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명상(瞑想)을 통한 행복의 길 찾기! (고통, 번뇌, 무기에서 벗어나는 길)
[칼럼]명상(瞑想)을 통한 행복의 길 찾기! (고통, 번뇌, 무기에서 벗어나는 길)
  • 정하연
  • 승인 2020.08.19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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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달 박사

명상(瞑想)을 통한 행복의 길 찾기!
(고통, 번뇌, 무기에서 벗어나는 길)

 

김태달 박사 (사진= 시사뉴스매거진)
김태달 박사 (사진= 시사뉴스매거진)

 

진정한 행복은 무엇이며, 행복한 길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 해답을 명상수행법을 통해 찾고자 한다.
명상(冥想/瞑想)이란, 고요히 눈을 감고 깊이 생각함. 또는 생각(想)을 잠재운다(冥)는 의미이다. 주관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으로 몰입해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자아성찰(自我省察) 방법이다.
수행(修行)이란, 우리의 정신세계는 번뇌(煩惱)와 무기(無記)로 구성되어 있다. 즉, 번뇌와 무기로 인하여 우리의 청정무구(淸淨無咎)한 깨끗한 성품인 불성(佛性)이 가려져 있는데, 수행이란, 한마디로 번뇌와 무기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를 불교에서는 불성을 봄으로써 부처가 되는 것을 말한다. 이를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고 한다. 어떻게 해야 번뇌와 무기를 제거할 수 있을까,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정신 나간 사람들의 현실성 없는 이야기는 아닐까? 그리고 번뇌와 무기를 제거하여 불성을 보면 무엇이 좋을까, 이런 등등의 의문이 생길 것이다.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수행(修行) 방법(方法)을 알아야 한다.
행복의 길을 찾아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으나, 그중 수행자가 경험하고 있는 명상을 통한 방법. 즉, 행복의 지름길로 가는 방법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수행의 길. 즉, 도(道)는 어떻게 닦는 것(修道)일까? 또 수행 시기와 수행처는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 즉, 걷고, 머물고, 앉아있거나 누워있을 때, 말하고, 침묵하고, 움직이거나 가만히 있을 때, 일상생활의 모든 순간순간 현재 위치하고 있는 그 자리에서 일어난다. 개인적으로는 신도림역 사랑의복지회 무료급식소에서 노인들의 잔 밥통을 설거지하면서 느끼곤 한다. 일상생활 모든 것이 선(禪)이 아닌 것이 없다, 생활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선의 길이라고 깨달아 본다. 당신은 평상시에도 당신의 마음에 공정한 관찰자를 모시고 사는가? 즉, 양심이 무엇인지를 자각하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은 지금 사랑받을 자격을 가지고, 사랑받기를 요구하고 있는가? 고통, 번뇌, 무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행복이라면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지를 알고 그 고통을 멀리한다면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첫째. 행복의 길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고통[苦痛]에 대해 알아보자.
불교에서는 고통의 종류를 2고, 3고, 4고, 8고로 구분해서 설명한다. 2 고는 내면으로부터의 고통과 외부로부터 오는 고통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사건들을 살펴보면 외부적 인연으로 인해 겪는 고통도 있지만 자기 스스로가 만드는 내면적인 고통도 있다.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이 바로 2 고이다.
3 고는 고고(苦苦), 괴고(壞苦), 행고(行苦)로 구분한다. 고고는 통증·갈증 등과 같이 몸으로 느끼는 감각적인 괴로움이고, 괴고는 애착하는 대상이 파괴되어 감으로써 받는 괴로움이다. 행고는 불안하고 안정되지 않은 마음 상태에서 일어나는 괴로움이다.
4 고는 생로병사의 고통이고, 이 생로병사와 함께 애별이고, 구불득고, 원증회고, 오음성고 4가지를 더해서 8 고라고 한다. 애별리고(愛別離苦)는 사랑하는 존재와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하는 고통이다. 상대의 사랑이 식었거나, 사별하거나, 전쟁 등의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사랑하는 애인, 가족과 헤어지는 고통을 말한다. 구불득고(求不得苦)는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할 때 생기는 고통으로 자격증을 딴 학생이 취업하고 싶은데 취직을 하지 못할 때 느끼는 고통도 구불득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원증회고(怨憎懷古)는 원수 같은 사람을 피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는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고통이다. 원수 같은 상사, 짜증 나는 선생님, 나를 싫어하는 친구,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사람이나 상황을 우리는 삶에서 많이 겪게 되고 이로 인해 괴로워 한다.
