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이 넘게 휠체어와 음성 재생 장치에 의존하며 연구와 집필, 강연에 몰두했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지난 3월 14일 영면했다. 그는 대중들에게는 우주에 대한 신비를 전파했고, 때로는 미래 기술 세계에 대한 경고를 하기도 했다. 또한 장애를 가진 과학지망생들에게는 우상이자 영웅이기도 했다. 더불어 일반 과학자들과는 다르게 <심슨가족>, <스타트랙>에 출연하거나 혹은 목소리를 제공해 대중들에게 매우 친근한 이미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늘 우주에 대한 탐구에 몰두했던 그는 이제 영원히 우주로 되돌아 갔다. 영국 케임브리지의 자택에서 숨진 스티븐 호킹은 선배 과학자들인 아이작 뉴턴과 찰스 다윈이 묻힌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됐다.
루게릭병에 목소리까지 잃어
“오래 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17세의 나이에 옥스퍼드 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했던 청년 스티브 호킹은 대학을 졸업할 즈음인 21살에 청천병력같은 의사의 말을 들어야 했다. 그의 병은 일명 ‘루게릭병’. 의학적으로는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이었다. 퇴행성 질환의 일종인 이 병은 근력약화와 근위축을 동반한다. 팔다리는 뻣뻣해지고 신체의 근육은 서서히 말라가고 힘이 없어진다. 다만 감각신경이 마비되기 때문에 통증을 느끼지는 못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의식은 뚜렷하고 배변이나 배뇨에서는 장애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계속해서 연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두뇌활동이 가능했고, 음식물을 소화시킬 수 있었던 덕분이기도 하다.
‘곧 죽을 것이다’라는 의사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는 50년간이나 휠체어에 의지하면서 전 세계를 돌아다녔고, 한국도 2번이나 찾아서 각종 인터뷰와 강연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그는 목소리까지 잃었다. 1985년 유럽을 다녀오는 중 폐렴에 걸려 더 이상 육성으로 말을 할 수 없었다. 루게릭병에 이은 또하나의 불운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컴퓨터 음성 재생 장치를 통해서 소통하면서 자신의 열정을 더욱 불살랐다. 그 결과 생존 당시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계보를 잇는 천재 이론 물리학자로 통했다. 우연하게도 아인슈타인이 태어난 날이 ‘3월 14일(1879년)’이었고, 호킹이 영면한 날도 ‘3월 14일(2018년)’이었다.
그는 살아 생전 일반인들보다 더욱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자신의 신체적인 조건에 연연하지 않고 1965년 케임브리지대 대학원에 진학해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그 후 연구원, 교수를 거쳐서 1979년부터 2009년까지 무려 30년간 케임브리지대 수학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스티븐 호킹이 받았던 다양한 상들은 그의 연구가 얼마나 큰 성과였으며, 더불어 다른 과학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감을 주었는지를 알게 해준다. 1974년 영국 왕립학회로부터 ‘아인슈타인상’과 ‘휴즈 메달’을 받았으며 1980년에는 기사 바로 아래 작위인 ‘커맨더’에 임명됐다. 또 2009년에는 미국 최고 시민 훈장인 ‘대통령 자유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순수한 이론물리학의 업적에 주어지는 ‘기초물리학상(Fundamental Physics Prize)’을 받기도 했다. 이 상의 상금은 3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30억에 해당하는 큰 돈이다. 또한 그는 열정적인 집필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1988년 출간된 <시간의 역사>는 전 세계적으로 1천만 권이 팔리면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호두껍질 속의 우주>, <위대한 설계>, 에세이집 <블랙홀과 아기 우주> 등의 저서를 통해서 일반인들도 흥미롭게 과학의 세계를 접할 수 있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