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한 명도 출연하지 않고 실제 촬영장도 없는 장편 드라마가 중국 지상파 황금시간대에 등장했다. 지난 8월 31일 후난위성TV와 동영상 플랫폼 망고TV에서 첫선을 보인 ‘후서유기’다. 중국 고전 ‘서유기’의 후속 세계를 다룬 이 작품은 첫 시즌이 30부작, 회당 약 40분으로 기획됐으며 화면 속 등장인물과 배경 등을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만들었다. 중국 인민일보는 이를 ‘생성형 AI로 완전히 제작한 첫 장편 드라마’라고 소개했다. 일부 실시간 시청률 집계에서는 첫 방송 최고 시청률이 0.33%대까지 올라 같은 시간대 성급 위성방송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아직 기존 인기 드라마를 위협할 정도의 수치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AI로 만든 장편 드라마가 실제 방송사의 황금시간대에 편성됐다는 사실 자체는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제작비를 획기적으로 줄인 드라마
이번 AI 드라마 제작에서 놀라운 것은 바로 제작기간과 제작비가 아닐 수 없다. 리둥선은 중국 신경보와의 인터뷰에서 작품의 기획부터 첫 방송까지 3개월 남짓이 걸렸고, 한 회 제작비는 90만 위안 이상이라고 밝혔다. 분당 제작비로 계산하면 2만~3만 위안 수준이다. 리 감독은 비슷한 수준의 영상을 기존 방식으로 제작할 경우 분당 약 30만 위안이 필요할 것으로 봤다. 결국 이렇게 봤을 때 현재 AI가 영상산업에서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능력은 아직 ‘연기’보다 ‘제작 효율’이라고 볼 수 있다. 거대한 세트를 만들거나 수많은 엑스트라를 동원하지 않아도 되고, 현실에서는 구현하기 힘든 판타지 공간이나 전투 장면도 컴퓨터 안에서 만들어낼 수 있다. 한번 만들어 놓은 캐릭터와 공간을 다시 활용하고 수정하는 것도 기존 촬영보다 훨씬 쉽다. 특히 판타지나 SF처럼 특수효과에 많은 돈이 들어가는 작품일수록 이러한 장점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넷플릭스는 2025년 아르헨티나 드라마 ‘이터너트(The Eternaut)’의 건물 붕괴 장면에 생성형 AI를 사용했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 테드 서랜도스는 해당 장면을 기존 시각효과 방식보다 약 10배 빠르게 만들 수 있었다고 밝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프로그램의 최종 영상에 생성형 AI로 만든 장면이 사용된 첫 사례이기도 했다. 다만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AI가 드라마 전체를 만든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배우와 감독, 작가가 만드는 기존 제작 과정에서 비용과 시간이 많이 필요한 특정 시각효과를 AI가 맡은 것이다.
할리우드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영화 및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라이언스게이트는 2024년 AI 영상기업 런웨이와 손잡고 자사가 보유한 영화와 TV 콘텐츠를 기반으로 맞춤형 AI 모델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회사가 밝힌 목적 역시 감독이나 제작자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작업을 보조하고 제작 효율을 높이는 데 있다.

화려한 화면는 미지수
딜로이트 역시 2025년 미국과 유럽의 대형 영화·TV 스튜디오들이 생성형 AI에 투입하는 제작비는 전체 제작예산의 3%에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마케팅과 기획, 현지화, 더빙과 같은 지원 업무에서는 AI 활용이 훨씬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한마디로 현재 AI가 가장 빨리 들어가고 있는 자리는 배우의 영역이 아니라 수많은 작업자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제작비를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해서 드라마가 10배 재미있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후서유기’를 봐도 그렇다. 인민일보는 이 작품을 평가하면서 기존 AI 영상의 단점으로 지적됐던 인물의 일관성 부족과 부자연스러운 카메라 움직임, 표정과 동작의 어색함 등은 상당 부분 해결됐다고 평가했다. 캐릭터의 표정이나 액션, 거대한 배경을 구현하는 능력에서는 이전 AI 영상보다 크게 발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은 달랐다. 같은 평론은 ‘후서유기’가 시각적인 표현을 보여주는 데 지나치게 집중하면서 스토리와 인물 형성이 상대적으로 약해졌다고 지적했다. 초반부가 느리고 일부 장면에서는 클로즈업과 슬로모션이 지나치게 많았고, 화려한 액션에 비해 대사가 인물의 행동 동기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화면을 그럴듯하게 만드는 기술적인 문제는 빠르게 해결되고 있지만, 시청자가 등장인물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하게 만드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시행착오가 있었다. TV 제조업체 TCL은 2024년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AI를 활용한 단편 영화들을 공개했다. 이전 작품보다 영상 품질은 좋아졌지만 미국 IT매체 ‘더 버지’는 등장인물의 감정 표현이 부족하고 움직임이 어색하며 이야기 자체도 일관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AI가 한 장면을 놀랍게 만드는 것과 여러 장면을 연결해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시청자가 원하는 드라마
시청자들의 태도에서도 이러한 차이가 나타난다. 미국 엔터테인먼트 조사기관 루미네이트가 2026년 공개한 조사에 따르면 영화와 TV 제작에서 AI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미국 소비자들은 전반적으로 편안함보다 불편함을 더 많이 느꼈다. 특히 살아 있는 배우를 디지털로 복제하거나 완전히 가상의 AI 배우로 대체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가장 컸다. AI가 각본을 쓰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싶다는 반응 역시 부정적인 쪽이 우세했다.
반면 AI를 어디에 사용하느냐에 따라 반응은 상당히 달라졌다. 음향효과에 AI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순긍정 반응은 11%포인트, 특수효과와 시각효과는 10%포인트, 애니메이션은 7%포인트 긍정적인 쪽이 높았다. 더빙 역시 2%포인트의 순긍정을 기록했다. 결국 시청자들은 현재까지 사람을 통째로 AI로 바꾸는 것보다 사람이 만든 콘텐츠의 완성도를 높이는 도구로 AI를 사용하는 데 상대적으로 더 우호적인 셈이다.
다만 앞으로 AI 드라마가 기존 드라마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의 AI 콘텐츠 스타트업 페이블(Fable)이 개발한 드라마 제작 플랫폼 ‘쇼러너(Showrunner)는 이용자가 몇 마디의 명령어를 입력하면 등장인물의 목소리와 대사, 장면을 만들고 새로운 에피소드까지 생성할 수 있도록 했다. 시청자가 이미 만들어진 드라마를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이야기 속에 개입하는 방식이다. 아마존도 2025년 이 회사에 투자했다. 이런 방식이 확산된다면 AI 드라마의 경쟁자는 기존 TV 드라마가 아니라 게임이나 숏폼, 사용자 제작 콘텐츠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AI가 앞으로 드라마 산업을 크게 바꿀 가능성은 충분하다. 제작비와 제작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지금까지 막대한 비용 때문에 만들기 어려웠던 장면을 구현하는 능력은 이미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드라마의 핵심은 결국 스토리텔링이 아닐 수 없다. 시청자가 결국 감동을 받는 것은 제작사의 제작비나 멋진 장면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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