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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박하사탕> 재개봉 - 박하사탕은 변하지 않는다
[리뷰]영화 <박하사탕> 재개봉 - 박하사탕은 변하지 않는다
  • 최해정
  • 승인 2018.04.26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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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시 돌아갈래!’주인공 영호(설경구)가 울부짖으며 외치던 이 장면은 영화 <박하사탕>을 보지 않은 사람들도 기억할 만큼 명장면으로 꼽힌다.  


이창동 감독의 두 번째 영화 <박하사탕>은 당시 신인에 가까웠던 설경구와 문소리를 발굴해낸 작품이자, 많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영화로 찬사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 <박하사탕>을 좋아 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거듭 보고 싶으면서도 외면하고 싶은 영화라고 평가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주인공 영호(설경구)를 통해 현실과 타협했던 순간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많은 네티즌들이 영화 <박하사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살아보면 알게 되는 슬픈 영화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주인공 영호(설경구)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가슴 아픈 현실이다.’, ‘순수하던 시절이 그립고, 자아반성을 하게 한다.’등 영화에 대한 느낀 점들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한번 쯤 되돌아보고 싶은 순간은 누구나 있기 마련이다. 영화 <박하사탕>은 이런 대중들의 심리를 파악한 영화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결국 감독 이창동은 어디로 되돌아가고 싶었던 걸까? 어떤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의문이 든다.

 

“인생이란 뭔가 화려한 것, 거창한 것, 고상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인생이란 구질구질하고 더럽고 고달픈 것의 연속이었다. 끝없는 장애물 경주처럼 결고 그것들을 회피할 수 없었다.”

이창동 소설 <녹천에는 똥이 많다> 의 일부.

 

의문은 감독 이창동의 소설 <녹천에는 똥이 많다>에서 살펴보면 조금 해결이 된다. 감독 이창동은 인생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화려하지 않다는 것을, 초라할 만큼 더럽고 고달픈 삶의 연속이라는 것을 <박하사탕>에서 영호를 통해 보여주었다고 본다. 또한 그는 <박하사탕>의 코멘터리에서 작품에 대한 자신의 소견을 밝힌 바 있다.

 

“<박하사탕>은 폭력과 가해자에 대한 어떤 합리화가 결코 아니라 현대사와 맞물린 한 인간의 시간을 되돌려 현실 결과의 원인을 찾는 실존적 작업이었다.”

 

영화 초반 달려오는 기차를 마주하며 주인공 영호(설경구)는‘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친다. 그렇게 영화는 달리는 기차와 함께 영호의 과거로 시간여행을 한다. 이 영화는 영호의 삶에서 중요했던 순간들 혹은 사건들로 총 7개의 챕터로 구성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매개체가 바로 ‘기찻길’이다. 영화에서의 기찻길은 어떤 상징성을 가지고 있을까. 처음 기차를 마주한 순간부터 영호의 시간은 기차와 함께 1999년(4일전), 1994년, 1987년, 1980년,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챕터가 넘어가는 매 순간마다 달리는 기차의 시선으로 기찻길의 장면이 연속된다. 그리고 장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테이프를 돌려 감기 하듯이 주변 사람들과 차들은 거꾸로 움직이는 모습이 포착된다. 즉, 과거로 달려가고 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귀엽고 순수한 연출이다.

 

 

 

영화 초반의 40대 영호는 광기 어린 모습을 보여줄 만큼 이상했다. 하지만 <박하사탕>은 기차와 함께 시간 거슬러 올라가며 주인공 영호가 왜 그래야만 했는지. 영호의 순수성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들어가게 된 것인지를 알려준다. 감독의 말처럼 폭력의 합리화는 찾기 어려웠다. 곳곳에 등장하는 폭력의 장면들은 불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현실은 어떠한가. 너무 많은 폭력에 찌들어 있고 무서울 만큼 폭력에 무뎌져 가고 있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박하사탕>이 보내는 이 불편한 메시지를 외면할 수가 없다. 폭력은 합리화되어서는 안 되지만 영호는 과연 가해자일까 피해자일까 의문이 남는다.


영호의 현재와 가까운 과거 1999년, 첫사랑 순임(문소리)의 남편이 영호를 찾아왔다. 순임은 박하사탕 공장을 다니던 시절 영호를 처음 만났고, 그의 첫사랑이자 가장 순수했던 시절을 떠오르게 만드는 인물이다. 순임의 남편 부탁으로 영호는 순임이 누워있는 중환자실에서 순임의 손에 박하사탕을 쥐어주며 ‘박하사탕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영호와 순임의 순수한 시절 또는 진실 된 사랑을 상징하는 것이 박하사탕이라 본다. 수많은 폭력들에 물들어 버린 영호에게 맛도 모양도 변하지 않은 건 박하사탕뿐이었다.

 

 

 

사람들을 고문하던 영호의 형사 시절, 순임은 영호를 찾아왔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더 드러내며 순임을 돌려보낸다. 그때라도 영호가 순임과 함께 했다면 다른 삶을 살게 되었을지 의문이 든다. 영화 속 영호에게는 선택의 순간이 많았고 그때마다 영호는 자신의 순수함을 포기하며, 삶에 찌들어가는 면모를 보였다. 다른 선택을 했다면 영호의 삶이 아름다웠을까? 만약 우리도 순수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다시 잘 살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도 든다.  

 

주변 사람들의 배신으로 결국 영호는 모든 것을 잃었고 생도 포기하기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보는 이를 더욱 씁쓸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창동 감독이 알려고 했던 순수한 청년 영호의 폭력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는 영화 속에 잘 표현되어 있다. 결국 이창동 감독은 가슴 아픈 우리나라의 현대사의 굴레 속에 한 인간의 순수성이 어떻게 상실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영화 <박하사탕>은 시대를 탓하지도, 인물을 탓하지도 않는다. 다만 흘러가는 세월 속에 타협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을 반성하게 만든다. 영화를 더 깊게 이해할수록 더욱 씁쓸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영화는 타협한 당신을 탓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누구나 품고 있을 순수했던 그 시절의 자아를 돌아보게 만든다.


수많은 작품 활동을 해 온 설경구는 여전히 <박하사탕>을 최고작으로 꼽는다고 한다. 당시 신인에 가까웠던 그가 주인공이라는 큰 배역을 맡았다. 하지만 마냥 행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설경구는 “촬영을 하면서 너무 괴로웠다. 매 챕터 다른 인물 같아 고통 속에 하루하루 너무 어려운 숙제를 해결하는 느낌이었다.”고 고백했다.  


그에게 이토록 버거운 무게감을 안겨준 영화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가 데뷔 후 내내 <박하사탕>을 대표작으로 꼽게 만든 이유도 그 무게를 견뎠기 때문이다. 만약 설경구가 아닌 다른 배우가 영호 역을 맡았다면 어땠을까? 아마 이렇게 성공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가 촬영 내내 가지고 있었던 무게가 고스란히 작품에 녹아내렸다고 본다.  


영화 <박하사탕>은 2018년 4월 26일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했다. 오랜 세월 동안 몇 번이고 다시 보게 되는 영화인만큼 이번 <박하사탕>의 재개봉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극장으로 발걸음 할 것이라 본다. 또 다시 우리는 영화 속 영호(설경구)의 물음에 생각하게 될 것이다. ‘당신의 삶은 아름다운가요?’이것을 생각할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거듭 보기에 충분히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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