오음성고(五陰盛苦)는 존재의 구성요소인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자체가 고통이라는 뜻이다. 색수상행식 그 자체가 이미 괴로움이라는 것이다. 조건에 의지해 생성된 존재는 자연스럽게 행고를 가지게 되고, 이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괴고와 고고가 이어지지 않겠는가? 이렇게 2고, 3 고, 4 고, 8 고가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범주의 요소 즉, 오음[五陰]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근본으로 일어나기에 오음성고(五陰盛苦)는 고통의 종합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을 바라지만 대부분 시간을 고통 속에서 보내고 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남들과 싸우고 해치며 온갖 악행을 저지르기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이다.
둘째. 행복의 길을 막는 번뇌[煩惱]에 대해 알아보자. 
만 가지 차별인식의 문제다. 이만 가지 걱정 팔만사천 번뇌가 알고 보면 나(我)라는 하나의 자그마한 개체에서 억겁으로 일어난다. 자기와 견해가 다르고 자기주장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천시하거나, 비하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는 일이다. 남을 긍정적으로 대하는 사람을 대인이라 하고. 남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사람은 소인배라 한다. 감정에 얽매여 울분하지 말라. 알고 보면 모두가 환(幻) 같고, 꿈(夢)같고, 물거품 같다. 생각, 번뇌, 망상, 의식은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다. 모든 것은 번갯불처럼 지나갈 뿐이다. 과거 '비바시불'로부터 '석가모니불'에 이르기까지의 일곱 명의 부처님은 불교의 진리에 대해 공통으로 말씀을 하셨는데, 이를 칠불통게(七佛通偈)라고 한다. 이분들의 공통적인 가르침이 무엇일까?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자정기의(自淨其意), 시제불교(是諸佛敎)이다. 
제악막작(諸惡莫作)이란, 어떠한 악도 행하여서는 안 되고, 중선봉행(衆善奉行)이란, 선(善)은 아무리 작아도 받들어 행하여야 하며,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착한 일이 무엇이고, 그 착한 일은 어디에서 만들어져서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를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잊어버리고 평상시에 경쟁만 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를 항상 살펴보는 여유를 가져보라는 것이다. 그것이 깨달음이요, 깨우침이다. 그 깨우침을 위해 행복의 길과 시간을 잠시 찾아보라는 것이다. 자정기의(自淨其意)란,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여, 상구보리(上求菩提) 즉,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하화중생(下化衆生) 즉, 아래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하심(下心) 즉,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을 갖도록 하자는 것이 시제불교(是諸佛敎) 즉,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라는 뜻이다. 바로 이런 생활이 자리이타(自利利他)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감히 언행을 일치시키며 생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자리이타(自利利他)는 대승불교에서 수행의 이상을 나타낸 말로써, 자익익타(自益益他)·자리이인(自利利人)·자행화타(自行化他)라고도 한다. 자리(自利)란, 자신을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노력하고 정진하여 수도(修道)의 공덕(功德)을 쌓아 그로부터 생기는 복락(福樂)과 지혜 등 과덕(果德)의 이익을 자기 자신만이 향수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에 비교해서 이타(利他)란, 다른 이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하는 것을 뜻하며 자신의 이익뿐만 아니라 모든 중생의 구제를 위해 닦는 공덕을 말한다. 이 2가지를 합하여 이리(二利)라고 한다. 
번뇌(煩惱)는 근본 번뇌를 말한다. 모든 번뇌가 이로 말미암아 일어나므로 근본번뇌라 한다. 이는 인간의 심성을 가장 악하게 하는 심소(心所)이다. 번뇌를 다스리는 수행의 방법에는 기도, 관법(觀法), 념념상속법(念念相續法), 의심법(疑心法) 등 4가지가 있다. 기도는 그 자체로 수행방법은 아니다. 단지 지혜의 상징인 부처님의 거룩한 상호 앞에 머리 숙여 절함으로써 자신의 어리석음을 절감하여 수행의 길로 접어들도록 유도하는 조도(助道) 역할을 하는 것뿐이다. 실제의 수행 방법은 크게 관법(觀法), 념념상속법(念念相續法), 의심법(疑心琺) 3가지가 있다. 
① 관법(觀法) 
관법은 수행의 길로 처음 들어와 속세의 때가 많이 묻어 있는 사람에게 주로 시킨다. 관법은 어떤 한가지 대상을 생각함으로써 무기에 빠지지 않고, 다른 번뇌가 일어날 틈을 주지 않는 공부 방법을 말한다. 관법은 어떤 한가지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관법을 여러 가지로 구분하는데 대표적인 3가지를 소개한다. 

