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RT명상(瞑想)을 통한 심신치유(心身治癒)
SMART명상(瞑想)을 통한 심신치유(心身治癒)
  • 시사뉴스매거진
  • 승인 2021.09.13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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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전문지도사 김태달(金泰達) 박사

SMART란 심신(心身)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명상방법 중에 하나다. SMART에서, S는 Scientific(과학적인), M은 Mindfulness(마음챙김), A는 Acceptance(수용), R은 Resilience(탄력성), T는 Tranquility(평온)를 약어로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SMART의 의미는 실생활에서 상대방을 수용하고, 탄력성을 유지하는 과학적인 마음챙김을 통해 늘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SMART가 쉬운 것일까? 그렇지 않아서 늘 명상을 통해 수행정진 하는 것이다. 

 

명상전문지도사 김태달(金泰達) 박사
명상전문지도사 김태달(金泰達) 박사

 

 사람의 힘을 추가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 즉,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근본을 무시하고, 인간들은 그동안 자원 개발을 명목으로 지구에서 생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생물들의 고유 영역인 경계를 무시하며, 돈에 눈이 먼 현대인들이 그들 생명체의 영역을 침범해서 그들만의 영역에서 스스로 지키고 방어해오던 세균들까지 경계를 허물면서 인간이 자초한 세균 감염 즉 인자인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세계적인 유행병 즉, 팬대믹(pandemic)현상을 초래하였고, 지금은 서로가 다른 나라가 발원지라고 핑계를 대며,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 우리 인류는 위기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온 인류에게 지금 당장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이러스로 인해 확산할 변이바이러스와 그 후유증은 또 얼마나 심각할까? 인류는 지금 고민해야 할 상태에 놓여있다. 심신이 황폐해지고 일상생활에서 소통도 단절되고 비대면으로 대화를 하게 된 현실. 이제는 황폐해가는 신체적, 심리적인 치유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뭘까? 바로 그것은 SMART 명상(瞑想)을 통한 심신(心身) 치유가 한 예가 될 것이라고 제언한다. 한가지 예를 들자. 일반인들은 지금 당장 코로나에 감염될까 걱정을 하고, 백신 주사를 맞을 때 후유증은 없을까? 두려워하고 또 코로나에 걸려서 사망하지나 않을까? 이웃과 만남도 걱정이고, 또 치료하는 전문가들은 근무 조건과 방역과 치료에 지쳐서 심신이 질식할 상태라고 아우성들이다. 그럼. 이러한 문제점을 어떠한 방법으로 해결할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단계에 놓여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심신의 괴로움에 대해 위정자들은 전문가의 의견에 대해 귀담아듣지 않고, 모른 척하고 있거나, 대안을 수립하는데 매우 인색한데 큰 문제점이 있다. 해결방안의 한 예로 명상으로 심신(心身) 치유가 가능하다는 논문이 지금도 미국과 유럽 선진국을 통해 수없이 쏟아지고 있음에도 명상이 특정 종교행사 정도로 인식하고 있음에 사회적인 큰 의식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그럼. 명상(瞑想)이란 무엇인가? 순수하게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또 알아차려서 심신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명상(瞑想)에 대한 한자의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면, 어두운 지붕(宀), 아래에서 다리를 벌리고(六), 아기를 낳고 있는 어미의 자궁(日)을 바라보는 형상이 바로 명(瞑)자인데, 이때 어미가 자식을 낳을 때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고통 속에서도 오직 자식이 무탈하게 순산하기만을 기도하는 순수한 마음뿐일 것이다. 그리고 서 있는 나무(木)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目) 마음(心)이 상(想)이다. 명상은 인도 힌두교의 요가에서 시작되었으며, 육체·정신·영혼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 매우 정교한 과정을 규정해 놓았다. 요가가 불교에 전수되면서 몸 치유보다는 마음 치유를 목적으로 집중명상을 통해 선불교의 근원이 되었다. 여러 종교에서 효과적인 음절·단어·본문(불교에서는 진언 또는 다라니)을 소리내거나 마음속으로 반복함으로써 영적인 정화를 얻고자 한다. 고 기록되어 있다. 물론 마음 치유를 위한 체계적인 방법은 불교의 사마타와 위파사나 그리고 간화선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심신치유(心身治癒)는 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심신(心身)은 몸과 마음을 의미하고, 치유(治癒)는 치료하여 병을 고치거나, 치료를 받고 병이 나음을 의미한다. 명상은 지친 정신이나 육체를 회복하고 일상생활을 풍요롭게 해주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의학 및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명상요법은 치료에 임하기 전에 맥박과 호흡을 조절하는 데 효과가 있으며, 편두통·고혈압·혈우병·스트레스 등 정신병 증상을 억제하고 완화하는 데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고 있다. 심신치유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라고 하는데, 그럼 마음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불교에서 바라보는 마음은 과학적 근거를 앞세우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마음보다는 매우 포괄적이다. 한말(韓末) 경허선사(鏡虛禪師)는 마음은 둥글다고 했다. 선사의 참선곡(參禪曲)을 듣고 읊노라면 너무도 심오함에 방하착(放下着), 회광반조 조고각하(廻光返照/照顧脚下)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짐승은 죽음에 이르면 순해지고, 사람은 죽음이 가까워지게 되면 순수하고 착해진다고 한다. “홀연히 생각하니 도시몽중(都是夢中)이로다. 천만고(千萬古) 영웅호걸 북망산 무덤이요. 부귀문장(富貴文章) 쓸데없다. 황천객을 면할쏘냐. 오호라, 나의 몸이 풀 끝의 이슬이요, 바람 속의 등불이라.” 

