 휴식기를 가지면 되는 일이고, 만약 승리했다면 대선 가도에는 더 밝은 신호가 들어오게 된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과의 충돌은 이런 것들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문제이다.
특히 이번 선거 과정에서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과 두 차례가 크게 부딪힌 경험이 있다. 이른바 ‘1, 2차 윤-한 갈등’이 그것이다. 사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정치평론가들이 ‘총선 후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에게 엄청난 압박을 할 것이다’라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선거 기간 중에 ‘격노’를 한 일이 많았지만, 선거 기간 중이라 어쩔 수 없이 참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갈등은 애초에 한동훈 위원장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선거 후에 크게 쓰임을 받지 못하는 것은 예상하더라도, 이렇게 ‘격노’를 동반한 상황이 초래되면 가히 훗날을 장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와서 한동훈 위원장이 대선가도에서 발을 뺼 수도 없는 노릇이라는 점이다. 이미 ‘차기 대통령 한동훈’을 둘러싼 권력의 지도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일반 지지자들도 그렇지만, 이미 권력의 물밑에서는 한동훈 위원장에게 소위 줄을 선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따라서 그들을 봐서라도 한 위원장은 일신의 영달을 추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거기다가 이들이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윤 대통령 측으로부터의 공격을 막아줄 수 있다는 점에 생각이 이르면, 더욱 자신감을 가질 수도 있게 된다.
심지어 한 위원장은 총선 기간 중에 전국의대교수협의회 회장단을 만나 협의를 하면서 ‘국정 책임자’로서의 이미지도 극적으로 강화했다. 그는 3월 24일 정부와 의료계간 갈등을 두고 “국민들이 피해 받을 수 있는 상황 막아야되기 때문에 정부와 의료계 간의 건설적인 대화를 중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했다. 사실 이 이전까지는 한동훈 위원장은 ‘선거는 이끄는 인물’ 정도로 인식되었지만, 국가의 난제에 대해서 직접 당사자들과 협의하는 모습을 통해서 ‘국정 책임자’의 위상을 부여받았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오로지 강경하게만 대응하고 있던 상황에서 한 위원장이 나섰으니, 이는 오히려 윤 대통령 보다 더 유연한 모양새라고도 할 수 있다.
이번 4월 10일 총선은 한동훈 위원장이 ‘거대한 서사’를 써나가는 출발점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로 나서는 길은 바로 그때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그가 앞으로도 더 강경하게 대내외적인 투쟁을 해나가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 그는 총선 전에 이러한 사실을 언론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3월 22일 당진전통시장을 방문해 정용선 후보의 선거유세를 지원하던 중에 자신이 선거 끝난 후 유학을 갈 거라는 말을 언급하면서 “저는 뭘 배울 때가 아니라 여러분 위해 공적으로 봉사하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이는 명백하게 총선 이후에도 정치판에 머물겠다는 의미에 다름이 아니다.
다만 한 위원장이 빠르게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드러내는 일은 삼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했다가는 ‘현재의 태양’이라고 할 수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적극적인 견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우 조심스럽게 총선 이후의 상황을 분석하면서 대통령을 향한 자신만의 발걸음을 조심스렙게 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