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계속되는 부정선거 이야기
지난 10월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주최자는 민경욱 전 의원과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이다. 최근 정치적 이슈에 자주 등장하지 않던 그들이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내고 기자회견을 한 이유는 바로 ‘부정선거’ 때문이었다. 민 전 의원은 당시 이렇게 이야기했다.
“4.15 총선을 비롯해 문재인 정권에서 치러진 모든 선거가 부정선거였다는 사실에 목숨도 걸 수 있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여러 증거들을 열린 마음으로 다시 한번 들여다보신 후 신속히 수사에 착수할 것을 촉구한다.”
황 전 대표의 발언도 비슷한 맥락이다.
“지난 10일 국정원이 중앙선관위에 대한 합동 보안점검 결과를 발표한 결과 투표 조작과 개표 조작이 가능하며 사전투표용지를 대량으로 무단 인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부정선거를 막기 위해 사전투표 제도 폐지와 전자장비 방식이 아닌 수개표를 해야 하며, 선관위를 해체해야 한다.”
일부 극우 보수 유튜버 역시 이런 주장을 줄기차게 해왔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그 이유는 기자들 역시 대부분 그들의 주장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국민도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다. ‘설마 그런 것이 가능하겠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부 정치인들은 부정선거를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역시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그리고 이를 막지 못했다고 여권을 질타하는 여권 지지자들도 있을 정도다.
보수층에서만 이런 극단적인 주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진보 측에서도 ‘궁지에 몰린 윤석열 대통령이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라는 주장을 한다. 특히 과거 대통령 선거 당시 윤 대통령의 ‘선제타격론’이 이것의 근거가 되고 있다. 또 지지율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이를 만회하기 위해 ‘큰 것’ 하나를 터뜨려 지지층을 결집하고 중도층의 표심을 잡는다는 것이 음모론 주장자들의 논리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도 이런 일이 생기기는 무척 어렵다. 지금과 같은 한반도 상황에서 전쟁은 곧 서로 간의 공멸이다. 그리고 이는 단지 북한과 남한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로 미화된다. 아무리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거나, 선거 패배가 예상된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운명 전체를 걸고 도박을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만약 정말로 전쟁이 발생하게 되면 그 정권이 다시 권력을 잡기란 불가능이라고 할 수 있다. 도박을 걸기에는 너무 많은 후유증이 예상될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빠지게 되는 ‘음모의 음모의 음모’
사실 이런 음모론은 꽤 많은 영향을 미치며 특히 선거 직전에는 기승을 부리게 마련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공산화된다’라는 말이 상당히 퍼졌고, 이것이 과거 ‘빨갱이’에 대한 공포감을 극대화했다. 그래서 당시 ‘윤석열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는 건 막아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했다.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 믿고 있는 노년층이 적지 않다.
음모론은 꼭 정치분야에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당시에도 음모론이 판을 쳤다. ‘코로나 백신을 통해서 사람들을 조종하려고 한다’, ‘백신 안에 보이지 않는 물체가 들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공식적인 정부인사가 이를 부인한다고 해도 이를 믿는 사람들은 상당수였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음모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첫 번째는 지나치게 격화된 이념 대립 때문이다. 일부 지지자들은 합리적인 논리에 의해서 자신의 지지세력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기반한 맹종적 신념을 따르고 있다. 따라서 현실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일이 생기게 되면 이를 부인하기 위해서 음모론을 들고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선거에서 진 쪽은 어김없이 ‘부정선거’를 들고나온다는 점이다. 그들은 국민들이 자신들을 외면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으며,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진 것은 부정선거의 결과라고 믿게 된다. 심지어 그들은 음모론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것 자체를 음모라고 여긴다. 또한 이렇게 자신들의 주장을 음모론으로 몰아가는 것 자체도 음모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음모의 음모의 음모’가 이어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결국 그들은 ‘음모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된다.
이러한 음모론은 선진국 후진국을 가리지 않는다.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바이든 현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후보로 맞붙었고 결과적으로 트럼프가 패배했다. 하지만 당시 공화당원의 75%, 트럼프 지지자의 80%는 ‘트럼프가 승리를 도둑맞았다’고 생각했다. 이는 곧 부정선거로 인해서 부당하게 선거에서 졌다는 의미이다.
또한 음모론은 과도한 우려와 경계 때문에 생겨나기도 한다. 진보 측의 ‘윤석열 전쟁 유발설’이 그렇다. 진보진영은 지난 총선에서 180석으로 대승을 거뒀지만, 대통령 선거에서 권력을 빼앗겼다. 그리고 다시 권력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우려 속에서 ‘전쟁유발설’을 퍼뜨리게 된다. 코로나19 백신도 마찬가지다. 사실 백신이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다. 백신 자체가 소량의 바이러스를 미리 주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지나친 우려는 과대망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음모론이 현실적인 힘을 얻는 것은 정말로 과거에 그런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건국 초기에 부정선거가 있었으며, 또 일부러 북한의 도발을 유도한 사건도 있었다. 이렇게 현실적으로 ‘분명히 있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일어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음모론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정치환경은 구현되기 힘든 일일까? 어쩌면 이는 매우 요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음모론들은 우매한 대중을 뿌리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음모론이 사라진다는 것은 우매한 대중이 사라진, 최고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민주주의의 제도가 자리 잡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한국보다 민주주의가 앞서간 영국을 비롯한 유럽, 미국 등에서도 여전히 음모론이 판치고 있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당분간’ 이러한 음모론이 사라질 가능성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