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지지 이어질 수 있을까?
한때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아르헨티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당선된 지 6개월이 지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애초에 했던 ‘과감한 개혁’을 시작하면서 일부 성과를 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약 1~2년의 시간이라는 점이다. 단기적으로 성장의 수치를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과연 정말로 그러한 조치들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많은 공무원 해고 등이 결국 역풍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더 나아가 지금 당장 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역시 이마저도 큰 의미가 없으며 아르헨티나 국민의 고통은 더 가중된다는 견해도 있다.
‘더러운 좌파’ 외치며 당선
아르헨티나는 끊임없는 국가 부도의 악순환에 처해 있었다. 정부의 과도한 복지 지출로 지하철 요금이 우리 돈 700원밖에 되지 않았다. 서민들이야 당장에는 좋다고 여기지만, 사실 이는 모두 정부의 빚으로 돌아왔다. 이 빚은 점점 늘어나 결국 아르헨티나는 수시로 국가 부도를 선언하는 신용불량 국가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다른 나라에서 돈을 빌려주기도 쉽지 않은 상태였다. 이러한 악순환을 과감하게 끊겠다고 나선 사람이 바로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 후보였다.
그가 화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대통령 후보 시절 선거 운동 때마다 들고나온 전기톱 때문이었다. 그는 마치 콘서트장에 등장한 록스타처럼 외모를 가꾸고 손에는 전기톱을 들고나와 ‘정부 보조금 대폭 삭감’을 강조했다. 그간 아르헨티나 경제를 위 기로 몰아놓은 주범에 대해서 과감한 초치를 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자 그의 지지자들마저 그를 따라하며 전기톱을 들고 유세 현장을 찾아 마치 ‘전기톱 부대’와 같은 모습을 연상케하기도 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특이한 성적 취향’ 마저 과감하게 밝히면서 상대 진영을 ‘더러운 좌파’라고 연일 공격했다. 그가 내세운 공약 역시 매우 과격했다. ‘달러화 도입’, ‘중앙은행 폐쇄’ 등을 내세운 것이다. 결국 그는 지난해 11월 20일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당시 언론과 전문가들은 ‘세자릿수에 달하는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새로운 정치 세력을 갈구했다’라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그는 당시 진보 후보였던 세르히오 마사 후보를 10% 차이로 꺾고 승리했다. 당선 이후 그는 현지 화폐인 페소화의 가치를 급격하게 떨어뜨리는 평가절하를 시작했다. 1달러에 400페소의 환율이었던 것을 800페소로 올리면서 페소의 가치는 급격하게 떨어졌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의 물가는 다시 25%가 넘게 오르게 됐다. 그런데 이것이 충격요법이 되어 이루 점차 둔화세로 돌아섰고 올해 4월에는 8.8%로 급락했다. 이는 그간 하늘 높은줄 모르고 올라갔던 물가도 진정되는 기미를 보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개혁 정책도 과감하게 진행했다. 공공사업 10개 중 9개를 당장 중단했고, 공무원도 1만 명이 넘게 해고했다. 그 결과 정부의 재정 수지는 단 한 분기만에 흑자로 변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의 주가도 급격하게 올랐다. 올해 들어 무려 38%나 올라서 전 세계에서 가장 주가가 많이 오른 나라가 되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였다. 어쩌면 적지 않은 이들이 밀레이 대통령의 개혁을 성공적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겉으로 보이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다. 밀레이 정부 출범 이후 6개월 간의 누적 물가 상승률은 110%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밀레이 대 통령 당선 이후 뭔가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 보였지만, 결국 경제 상황은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또한 주가가 엄청나게 올랐다고 하지만, 이는 정책 금리를 126%에서 40%까지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국민의 지지 이어질 수 있을까?
현재 밀레이 대통령이 하는 개혁에 따른 여러 가지 일련의 긍정적인 시그널은 사실 어두운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불황’이다. 정부가 공공사업을 줄이니 재정이 흑자가 되는 것은 당연하고 정책 금리를 내리니 증시가 활황이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국가의 경제 자체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긴축을 추진하다 보니 투자와 생산, 소비를 꺼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나마 좀 잘 사는 축에 속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시기를 견딜 여력이 있다. 문제는 일반 서민들의 경우 하루하루 견디기가 너무나도 힘들다는 점이다. 경기가 불황으로 돌아서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사람은 당연히 일반 서민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아르헨티나의 인구 구성에서는 든든한 중산층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한 보고서에 의하면 국민의 55% 가 ‘가난하다’는 층에 속하고, 18%는 ‘극빈층’으로 분류 되고 있다.
결국 밀레이 대통령의 개혁에 있어서 ‘지속성’의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특히 그가 각종 긴축재정을 하면서 민간 분야에서도 해고의 광풍이 몰아닥치고 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건설 시장이다. 이제까지 약 10만 명의 사람들이 해고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게 해고된 사람들이 많아지면 다시 소비는 극도로 위축될 수밖에 없 다. 밀레이 대통령이 물가 상승이라는 악순환을 잡았을지는 몰라도 이제는 불황의 악순환에 갇혔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민심이 언제 밀레이 대통령을 떠나갈지는 모를 일이다. 그리고 만약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밀레이 대통령 역시 계속해서 서민들의 지지를 이어 나가기 힘들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결국 밀레이 대통령 역시 다시 경기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고, 결국에는 또다시 물가 상승이 시작되면서 원점으로 되돌아 갈 수밖에 없다.
또 밀레이 대통령은 정부 운영에서도 미숙함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 차원의 각종 스캔들, 커미션 의혹 등이 제기되면서 단 일주일에만 4명의 고위 관료가 사임하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은 국민으로부터 ‘믿을 수 없는 정부’라 는 이미지를 고착하게 된다. 또 그는 후보 시절부터 이스라엘과 미국과의 밀착 행보를 주장했다.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과도한 친이스라엘, 친미 정책은 국제 사회에서 실리 외교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결국 정치 무대에서 오랜 시간 활약해 보지 못한 밀레이 대통령이 결국 ‘고립 외교’를 자초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경제적으로 많은 영향을 가진 중국과 마찰을 빚으면서 통화 스와프의 갱신 확률 이 낮아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심지어 국내 정치도 난관에 처하고 있다. 대통령 취임 이후 6개월 동안 국회를 통과한 법률은 단 하나도 없을 정도이다. 이 역시 국민으로부터 ‘무능한 정부’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아르헨티나 국민이 밀레이 대통령을 뽑은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경제적 악순환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만약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한 때 세계에서도 부강한 국가에 속했던 아르헨티나의 미래는 또다시 더 깊은 수렁에 빠질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