첫 번째, 백골관(白骨觀) 즉, 부정관 수행이다. 
이것은 주로 탐욕심이 많은 사람에게 시키는 공부 방법이다. 사람이 죽어서 살이 검어지고 고름이 생기며 살이 썩어들어가 벌레가 꼬이며 나중에는 백골만 남는 것을 차례로 관(觀)하게 한다. 이렇게 백골만을 관(觀)하게 함으로써 욕심을 없애고 무기에 빠지지 않고 다른 번뇌가 일어날 틈을 안 주는 방법이다. 

두 번째, 자비관(慈悲觀) 수행이다. 
이것은 주로 화를 잘 내는 사람에게 시키는 공부방법이다. 지장경에 나오는 지옥의 참담한 모습을 항상 생각하게 함으로써 성내는 마음을 없애고 무기에 빠지지 않고 다른 번뇌가 일어날 틈을 안 주는 방법이다. 

세 번째 수식관(數息觀), 즉 호흡명상 방법이다. 
이것은 주로 어리석은 사람에게 많이 시키는 것인데 들어오는 숨과 나가는 숨을 관찰하는 공부방법이다. 또는 호흡에 맞추어 1부터 시작하여 100까지를 세게 하고 다음에는 거꾸로 100부터 1까지 다음에는 홀수만 세게 하고 다음에는 짝수만 세게 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하여 어리석음을 없애고 무기에 빠지지 않고 다른 번뇌가 일어날 틈을 안 주는 방법이다.
 
② 념념상속법(念念相續法) 
이 방법은 공부가 관법(觀法)의 수준을 넘어선 수행인에게 주로 시키게 된다. 념념상속법(念念相續法)은 어떤 한가지 번뇌를 생각 생각 이어지게 함으로써 무기에 빠지지 않고 다른 번뇌가 일어날 틈을 안 주는 공부방법이다. 이 방법으로 우리는 추번뇌를 없앨 수가 있으며 이 방법을 분류하면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염불법(念佛法) 수행이다. 
부처님의 명호들,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지장보살 등, 한 분을 선택, 생각을 이어감으로써 무기에 빠지지 않고, 다른 번뇌가 일어날 틈을 안 주는 방법이다. 

