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의 역사에서 인쇄 문화는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지식과 정보의 확산은 물론이고 문화를 보존하면서 문명의 발전 한가운데에 위치한다. 특히 오늘날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인쇄 문화가 큰 역할을 해왔다. 디지털 시대에는 많은 것이 온라인화됐지만, 인쇄 문화는 여전히 중요하며 또한 그 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인쇄인들이 모여 결성한 인쇄 조합들은 각 지역에서 자신만의 위상을 가지고 인쇄 문화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인쇄 조합은 바로 63년 전에 태동한 ‘대전세종충남인쇄조합’이다. 현재 약 250명의 조합원이 활동하고 있는 이 조직의 리더는 바로 박영국 이사장. 그는 지난 35년간 인쇄 사업에 투신해 왔으며, 2018년 2월 제21대 이사장에 취임한 후 2022년 2월 제22대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연임했다. 그가 이렇게 조합 이사장 일을 하는 것은 개인적인 욕심 때문은 절대로 아니다. 어차피 이사장은 무보수 명예직이라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 한들 명예와 성과 말고는 남는 것이 없다. 인쇄에 대한 한없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박영국 이사장을 만나 그의 35년 인쇄 이야기와 미래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쇄 역사관’ 개관, 전국에서 견학 이어져
대전은 서울, 대구와 함께 ‘전국 3대 인쇄 거리’로 불린다. 그만큼 인쇄 산업이 발전해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대전역 일대에서 1,000여 명 이상의 관련 종사자가 모여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이러한 인쇄 업종 종사자들이 모인 곳이 바로 대전세종충남인쇄정보산업조합(이후 ‘인쇄조합’)이다. 이러한 활동은 세계 최고(最古)의 인쇄술을 자랑했던 우리 선조들의 명맥을 잇는 활동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하나의 인쇄물을 위해서는 수많은 협업이 존재해야만 한다. 종이, 출력, 인쇄, 제본, 형압, 코팅 등 여러 사업체의 노력이 동시에 들어가야 하고, 이와 함께 제작 시간 단축, 품질 향상, 비용 감축이 이루어져야 하는 사업이기도 하다. 그러니 인쇄조합과 관련한 협동조합의 필요성은 무엇보다 절실하다.
현재 박영국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인쇄조합의 가장 최근 이슈라면 단연 지난 1월 21일 개관한 인쇄 역사관이다. 국토부의 도심 재생 뉴딜 사업의 일환으로 인쇄 특화 거리에 지어졌다. 이곳은 전 세계에 한글을 알리고 인쇄 과정을 견학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과거 목판 인쇄부터 오늘날 최첨단 인쇄기에 의한 활자 인쇄 과정까지 모두 전시하고 있다. 올해 4월부터는 해설사도 투입해 더 효율적인 견학이 가능할 예정이다. 현재 역사관 측은 연간 방문 인원을 3만 명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미 현재에도 다양한 타 지역에서 견학을 오고 있다.
또 그간 박영국 이사장은 지역의 인쇄 문화를 알리기 위해 동구청에서 1억을 지원받아 ‘인쇄 페스티벌’ 행사를 두 차례나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영국 이사장의 역할은 단순히 인쇄 문화를 알리는 일에 중점을 두는 것은 아니다. 대전·세종·충남 지역의 인쇄업체 공동의 번영을 위해 입법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미래의 더 큰 변화를 위한 목표에 올인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지난 8년간의 연임과 올해 마지막 임기에 대한 소감을 들어봤다.

“지난 2018년 처음 21대 이사장에 취임할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 ‘투명한 조합 운영, 실천하는 참 일꾼!’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이사장 선거에 출마했는데 조합원님들이 저의 손을 들어주셔서 무척 감사하며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했습니다. 특히 저는 조합원들께서 함께해 준다면 조합원이 주인인 조합, 투명하고 공정한 조합, 조합원 모두의 이익 창출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조합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고, 말보다 실천을 우선시하다 보니 연임도 할 수 있고, 오늘날과 같은 결과를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저는 인쇄조합을 전국 최고의 인쇄조합으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8년간 연임을 해보니 3~4년 정도 일을 해서는 제대로 된 결과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따라서 인쇄조합의 발전을 위해서도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조합 건물 지하에 협업공장 지어
이제까지 박영국 이사장이 이뤄낸 성과는 결코 작지 않을 뿐 아니라, 그간 주춤했던 일도 다시 재정비해 추진하고 있다. 특히 조합 건물을 지은 것은 최대의 성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임기가 끝나갈 즈음에 국토부 175억 원, 대전시 175억 원을 지원받아 건물을 지었다. 건물을 지을 당시 설계 변경만 8번을 할 정도로 힘든 작업이었지만, 지역 인쇄인들을 위한 보금자리가 되었다.

