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시절 ‘쇼통’ 용어 확산
지난 7월 13일, 미국 정치판에 엄청난 충격을 준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유세를 벌이던 도널드 트럼프 대선 후보가 피격당한 것이다. 당시 이 사건은 ‘대선판을 송두리째 흔들 것이다’라는 전망과 함께 전 세계의 뉴스로 타전됐다. 그런데 이 사건 당시 역사에 길이 남을 사진 한 장이 연출됐다. 바로 귀에서 흐르는 피가 얼굴을 타고 번지는 가운데 트럼프 후 보가 주먹을 불끈 쥔 채 ‘파이트(Fight)!’라며 연신 외친 것이다. 지지자들은 총탄에도 살아남은 트럼프의 모습에서 불사신의 이 미지를 연상했고, 그에 대한 강렬한 지지를 보냈다. 물론 이러한 그의 행동을 쇼맨십이라고 단정짓기는 힘들 수도 있지만, 과거 에도 쇼맨십으로 단련된 트럼프이기에 할 수 있었던 행동이다. 과연 정치인들에게 쇼맨십이란 무엇이며, 과거의 정치적 무대 에서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
■ 정치공학적 계산과 미디어 정치
트럼프의 쇼맨십은 그가 정치에 진출한 초기와 대통령 시절에 극대화되었다는 지적이 있다. 2020년 미국 방송국인 CNN은 과거 대통령 후보 시절 이런 보도를 한 적이 있다. “대통령은 (방송국 PD처럼) 스스로를 반항적, 탈기득권적, 기본 예절을 짓밟는 독특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정치적 쇼맨십으로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CNN의 진단은 맞았지만, ‘역효과’라는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대중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정치 무대에서의 쇼맨십은 상당수 효과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떤이들이 보기에는 정말로 혐오스러운 모습이지만, 또 어떤이들에게는 더 할 수 없이 애 국심이 넘치고 국민에게 충성스러운 모습이라는 이야기다.
이번 총격 사건에서 보여준 트럼프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얼굴에 피가 흐르는 상황에서도 경호원들 사이로 얼굴을 내민 그는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트’를 외쳤다. 누군가는 “정말 대단한 쇼맨십이다”라고 평가하지만, 그의 지지자들에게는 엄청난 환호를 불러일으키는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일부에서는 ‘이번 대선은 그 장면 하나로 트럼프의 승리는 결정되었다’라고 말하곤 했다. 물론 지금으로는 이 예상이 맞아떨어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분명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정치적 쇼맨십이 발달한 나라이며, 특히 이것이 대중들에게 훨씬 더 잘 먹힌다고 볼 수 있다. 1980년 제49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레이건 대통령 후보는 이러한 쇼맨십의 덕을 톡톡히 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는 할리우드 영화배우 출신이라는 점에서 더욱 연기에 익숙한 사람이기도 했다. 당시 그는 TV 토론회에 출연해 아낌없는 연기실력을 발휘했다. 목소리와 표정, 손짓 등 전체적인 모습에서 흠잡기 힘든 모습이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반면 경쟁자였던 카터는 이에 훨씬 못미치는 모습으로 늘 수세에 몰린 듯한 모습이었다. 레이건은 이후 선거 과정에서도 계속해서 이러한 쇼맨십을 적극적으로 발휘해 지지를 호소했고 결국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이러한 쇼맨십은 매우 즉흥적이며, 한 개인의 성격과 관련되어 있다고 해석될 수 있지만, 좀 더 본질적으로는 정치공학적으로 작동하는 선거판과 미디어에 의한 정치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즉, 지지자의 표를 끌어오는 철저한 계산과 후보자의 모습이 미디어를 통해서 전국적으로 반영되는 과정에서 쇼맨십이 비로소 강한 힘을 가지게 된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정치분석가들은 이러한 쇼맨십을 ‘알파독(Alpha Dog)’이라는 것에 비유하기도 한다. 알파독은 적진을 망보는 무리 중에서 상황을 매우 능수능란하게 통제하는 우두머리를 말한다. 이들은 뛰어난 능력이 있지만, 승리를 위해서는 그 어떤 방법도 마다하지 않는 비열함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문재인 대통령 시절 ‘쇼통’ 용어 확산
철저하게 계산된 쇼맨십을 연출해 내는데 일가견이 있는 곳은 바로 미국의 정치컨설팅 업체 ‘소여밀러 그룹’이었다.
이들은 저널리스트로부터 과도한 쇼맨십을 연출에 대중을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했으며, 공정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여밀러의 전략이 곳곳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1979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시장 선거에서 소여밀러 그룹이 맡은 화이트 후보는 최초 26%나 상대 후보에게 뒤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당시 화이트 후보는 ‘서민 경제는 도외시한 오만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매우 강했다. 하지만 소여밀러 그룹은 이러한 이미지를 ‘도시와 사랑에 빠진 고 독한 남자’라는 컨셉으로 바꾸어 버렸고, 이에 걸맞은 복장, 행동 을 최적화해서 방송하기 시작했다. 결국 최종적으로 화이트 후보는 경쟁 후보를 꺾고 시장에 당선되는 영광을 누릴수 있었다. 한마디로 ‘멋진 쇼’가 방영된 것이고, 이를 본 대중들은 더할 수 없는 열광을 했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쇼맨십보다는 ‘쇼통’이 라는 말이 더욱 익숙하다. 이 말은 2018년 홍준표 현 대구시장이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한 말이다. 그는 당시 문재인 정부를 향해서 ‘쇼통 정권, 쇼는 참 잘한다’라고 비판하면서부터 대중들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에 이 말은 겉만 번지르르하게 쇼맨십을 잘하면서도, 실제로는 성과도 없고 의지도 없는 일에 대해서 자주 사용됐다. 무엇보다 이 용어는 당시 탁현민 청와대 의전 비서관의 탁월한 의전 실력을 조롱하고 비꼬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용어는 이후에도 꾸준하게 사용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5월 말, 대통령실 출입기자단과 ‘김치찌개 만찬’을 한 것을 두고도 사용되었다. 이후 윤 대통령은 여러 번 쇼통에 대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어떤 면에서 이 용어는 정치권력을 쥐지 못한 야당이 여당을 공격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 되기도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쇼맨십으로 불리든 쇼통으로 불리든, 이러한 모습은 ‘과연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이면서도 회의적인 의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정치의 본류는 국민의 행복이며, 선거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훌륭한 자질을 가진 사람의 선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전에 기획되고 계산된 모습으로 연출되는 쇼맨십은 실제 이런 것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면서도 후보자를 당선시키고 지지율을 유지하게 하는 매우 비정상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게 된다.
이는 본질에 어긋나는 일이며, 더욱이 국민에게는 더욱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쇼맨십이 사라지는 정치를 기대하기는 사실 무척 힘든 일이다. 여전히 대중들은 쇼맨십에 열광하고, 그 이미지에 빠져 지지자를 고집하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하는 정치가 거꾸로 국민을 불행하게 하는 비극이 되어갈 뿐이다. 이를 위해서는 좀 더 현명하고 깨어있는 국민의 변화를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