두 번째. 주력법(呪力法) 수행이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진언들, 예를 들면 옴마니 반메훔, 옴 치림, 옴 살바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신묘장구 대다라니 등 이들 중에서 하나만을 선택하여 그것만을 생각하면서 이어감으로써 무기에 빠지지 않고 다른 번뇌가 일어날 틈을 안 주는 방법이다.
 ③ 의심법(疑心法): 화두법(話頭法) 즉, 간화선 수행이다.
이 방법은 최후에 공부를 마무리할 때 즉, 세 번뇌를 없앨 때 쓰는 방법으로서, 이때는 스승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스승이 제자를 보니 공부가 거의 끝나갈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면, 이때 스승이 제자에게 격외도리(格外道理)를 거량하여 의심을 돈발(頓發) 시켜 준다. 이렇게 돈발(頓發)된 의심 때문에 무기에 빠지지 않고 다른 번뇌가 일어날 틈을 주지 않는 방법이다. 여기서 스승이 제자에게 의심을 돈발시켜 주기 위해 거량한 격외도리(格外道理)를 화두(話頭)라고 한다. 
일단 스승이 제자에게 화두(話頭)를 던져 의심이 돈발(頓發)하게 되면 제자는 오래지 않아 견성(見性)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병아리가 부화될 때 어미가 껍질을 한번 쪼아 주어 병아리가 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 비유하여‘졸탁치기’라고 한다. 예를 들면, 선가(禪家)의 유명한 화두 중에 무자(無字) 화두가 있다. 어느 스님이 조주 스님에게 물었다.“스님!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조주 스님이 대답하기를“무(無)”라고 했다. 여기에서 질문한 스님은 의심이 돈발(頓發)하게 된다. 
화두에서, 화(話)는,‘말’이란 뜻이며, 두(頭)는 어조사로서 뜻은 없다. 그래서 간화란, 말 그대로 이야기(話)를 지켜본다(看)는 뜻이다. 화두는 참선 수행자에게 과제로 주어지는 것으로, 선사가 깨닫게 된 기이한 인연인 기연(奇緣)을 말한다. 깨달음은 자득해야 한다. 물을 마셔본 자만이 그 물의 차고 더움을 스스로 알 수 있다. 경지에 이른 이는 스승과의 일대일 문답을 통해서 자기의 깨달음이 불조의 깨달음과 계합하는 지를 점검받게 된다. 그래서, 활구 참선인지, 사구 참선인지가 중요하지, 장소는 문제 되지 않는다.
'활구(活句)’란, 살아 있는 언어 (언구, 문구)이고,‘사구(死句)’는, 죽은 언어라는 뜻이다. 즉‘활구’란, 생명력이 있는 말, 의미 있는 말, 알맹이가 있는 말이고,‘사구’란, 생명력이 없는 언어 (문구), 의미가 없는 말, 알맹이가 없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활구는‘참구 할 만한 가치가 있는 말’이고, 사구는‘참구 할 만한 가치가 없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화두의심법 방법에는 매우 중요한 몇 가지가 요구된다.
1) 스승(선각자, 명상전문지도사)의 역할이 거의 절대적이다. 
2) 의심(疑心)이 돈발(頓發)되어야 한다. 즉 옛날 화두(話頭)를 떡 주듯이 그냥 주어서는 의심이 돈발되지 않는다. 화두는 일회용이다. 남이 한번 사용한 화두는 향기가 없다. 만약 옛날 화두를 주려면 그와 비슷한 기연(奇緣)을 만들어 의심을 돈발 시켜 주어야 한다. 
3) 돈발된 의심을 이어갈 삼매(三昧)의 힘이 있어야 한다.  삼매(三昧)의 힘은 화두 수행 전에 먼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위의 3가지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화두 의심법으로 수행하게 되면 수행의 진전이 거의 없어 공부가 매우 어렵게 된다. 수행 방법에는 관법(觀法), 념념상속법(念念相續法), 화두의심법(話頭疑心法) 3가지 수행방법이 있다고 했는데, 3가지 수행 방법 모두 하나의 대상에 생각을 집중함으로써 무기에 빠지지 않고 다른 번뇌가 일어날 틈을 주지 않는 것이라는 데 공통점이 있다.