 

 대념처경 주석서에는 마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수록하고 있다, 마음은 인식할 수 있는 마음이 있고, 인식할 수 없는 마음이 있다. 인식할 수 있는 마음을 '인식 과정' 이라고 하고, 인식할 수 없는 마음을 '길을 벗어남' 이라고 했다. 인식하는 과정을 벗어난 마음이라는 뜻이다. 마음이 보이지 않고 무아(無我)라고 해서 제멋대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마음도 일정한 과정을 거쳐서 일어나고 사라진다. 그래서 마음은 마음의 길이 있고, 마음과 함께 있는 몸은 몸의 길이 있다. 

 

 신라 시대 원효대사(617~686년)의 해골 물은 너무나도 유명하지 않은가? 원효의 일체 유심조(一切唯心造)는 불교를 대중화시켜 누구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를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우리나라 대표적 고승이다. 원효대사가 의상대사와 함께 당나라 유학 중 해골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일화는 유명하다. 원효대사는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 7살 아래였던 의상대사와 당나라로 향했다. 고구려 국경을 넘던 중 병졸들에게 잡혀 다시 신라로 돌아왔다. 그러나 타오르는 구도심을 잠재울 수 없었던 원효대사는 다시 의상대사와 구법의 길을 떠났는데 두 스님은 한기를 피해 무덤 사이에서 잠을 청했다. 한밤중 원효대사가 갈증을 느낀 나머지 손으로 잠자리 주변을 뒤적이다 바가지 같은 것에 고인 물을 한숨에 들이마셨다. 다음날 잠에서 깬 스님은 간밤에 마셨던 바가지를 찾으려 주위를 살폈는데 바가지는 보이지 않고 해골만 뒹굴고 있었다. 바가지라고 생각했던 것은 해골이었고, 마셨던 물은 해골 안에 고여 있던 썩은 물이었다. 스님은 속이 메스꺼워 토하는 순간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마실 때는 그렇게 달던 물맛이 해골에 고인 썩은 빗물임을 알게 되자 온갖 추한 생각과 함께 구역질이 일어나다니!”. 원효대사는 깨달음을 얻고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심생즉 종종법생(心生則 種種法生) 심멸즉 감분불이(心滅則 龕墳不二) 삼계유심 만법유식(三界唯心 萬法唯識) 심외무법 호용별구(心外無法 胡用別求) 해석하면, 마음이 생하는 까닭에 여러 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멸하면 감(龕)과 분(墳)이 다르지 않네. 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모든 현상이 또한 식(識)에 기초한다. 마음밖에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을 따로 구하랴!’