1층 카페에는 인쇄인들을 위해 커피를 2,200원에 판매하고 있으며, 지하 350평에는 협업 공장을 만들고 있다. 조합원들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으며, 출력, 인쇄, 제본, 코팅 공장을 만들어 칸막이까지 해 놓은 상태이다. 특히 ‘하이 프린팅’이라는 공동 브랜드는 이사장 임기 중 가장 보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입찰에 의해서 몇십억 원 물량까지 소화할 수 있으며, 인쇄조합에서 견적서를 받아 충남 15개 단체장에게 업체를 선정해 주기도 한다.
다양한 수상도 자랑거리이다. 박 이사장이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이전 60여 년간 조합 회사들은 단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취임 이후 벤처부 장관상 19개, 문광부 장관상 7개를 받았을 정도로 눈부신 발전을 해왔다. 조합원들에게 공문을 보냈고, 심사도 공평하게 해서 복수로 추천했으니 모든 것이 공평하게 진행된 셈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
“현재 25억 원에 달하는 협업 공장의 장비 도입도 고려하고 있으며, 다가오는 총회에서 디지털 TF팀을 구성해 현재 트렌드에 적응하려 하고 있습니다. 또 계룡시에는 국군인쇄창이 있어 모든 군 관련 인쇄를 담당하고 있는데, 이를 민영화할 것을 건의하고 있습니다. 만약 연임이 된다면, 계룡시 국군인쇄창의 민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35년간 사업을 운영하면서 많은 고민을 해왔습니다. 대전에 적합한 조례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해 개선한 사례도 있으며, 아마도 저희가 조례를 가장 많이 활용한 조합일 것입니다. 이런 일들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일이라면 끝까지 추진할 생각입니다. 기관장들을 만나면 여러 가지 부탁을 받기도 하는데, 때로는 제발 쉬라고 말할 정도입니다(웃음).”
현재 박영국 이사장은 2세 경영을 하고 있다. 1993년에 창립한 태영문화사를 시작으로 CTP까지 해오고 있다. 현재 아들 박규태 대표가 15년째 2세 경영을 하고 있다.

청년 시절 JC 활동으로 큰 깨달음
그의 사회생활은 21살 강원도 사북에서 갱목 사업을 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갱목은 탄광산을 지탱하는 나무를 말한다. 또한 청년 시절에 했던 JC 활동도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북 JC 회장 시절에는 회의 진행법과 의전 등 인생에 있어 중요한 지식과 지혜를 배웠고, 이러한 JC 활동을 했으며, 28~29세에는 청년 조직국장을 맡아 활동했다. 박 이사장은 한때 정치의 꿈을 갖기도 했지만 정치에 대한 마음을 비우고 새로운 인쇄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평생 인쇄 사업을 하면서 자신만의 삶의 철학과 노하우를 키워왔다.
“저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을 꼽습니다. 가훈 역시 ‘백인삼사(百刃三思)’입니다. ‘백 번 참고 세 번 생각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군 복무 시절 멘토였던 이상호 연대장이 전해 준 말로, 성격이 급했던 그에게 큰 교훈이 됐습니다. 특히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신중함을 강조하며, 이 원칙을 실천해 왔습니다. 앞으로 남은 1년의 기간 동안에도 선후배 간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자 합니다. 우리 조합원들이 모두 아무런 문제 없이 사업을 영위해 나가는 데에 제가 일조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지난 7년간의 활동 기간과 이제 올해 남은 1년이 지나면 박영국 이사장이 거둬온 성과는 더욱 뚜렷하게 보일 것이다. 박영국 이사장이라면 아마도 인쇄조합의 역사에서 그의 이름이 분명 지금보다 훨씬 더 빛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