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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8박 이상 숙박하는 워케이션,
[Issue] 28박 이상 숙박하는 워케이션,
  • 홍미선 기자
  • 승인 2022.06.14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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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일의 형태가 온다

 

에어비앤비는 가장 대중화된 숙박업 예약 서비스이기도 하다. 과거 사람들이 숙박을 하게 되면 길게는 일주일이지만 대체로 2박 3일, 혹은 3박 4일이 주를 이루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28박이 넘어가는 장기 예약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회사의 휴가가 길어진 것은 아닐 텐데, 이러한 현상은 매우 이색적이었다. 알고 보니 이렇게 장기간 숙박을 하는 사람들은 현지에서 일과 휴식을 동시에 하는 사람이었다. 여기에서부터 유래된 말이 바로 ‘워케이션(workcation)’이다. 일(work)과 휴가(vacation)가 결합된 말이다. 원래 일이란 사무실이라는 고정된 장소에 사람이 모여서 하는 것이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이러한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다. 한마디로 일과 휴식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진정한 모빌리티의 완성
팬데믹 이전에 ‘디지털 노마드’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었었다. 디지털 기기의 사용이 활성화되면서 마치 유목민처럼 떠돌면서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의미했다. 대체로 이런 부류는 프리랜서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특히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살아가는 이런 디지털 노마드는 많은 직장인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한 달 살기’가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도를 하는 사람이 다 일하지 않는 무직자는 아니었다. 그들이 이렇게 장기간 원래의 거주지를 떠날 수 있었던 것 역시 디지털 기기의 발달로 인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디지털 노마드가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계기가 있었다. 바로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사태였다. 직장인들의 재택근무가 시작되면서 이제 사무실이라는 공간의 의미가 사라졌다. 그들은 집은 물론, 카페, PC방, 그리고 여행지에서 일을 했다. 

이러한 워케이션의 확산은 ‘진정한 모빌리티의 완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모빌리티는 ‘사회적 유동성 또는 이동성·기동성’을 뜻하는 말이다. 때로는 이런 이동을 편리하게 만드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장소에 구속되지 않는 것도 모빌리티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모빌리티의 구현은 사실 인류의 역사에서 큰 변화를 의미한다. 근대 자본주의가 형성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일은 반드시 ‘공장’이나 ‘사무실’에서만 해야 했다. 만약 이것이 되지 않을 때는 근처로 이사를 하면서 생활의 환경을 바꿔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워케이션은 일에 관한 이런 근본적인 구조 자체를 바꾸었다. 어쩌면 이것은 일에 관한 가장 본질적이고 거대한 혁신이나 변화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워케이션이 확산되면서 관련 업계의 대비책도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 부산의 한 호텔에서는 ‘해운대 한 달 살기, 워케이션 패키지’를 출시했다. 한 호텔에서 슈페리어 객실 한 달 이용료를 99만 원으로 책정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서핑 체험, 로컬 여행상품, 요트 이용 등에 대한 할인 서비스도 제공하게 된다. 어차피 일이야 혼자서 하는 것이지만, 이렇게 여행상품이 함께 결합되면 워케이션은 더욱 매력적인 경험이 될 수 있다. 

또 네이버의 계열사인 ‘라인 플러스’에서는 ‘국외에서의 원격근무’를 허용했다. 그간에 국내 원격근무만 허용되었지만, 이제는 괌, 베트남, 태국 등 자신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일할 수 있다. 심지어 회사에서는 현지에 불편함 없이 정착하라고 한 달에 17만 원 정도의 근무 지원금도 제공한다. 과거에는 직장인들이 이런 워케이션을 마음속으로만 원했지만, 이제는 아예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이러한 회사의 정책 변화는 직원들이 최대한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수도권 과밀화 해소에도 도움
IT업계에서 이러한 직원 지원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자, 아예 워케이션이 입사의 조건이 되는 경우도 많다. 기왕이면 전 세계 어디든 자신이 가고 싶은 곳에서 일하고자 하는 젊은 세대가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러한 변화는 일에만 몰두해서 살지 않고 ‘삶의 균형’을 찾으려는 트렌드와 맞물려 있다. 이제 젊은 세대는 더 이상 아버지 세대처럼 일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에 발맞춰 기업들은 ‘거점 오피스’라는 것을 만들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SK텔레콤, 롯데멤버스의 경우 호텔이나 속초, 부산 등에 오피스를 마련해 놓고 그곳에서 일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워케이션은 꼭 ‘일’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공부하는 학생들도 과거처럼 ‘학교’에 머물지 않고도 얼마든지 원격 수업을 할 수 있다. 심지어 팬데믹 기간에 해외에 유학갔던 학생들은 한국으로 돌아와 온라인으로 미국, 영국, 캐나다의 수업을 듣기도 했다. 지구의 양 끝에서 각각 학생과 학교가 존재하고 이 둘의 연결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물론, 국내 초중고의 경우 이로 인한 학습 불균형의 부작용이 초래되기는 했지만, 중요한 점은 이제 더 이상 ‘교실’이라는 공간이 학습의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실제 이탈리아에서는 ‘바캉스 교육’이라는 것을 시행해 왔다. 금요일에는 학교에 오지 않고 금요일과 주말까지 통틀어 여행을 가도록 지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이들은 여행하고,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살아있는 교육’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워케이션은 미래에 ‘수도권 과밀화 해소’를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제시될 수도 있다. 외국에서도 일을 할 수 있는 마당에, 지방에서 일하는 것은 더욱 쉬운 일이다. 따라서 이제는 굳이 서울과 경기도에만 살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또 과밀화와 그로 인한 교통 문제, 부동산 문제에 지친 사람들은 서울과 경기도를 벗어나고 싶은 간절한 욕구를 가지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워케이션이 더욱 활성화된다면 향후 수도권 과밀화의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여러 지자체에서는 이러한 수요를 잘 활용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워케이션을 위한 직장인 수요를 더욱 적극적으로 끌어 안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각종 편의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면 보다 많은 사람을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최근 젊은 세대들에게는 ‘5도 2촌’이라는 말도 유행하고 있다. 

일주일 중 5일은 도시에서 일하고 2일은 촌(시골)에서 여유로운 삶을 만끽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욕구가 확장되면 자연스럽게 워케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게 된다. 사실 인류가 특정한 공간에 붙박이처럼 오가며 일하는 문화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인류의 유목민 역사는 무려 600만 년에 이르지만, 특정한 곳에 정착해서 산 지는 고작 6,000년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에게는 ‘유목민 DNA’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인류 친화적인 워케이션이 사실은 인류를 괴롭힌 코로나19로 인해 촉진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다. 하지만 인간이 다시 유목의 시대, 디지털 노마드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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