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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소극장의 가능성
[Column]소극장의 가능성
  • 이혜인
  • 승인 2018.03.14 1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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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올라누스 (Coriolanus, NT Live, 2014)

감독 조지 루크 출연 톰 히들스턴, 마크 게티스, 데보라 핀들리 등

   

‘성폭력 반대 연극인 행동’이 출범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불행 중 다행한 일이다. 다만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요즈음 떠들썩한 미투 운동에 공감과 분노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가슴이 아픈 양가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기쁘게 관람한 작품들을 창작했던 사람들이 무대 뒤에서 일으킨 범죄를 생각하면 분노가 생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힘든 연극계가 이들 때문에 더 어려워질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우리나라 연극계는 문화의 사각지대라 할 수 있다. 거대 문화 산업들이 대부분의 수요를 가져가면 이 잔혹한 제로 섬 게임에 굶주리는 것은 연극인들이다. 그럼에도 연극을 사랑하는 이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연극이 주는 매력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극장 연극이 그렇다.

 

5년 전쯤 런던에서 <코리올라누스>를 봤다. 총 5막으로 구성, 166분을 내리 달리는 셰익스피어의 역사극이었다. 이 정도 역사극이라면 으레 커다란 무대와 웅장한 세트, 정교한 소품이 동반된 공연을 떠올린다. 그러나 내가 들어선 공연장은 런던 코벤트 가든의 소극장 Donmar Warehouse였다. 'Warehouse'라는 단어가 말해주듯 이곳은 본래 과채시장이었던 코벤트가든의 바나나 창고로 쓰였던 공간이다. 1층은 삼면에 걸쳐 펼쳐진 작은 의자들, 그마저도 2층은 스탠딩석이었다. <어벤져스>의 로키 역으로 얼굴을 알린 톰 히들스턴이 코리올라누스로 출연하는지라 예매는 당연히 놓쳤고 새벽부터 줄을 서 간신히 스탠딩석을 구했다.

   



무대는 단촐했다. 단차도 없고, 아무 색이나 겹쳐 칠한 듯한 벽과 좁은 바닥에 사다리 하나, 의자들. 당시는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RSC를 비롯한 여러 프로덕션이 런던 곳곳에서 셰익스피어의 역사극들을 상연하고 있던 때였다. 개중 <코리올라누스>의 무대는 단연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주드 로의 <헨리 5세>, 데이빗 테넌트의 <리처드 2세> 등 3000석 이상의 대극장이나 화려한 무대연출을 내세운 작품들 사이에서 이토록 단순한 연출로 정면 돌파하는 <코리올라누스>의 야심은 특별했다. 영국 국립극장의 NT Live 상영작으로 선정되며 그 야심은 이미 검증을 받은 상태였지만.

 

보통 예산이 적고 투자로 공을 들이기 힘든 작품들이 소극장에 오른다고 생각하지만, 소극장은 어떤 곳보다도 냉엄한 심판대다. 좁고, 가깝기 때문이다. 더하는 것보다 빼는 것이 어렵다. 모든 창작이 그렇다. 소극장은 빼기의 내공 없이는 작품을 올리기 힘든 무대다. 창작자의 머리 속에 든 모든 것을 구현할 수 없다. 철저히 관객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바라보고 이 작은 무대에 어떤 것을 올리고 내릴지를 결정해야 한다. 무대가 단순하고 세련된 것인지 빈해 보이는 것인지의 경계는 매우 미묘하다. 막이 오르기 직전까지도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그 경계를 제대로 짚어낸 무대, 작품은 가장 강력한 무기를 장착한다.

   



바로 관객의 상상력이다. 인간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해서, 아주 작은 암시와 안내만으로도 그 밋밋한 무대에서 기원전의 장엄한 전쟁터를 불러낼 수 있다. 바꿔 말하자면 소극장의 무대를 꾸미는 일은 관객의 상상에 필요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들을 걸러내는 작업이다. 그 작업에 성공하면, 관객의 인지능력과 상상력을 살짝 이어내는 것만으로 창작자는 효율적인 무대를 꾸밀 수 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않아도 그들이 상상해내게 할 수 있다. 심지어 관객 저마다의 상상력에 따라 하나의 공연에서 각자 다른 경험을 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 매체로는 전달 불가능한 현장성은 덤이다. 작아서 더 풍부한 곳, 소극장의 가능성은 그렇게 무궁무진하다.

장장 세 시간 가까이를 서서 잘 들리지도 않는 대사에 귀 기울여 가며 봤던 연극은 그래서 특별했다. 무대에 내려진 단 세 개의 사다리만으로도 혹독한 성벽을 넘나드는 영웅의 고뇌에 공감할 수 있었고, 핀 라이트 하나와 밧줄에 거꾸로 매달린 톰 히들스턴 만으로 영웅에서 역적으로 한 순간에 떨어진 남자의 고독한 감옥을 그려낼 수 있었다. 최소화된 무대와 장치, 소품은 관객의 상상력을 최대치로 끌어냈다. 그날의 놀라운 경험은 소극장 공연에 대한 내 인상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소극장에서의 감동은 연극의 특성이 빚어내는 소중한 선물이다. 국내에도 두산의 Space 111, 국립극단의 소극장 판 등 공연마다 트랜스포머처럼 변화하는 멋진 소극장들이 있다. 이러한 소극장들이 활성화된다면 연극계 전반에 활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연극에는 우리나라의 제로 섬 게임을 끝낼 수 있는 충분한 매력이 있다. 다만 친숙하지 않을 뿐이다. 어쩌면 최근에 일어난 불유쾌한 사건들은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일부의 창작자가 타락했어도 연극은 타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은 사람들이 만든 좋은 공연을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될지 모른다. 제로 섬 게임이 아니라 포지티브 섬 게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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