 불심(佛心)을 나타내는 화엄경(華嚴經)의 사구게(四句偈)는 또 어떤가? 내용을 알아본다.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약인욕료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 

 "만약 어떤 사람이,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알려면, 마땅히 법계의 성품 모든 것이 마음으로 된 줄을 알아야 한다." 고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알아야지 마음 챙김을 통해 마음을 가다듬고, 즉, 일상에서의 삼독심[貪瞋癡] 즉, 탐욕스러운 마음, 화를 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즉, 무명에서 벗어나는 마음에서 탈퇴함으로써 인간이 영원한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필자는 평상시에 몸에 대한 투자[헬스, 수영 등]도 중요하지만, 마음공부를 위한 투자[명상 등]에 인색하지 말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마음이 무엇이고, 어떻게 마음을 먹게 되는지, 그 과정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마음의 종류와 마음가짐의 과정, 그리고 인식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마음의 종류는 크게 2가지로 나눈다. 1) 인식하는 과정의 마음과 2) 바왕가[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때, 즉 존재 시 지속하는 마음, 즉, 존재 지속심]로 대별한다. 인식하는 과정의 마음은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즉, 눈, 귀, 코, 입, 몸에 의해서 대상[물질]을 인식하게 되는데, 색온, 수온, 상온, 행온, 식온이라는 5온(五蘊)에 의해서 결국 고통을 유발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  5온성고(五蘊盛苦)라고 한다. 

 

 온(蘊)은 무더기 · 모임 · 집합 · 더미를 뜻한다. 5온은 인간을 구성하는 5가지 요소의 무더기이다. 5온은 5음(陰)이라고도 한다. ① 색온(色蘊)은 몸이라는 무더기, 몸의 감각 무더기이다. ② 수온(受蘊)은 괴로움이나 즐거움 등 느낌의 무더기이다. ③ 상온(想蘊)은 생각 · 관념의 무더기이다. ④ 행온(行蘊)은 의지 · 충동 · 의욕의 무더기이다. ⑤ 식온(識蘊)은 식별하고 판단하는 인식의 무더기이다. 

 

 바왕가는 인식과정을 벗어난 마음, 존재 지속심으로, 인간이 생명이 붙어 있으면 늘 흐르는 마음을 말한다. 인간이 죽으면 바왕가도 끊어진다. 

 

 마음가짐 즉, 인식 과정을 알아보겠다. 불교에서의 마음가짐의 정상적인 과정은 17단계로 구분한다. 17단계란 1) 과거의 무의식 2) 무의식의 동요 3) 무의식의 중단 4) 5 감각 기관의 문을 향함 6) 5갈래의 의식 6) 받아들임 7) 조사 8) 결정, 9~15) 생각- 촉진 16,17) 경험의 등록 단계로 전개된다.

 

 미얀마의 마하시 사야도(Mahasi Sayādaw) 는 인식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6개의 감각기관[眼耳鼻舌身意]을 통한 인식 과정(vīthicitta)은 바왕가 마음(bhavaṅgacitta)과는 종류가 다른 마음이다. 바왕가 마음은 대상들과 그리고 진행 과정에서 재탄생 의식과 흡사하다. 바왕가 마음은 업에 그 뿌리를 둔 재탄생 의식을 따르는 잠재의식의 흐름이다. 그것은 3가지 대상, 즉 업(kamma), 업의 표상(kamma-nimitta), 혹은 태어날 곳의 표상(gati-nimitta) 중의 하나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것은 현생의 대상과는 관련이 없다. 그것은 우리가 깊은 잠을 잘 때의 그러한 정신 상태다. 

하지만 우리가 보거나, 듣거나, 냄새 맡거나, 먹거나, 몸을 접촉하거나, 생각할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데, 정신적인 현상들에 있어, 이러한 변화를 육문(六門) 인식 과정이라고 한다. 

