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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외할머니를 둔 모든 이들에게, 영화 ‘할머니의 먼 집’
[Column]외할머니를 둔 모든 이들에게, 영화 ‘할머니의 먼 집’
  • 이혜인
  • 승인 2018.02.20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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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할머니의 먼 집’

 

외할머니를 둔 모든 이들에게

-영화 ‘할머니의 먼 집’

다큐멘터리. 한국. 92분. 2016. 감독 이소현. 출연 이소현 박삼순.

 

 

 

 



모임 플랫폼 문토를 통해 가입한 다큐 모임 ‘다큐로 묻는 밤’의 첫 모임 날이었다. 회사일로 바쁘다는 핑례로 리더인 이승문 PD의 ‘5월, 아이들’ 레퍼런스를 보지 않고 참석했다. 첫 모임의 주제는 죽음이었고 그래서 레퍼런스도 감상 영화도 죽음을 다룬 작품이었다.

 

‘할머니의 먼 집’은 놀랍도록 사적인 이야기를 기록으로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죽음의 목전에 닿아있는 자신의 할머니를 감독이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 영화의 모티브다. 영화는 할머니의 자살 시도로 시작된다. 주인공 박삼순 할머니는 너무 오래 살았고, 조금이라도 빨리 배우자 곁으로 가는 것이 자식들에게 누가 되지 않고 깔끔하게 인생을 정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흔 세 살의 주인공은 대장암으로 투병 중이신 내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외할머니는 좀처럼 가족 생각을 잘 하지 않는 내게도 각별한 분이었다. 서울에서 투병 중이실 때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찾아뵙곤 했다. 생명이 스러져가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이다. 병든 사람에게 ‘금방 나았으면 좋겠다’거나 ‘얼른 쾌차하세요’ 같은 말을 예의상으로 하게 되고 그게 마음도 편하다. 그런데 죽어가는 할머니에게는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지금 찾아온 이 위기를 넘긴다고 해도 또 지리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 집이 부자도 아니고 노는 사람도 없는 이상 할머니는 고장난 몸으로 또 외롭고 위험한 삶을 이어가셔야 한다. 나도, 엄마도, 가족들도 할머니가 언제쯤 돌아가실지 의도이든 아니든 기다리게 될 뿐이다. 또 다시 몸이 나아지셔서 괜찮은가 보다 하고 살던 어느 날 할머니가 갑자기 외로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 외로움을 상상하고 싶진 않으니까. 가족들이 모두 챙겨드릴 수 있는 병원에서 삶을 마무리하시는 것이 낫지 않을까. 죄스럽게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도 할머니 얼굴을 보면 할머니가 이 세상 어디에도 영영 안 계시게 되는 일은 너무 괴로워 견딜 수가 없을 것만 같다. 처음 할머니의 발병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겪었던 감정이다.

 

영화의 ‘나’는 나와 달리 성인이 된 후에도 할머니와 친밀한 관계를 이어왔다. ‘나’는 취업준비를 미뤄두고 전남 화순에 내려가 할머니와 시간을 보낸다. 할머니가 얼마나 예쁜지 기록하고 싶어 매번 카메라를 든다. 나를 찍어서 무엇하냐는 할머니는 곧 예쁜 걸 찍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꽃이 피고 바람이 부는 저수지에도 가고, 함께 고운 한복을 입고 사진도 찍어 본다.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죽고 싶어 했던 할머니가 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엄마만큼이라도 젊어져 삶을 좀 더 누리길 원한다는 걸 카메라는 묵묵히 보여준다. 꽃을 좋아하고, 겨울에도 화분을 옮겨서 물을 주고, 그렇게 아직도 생에 대한 의미가 충만한데 상황은 할머니를 그대로 두지 않는다. 추석에는 자식들에게 치여 뒷방 늙은이 신세로 그저 가만히 앉아 받아먹기만을 종용받는다. 기력이 시원치 않아 걷다가도 자꾸 넘어져 부딪힌다. 팔에서 피가 나고 눈 밑에 멍이 들어도 적절한 처치를 할 수가 없다. 아흔 셋, 넷은 그런 나이다. 자식들이 올 때마다 한숨이 늘어가고 자식들을 못 알아 볼 때도 있다. 그럴 바에야 죽는 것이 낫겠다, 살고 싶지 않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낳은 자식들이 나 때문에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것을 보면서 이 세상에선 내 쓸모가 다 했음을 처절하게 인정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들이 불시에 죽어 혼자가 된 후 마시지도 않던 술을 하루 한 병 꼬박꼬박 마시는 것은 잠시나마 그 괴로움을 잊어보려 했음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내일 아침 눈을 뜨기 전에 이 생이 끝나있으면 하는 생각을 자기 전에 몇 번이고 하지 않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박삼순 할머니가 언제 돌아가실까 조마조마했다. 영화에선 할머니의 죽음을 다루지 않는다. 시점 상으로는 가장 먼저 찍었던 나들이를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꼭 끝을 보여주고 기승전결을 맺어야만 좋은 이야기와 좋은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관객은 어떤 것이 끝인지 알고 있는 상태이고 거기서 감독은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을 했다. 할머니를 찍고 싶어 시작한 기록이지만 사실은 감독의 사랑을 담은 영화이다. 할머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후회하고 싶지 않았고 잘 보내드리고 싶은 욕심에 했던 모든 일들이 이 영화에 담겨 있다. 그렇다면 할머니의 죽음이 영화의 끝이 되는 것은 어색하다.

 

이제와 생각한다. 내 할머니도 사실은 더 살고 싶으셨을 거라고. 상황이 이렇지 않았더라면 좋은 거 많이 보고 맛있는 거 많이 보고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으셨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눈물을 주체하기가 쉽지 않다. 영화에서 박삼순 할머니는 죽고 싶어하면서도 살고 싶어 한다. 돌아가야 하는 자식들과 손주를 볼 때마다 꽉 안고 놔주지 않는다. 밭의 잡초를 뽑고 청소도 하고, 손주에게 밥을 해주고는 기뻐하신다. 생의 역설이다.

 

영화가 개봉했을 때 할머니는 아직 살아계셔서 감독과 GV를 진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걸 누가 보나 했더니 정말로 보러온 관객들을 보며 놀라워하셨다고. 그 뒤에 할머니는 결국 돌아가셨고, 행복했던 시간들은 영화로 남았다. 내 인생에 점으로 남을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다. 인생의 역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할머니가 내 인생에서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분이었는지 알려드리고 싶다. 외할머니를 둔 사람이라면 모두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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