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통도 행복이다-조영환 남화토건 전무이사
[칼럼] 고통도 행복이다-조영환 남화토건 전무이사
  • 시사뉴스매거진
  • 승인 2019.04.0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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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있다면 고통도 행복이다. 아픔 속에서 굳어진 사랑은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 두어도 좋다. 고통 속에서 과거의 달콤함을 음미할 수 있을 테니까. 

노인과의 이야기다.  날씨가 약간 무더운 데다 내 기분도 영 좋지 않았다. 저녁 무렵 나는 혼자 하천공원으로 나갔다.
 
 공원도 덥기는 마찬가지였다. 공원에서 그마나 바람이 잘 불고 시원한 곳은 물가 옆이었다.
그곳에는 긴 벤치가 하나 있는데 나는 거기에 앉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곧바로 그 벤치를 향해 내달렸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벤치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다. 팔십이 넘어 보이는 노인이었는데 머리는 백발에 피부는 쭈글쭈글했다.
노인은 벤치에 옆으로 누워서 쪽잠을 자고 있었다.
 
 노인이 잠들었다고 생각하고 조용히 의자의 다른 쪽 끝에 앉았다. 하지만 내가 앉자마자 노인은 눈을 뜨더니 말했다.
“오늘 날씨가 정말 덥네요.”

 나는 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서둘러 말했다. 
“주무시는 데 깨운 건가요?” 노인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아니오. 잠든 게 아니라 눈만 감고 이런저런 생각을 좀 하고 있었어요.”
 
 노인은 사람을 붙잡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듯했고 자기가 먼저 이야기 화제를 꺼냈다.
“날씨가 몹시 더우니 이렇게 일박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내일은 비가 올거야.”

 하지만 일기예보에서 내일 날씨가 맑을 거라고 한 것이 기억났다. 내가 일기예보에서 맑을 거라고 했다고 말하자 노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가 일기예보보다 정확해. 틀림없다니까. 여기가 바로 일기예보야.”
노인은 오른쪽 무릎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틀 동안 여기가 아팠으니 날씨가 분명 변화가 있을거야.”하고 말했다.
말투가 북한에서 살다가 탈북한 사람 같았다.
 
 순간 어머니가 생각났다. 어머니는 젊었을 때 팔을 다친 적이 있었는데 연세가 드셨을 때 비가 오는 전날에는 늘 팔이 아프다고 해서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고 나서야 나으셨다.
나는 곧바로 노인에게 물었다. “어르신, 예전에 무릎을 다치신 적이 있으세요? 아는 병원이 있는데, 오래되고 잘 낫지 않는 병을 잘 고쳐요. 한번 가보시는 게 어떠세요?”
 
 “고쳐서 뭐 하게?” 노인은 내키지 않는 듯했다.
 “아프면 견디기 힘들잖아요.”

 
 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안 아프면 적응이 안 돼. 가끔 아파야 그 사람 생각도 나고 좋아.”
노인은 자기가 말한 그 사람은 자기 아내로 작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자기를 두고 떠난 지 꼬박 일 년하고도 7개월 반이 되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무릎의 상처는 아내를 알게 된 날 생긴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때 나는 시골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었지. 아내도 선생님이었는데 다른 학교에서 가르쳤어.” 노인은 눈을 지그시 감고 말했다. 완전히 추억 속으로 빠져든 듯했다.
 “아내가 있던 학교에 시험 감독으로 가게 되었는데 길이 멀어 나는 자전거를 빌려서 타고 갔지. 그 학교 정문 앞에서 아내와 우연히 마주쳤는데 자전거 타는 게 서툴렀던 나는 곧장 아내 쪽으로 자전거를 몰게 되었고 아내는 피할 틈도 없었지. 아내가 다칠까 봐 옆으로 쓰러졌는데 그때 무릎을 다치고 말았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아내가 나를 보러 왔고 우리는 서로 좋아하게 되었지.” 거기까지 말하고 노인은 가볍게 웃은 다음 이어서 말했다.

 “나중에 휴전이 되어 북한에서 사는데 아내는 자본주의자로 몰렸어. 나는 출신성분이 좋았던 덕분에 연루되지는 않았어.
자아비판대회가 열렸을 때 아내는 단상으로 끌려가 자아비판을 해야 했는데 보안요원이 아내를 때리려고 했어. 그때 우리는 이미 부부였는데 자기 아내가 폭력을 당하려 하는데 누가 참고 있겠나? 나는 곧장 단상 위로 올라가 몸으로 막으면서 보안요원에게 말햇어. ‘여자를 때려서 어쩔 셈이야? 때릴 거면 나를 때려. 이 여잔 내 아내야.’ 보안요원이 정말 몽둥이를 들고 와서는 내 말대로 나를 때렸어. 그때 무릎도 심하게 맞아 한 달 넘게 절뚝거리며 다녀야 했지. 그나마 아내는 전혀 다치지 않아 다행이었어.”

 노인은 적적한 듯했다. 일단 이야기보따리를 풀어헤치자 그칠 줄을 몰랐고 이어서 아내와 있었던 일들을 또 들려주었다. 어떤 것들은 정말 사소하고 시시콜콜했지만 말을 시작하자 노인은 자기 흥에 빠져들었다. 노부부가 서로 얼마나 사랑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말을 마치고 노인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사람은 세상을 떠났어. 우리 나이가 되면 다른 일은 할 게 없어. 그저 추억을 회상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에는 말이야. 여러 잡다한 일들은 기억나지 않아. 하지만 하늘이 나를 보살피는지 근래에 내 무릎을 아프게 하는군. 이 고통은 무슨 일이든 기억나게 해준다네. 무릎을 두 번 다쳤는데 모두 그 사람을 위한 거였지. 그 사람도 내 무릎을 많이 걱정했어. 겨울만 되면 한기가 들까 봐 무릎 보호대를 만들어 주었지.” 말을 하면서 노인은 다시 과거 시절로 돌아갔다.

 감히 중간에 말을 끊을 수 없어 나는 옆에서 노인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추억을 회상하는 것은 그에게는 큰 행복이었다.
 나는 노인에게 다시 오래된 상처를 치료하라고 권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노인에게 상처는 아내와의 사랑의 증거였다.
상처의 고통은 노인에게 하늘의 은총이었고 추억의 상자를 여는 매개체였다.

 고통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고난이지만 그 노인에게는 행복이었다. 고통이 사랑하는 아내를 떠올리게 해주기 때문이다.
정말 노인이 부러웠고 그의 아내가 부러웠고 두 사람의 사랑이 부러웠다. 시련을 겪으면서도 오랜 세월 변치 않는 사랑이 부러웠다.
사랑했기에, 추억을 떠올리고 싶기에 노인은 차라리 고통을 감내했다.

 고통도 행복이다. 행복은 고통이 아니라 고통이 만들어 내는 추억이다. 이는 깊이 사랑한 후 생긴 착각이자 행복한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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