 

가령 눈에 보이는 형상은 눈이라는 감각 물질(rūpa) 위에 반영된 것이다. 이러한 물질들은 매번 17번의 생각하는 순간에만 지속하는 것으로, 그 보이는 대상들과 그 정신적 이미지들과 함께 끊임없이 새롭게 변한다. 한 그룹의 눈의 물질과 한 그룹의 보이는 대상 물질이 일제히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의 물질은 일어나는 순간에는 강력하지 않다. 따라서 바왕가 마음의 순간 동안에는 눈과 그 대상 사이에는 어떠한 접촉도 없다. 달리 말하면 눈에 보이는 대상이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그와 같이 반영 전에 사라지는 바왕가를 “지나간 바왕가(atītabhavaṅga)”라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바왕가 마음이 일어나서 반영이 나타난다. 하나의 결과로서 그 바왕가 마음은 중단된 것이다. 그 익숙한 대상에 대하여 바왕가 마음의 주의력은 약해지고, 그것은 시각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이것을 “바왕가의 동요(bhavaṅga-calana)”라고 한다. 그리고 나면, 다른 바왕가가 그 자리를 차지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미약하여 중단과 함께 바왕가의 흐름은 끊어진다. 마음은 눈이 본 그 시각 형태에 관하여 알고 싶어 한다. 이렇게 알려는 마음을 “전향하는 마음(āvajjana-citta)”이라 하며, 5 감각 기관(눈·귀·코·혀·몸)에 상응하는 5종류의 마음이 있다. 그 뒤를 따라 안식(眼識)이 일어나고, 안식이 소멸하면 시각 대상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집중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바왕가는 안식과 받아들이는 마음과 마찬가지로, 상카라(saṅkhāra) 즉, 행(行)으로부터 생긴 결과이다. 그것들을 “결과 마음(vipāka citta)”이라고 부른다. 2종류의 결과 마음이 있는데, 선한 상카라와 불선한 상카라에 따라, 선(善)하거나 불선(不善)한 결과 마음이다. 

반면, “전향하는 마음(āvajjana-citta)”은 도덕적으로 선하지도 불선하지도 않다. 그것은 결과 마음도 아니다. 그것은 어떠한 업의 효력도 없는 단순한 행위를 의미하는 “작용만 하는 마음”(kiriya-citta)이라고 하며, 그런 종류의 마음은 대개 아라한의 속성이다. 

마음이 시각 대상을 받아들인 후에는 “조사하는 마음(santīraṇa-citta)”이 그 질이 좋은지 나쁜지 등을 조사한다. 그리고 그것이 좋은 것이라는 등의 “결심(vuttho-citta)”이 따른다. 이것이 연속적으로 7번 번쩍이는 7번의 충동 순간을 뜻하는 자와나(javana-citta) 즉, 속행심(速行心)으로 인도한다. 

자와나는 대단히 빠르게 일어난다. 그것은 의식 과정의 다른 요소에는 없는 속도와 힘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탐욕(lobha)이나 탐욕 없음(alobha)과 같은 선하거나 불선할 수 있는 강력한 마음 요소들과 결합한다. 악한 마음이 그들의 대상을 향해 아주 빠르게 돌진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따라서 탐욕은 우리에게 원하는 대상에 빠르게 돌진하여 힘으로 장악하게 하는 경향이 있으며, 성냄에 의해 그 대상에 돌진하고 맹목적으로 파괴코자 하는 욕망이 우리 안에서 일어난다. 의심, 불안과 어리석음 역시, 그들 각자의 대상들과 빠르게 결합한다. 선한 마음 요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감각적인 욕망은 광적이고 충동적인 그러한 성질 때문에, 업 자와나(kammajavana)라고도 한다. 7번의 충동 순간 다음에 2개의 “등록하는 마음(tadārammaṇa-citta)” 순간이 따른다. 이 마음은 자와나의 대상과 관련이 있으며, 따라서 그 기능은 선행하는 마음의 남아 있는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의식의 진행과정에서 눈이라는 감관(cakkhu-pasāda)에 의존하는 안식(眼識)은 지나간 바왕가(atītabhavaṅga)와 함께 일어난다. 다른 식(識, viññāṇa)들은 다른 마음과 함께 일어나는 심장 토대(hadaya-vatthu) 물질에 의존한다. 