셋째. 행복의 길을 막는 무기(無記)에 대해 알아보자.
육조단경에서 나오는 말로, 안으로 미혹하면 무기공에 떨어지고, 밖으로 미혹하면 상에 집착한다. 는 말이 있다. 선가에서는 참선 수행 시 무기공(無記空) 을 경계하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또한 경전에도 망상과 혼침으로 마음을 표현한다. 과연 무기란 무엇이며 중생의 정신세계를 이루는 나머지 하나인 번뇌는 무엇일까? 무기란. 흔히 불교에서 수많은 번뇌만을 다루고 무기는 수행 중의 경계할 상태로 주의만 시킬 정도로 많이 이야기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다. 쉽게 무기력한 상태를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무기는 자신이 무기에 빠져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무기인 줄을 잘 모른다. 물론 번뇌도 수행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번뇌에 빠져 있는지 모르지만, 무기는 바로 생각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더욱 자각하기 힘든 것이다. 무기는 생각이  없는 깊은 잠이라든가, 기절한 상태라든가, 때때로 생각이 끊어져 멍한 상태 등을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눈에 보이는 상태뿐만 아니라 무기는 모든 곳에 있다. 생각과 생각 사이에는 반드시 짧지만, 무기를 거쳐 다음 생각으로 나간다. 아침의 몽롱한 상태에서는 수시로 꿈과 무기를 오락가락한다. 또한 평상시 게으르고 생각하기 싫어하거나 잡다한 생각만을 일으키는 사람은 항상 무기에 덮여 있는 생활을 한다.  
무기(無記)는 편안하고 밝다. 무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이므로 우선 편안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게으름을 부리며 무기(無記)를 조장하기가 쉬운 것이다. 수행 중의 무기공은 절대 경계해야 한다. 무기는 생각에 힘이 없는 중생뿐만 아니라 수행자에게 더욱더 깊은 본질적 모습으로 찾아온다. 수행자는 삼매의 힘이 있음으로 하나의 방편에 몰두하게 되지만 그 방편을 놓치거나 혹은 처음부터 방편이 없는 수행을 한다면 대번 무기공으로 빠진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무기(無記)의 밝고 편안한 상태와 또한 순식간에 시간이 건너뛴다는 속성 때문에 무기(無記)를 삼매로 착각하게 된다. 주의한다면 무기에 빠지기 전에 자신의 수행에 방편이 사라지는 것과 수행을 망각하고 편안함에 마음을 맡기는 순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귀신놀음에 한 번 빠졌더라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말고 알아차림을 통해 집중하기 바란다.
정신적 장애로 인해 환상을 보거나 아니면 깊게 집중이 된 상태에서 알아차림이 약해서 나타난 허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집중상태에서는 예지능력과 초능력도 가질 수 있다. 무술이나 최면 같은 것이 그 좋은 예다. 그렇다면 그런 환상이나 허상은 어떻게 하여 생겨나는 것일까. 수행할 때는 기본적으로 노력과 알아차림과 집중이라는 세 가지가 작용을 해야 한다. 그런데 집중이 깊어지면 고요함도 커지는데, 이때 알아차림도 함께 커지면 더 좋은 수행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사마디 즉, 삼매(三昧)만 커지고 수행의 균형을 잃게 된다. 이때 수행자는 졸거나 아니면 어떤 형상을 만들어서 환상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산신령도 나타나고 귀신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마디만 커진 상태에서는 고요함은 있으나 알아차리는 힘이 약해진 탓에 상상력이 작용한다. 평소에 생각했던 것들이 투사되어 실제로 나타난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오온[五蘊] 즉, 인간 또는 자아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범주의 요소인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중에서 상(想)의 기능으로 잠재의식 속에 기억되어 있던 정보가 상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헛것이 보이는데, 이때 보이는 것은 자신의 마음의 작용인 상이 역할을 하는 것이며, 때에 따라서는 혼자 대화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자신이 자신과 하는 대화이다. 그래서 수행은 알아차림과 집중과 노력의 조화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현상이 생기면 명상전문지도사나 선지식의 지도를 통해 알아차림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현재의 마음으로 돌아와서 새로운 마음을 내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알아차림을 강화하는 방법이고 행(行)이며 노력이다. 이를 위한 방법의 하나가 있다면,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를 체득할 수 있는 위파사나 (Vipassanā, विपश्यना, 觀, Vipaśyanā) 명상수행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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