전향하는 마음(āvajjana-citta)부터 두 번째 등록하는 마음(tadārammaṇa-citta)까지 14개 마음(citta)은 오직 현재의 대상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이런 14개 마음들은 바왕가 마음과는 그 종류가 다른 인식하는 마음(vīthi citta, 인식과정)이다. 달리 말하면 그것들은 활동하는 마음들이다. 의식 진행과정의 끝을 표시하는 두 번째 등록하는 마음(tadārammaṇa-citta)의 소멸 이후에 정신적 생명은 마치 잠자는 것과 같이 잠재의식 상태(bhavaṅga)로 되돌아간다.

 

명상전문지도사 김태달(金泰達) 박사
명상전문지도사 김태달(金泰達) 박사

 

 의식의 인식 과정을 밝혀 주는 하나의 비유가 있다. 어떤 사람이 망고나무 아래에서 잠자고 있다고 하자. 망고 하나가 떨어져서 그는 깨어난다. 그 사람은 잠에서 깨어나 망고를 보고서 그 열매를 집어 들고 조사를 한다. 그것의 냄새를 맡고 그것이 익었음을 알고서 그것을 먹는다. 그러고 나서 그 맛을 생각해 보고서 다시 잠이 든다. 여기서 그 대상들로서 업(kamma)과 업의 표상(kamma-nimitta), 그리고 태어날 미래에 대한 표상(gati-nimitta)을 지니는 바왕가 상태는 잠을 자는 상태와 같은 것이다. 망고가 떨어져서 깨어나는 것은 바왕가 마음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깨어나서 회상하는 것은 전향하는 마음(āvajjana-citta)이다. 보이는 대상을 보는 것은 망고를 보는 것이다. 그 과일을 조사하는 것은 조사하는 마음(santīraṇa-citta)과 관련시킨 것이다. 그것이 익었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결정하는 마음(vuttho-citta)이다. 망고를 먹는 것을 자와나(javana, 速行)이며, 그 맛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은 등록하는 마음(tadārammaṇa-citta)이다. 바왕가 상태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다시 잠드는 것과 같다. 만약 보이는 대상이 여전히 약하다면 5번에서 9번까지 지나간 바왕가(atīta bhavaṅga) 가 일어난 후에만 비친다. 인식 과정은 자와나(javana)에 이르지 못하고, 결정하는 마음(vuttho-citta)이 두세 번 일어난 후에 소멸한다. 그렇게 결정(vuttho)에서 끝나는 인식 과정은 위파사나 수행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그 이유는 끊임없이 알아차림을 두는 수행자는 마음을 더럽히는 감각 대상들을 찾거나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상이 느리면, 전향하는 마음((āvajjana-citta)이 약해지고, 안식이 명확하지 않으며, 받아들임이 적절하지 않고, 조사하는 마음이 효과적이지 못하고, 결정하는 마음은 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두세 번 회상한 이후에 마음은 바왕가 상태로 되돌아간다. 그렇게 그 대상이 마음을 오염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명확하지 않게 되며, 수행자는 그 현상의 무상(無常: anicca), 고(苦: dukkha), 무아(無我: anatta)를 알게 된다. 거기에는 오직 봄(seeing)에 대한 순수한 앎만이 있으며 인식 과정은 완전히 번뇌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개략적으로 설명한 눈에 관한 정상적인 인식 과정은 귀와 코, 혀와 몸에 대하여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올바른 인식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음에 대한 이해와 법(法)에 대한 이해가 정확해야 한다. 명상 수행을 위한 사마타와 위파사나 수행을 통해 궁극적으로 성성적적(惺惺寂寂) 즉, 수행을 마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경계를 묘사하는 의미인데, 영리할 성(惺)자, 고요할 적(寂)자를 쓴다. 이는 마음이 평온한 멸진정(滅盡定) 상태에 도달해서 유여열반(有餘涅槃) 과정을 거쳐, 무여열반(無餘涅槃), 즉, 모든 고통과 번뇌가 끊기고 육신까지 사라진 후 얻어지는 평온의 경지에 도달함으로써 영원히 윤회의 사슬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깨달음의 길로 가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로, SMART명상은 현재, 유튜브(YOUTUBE)에서 61회 강의하고 있으며, YOUTUBE 검색방법은“김태달” 또는“SMART명상”을 입력하면 강의를 들을 수 있을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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