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되짚어 보는 시간 우리들은 가끔 과거가 그립습니다. For 1980년도
추억을 되짚어 보는 시간 우리들은 가끔 과거가 그립습니다. For 1980년도
  • 이가영
  • 승인 2019.05.2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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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의 추억을 돌아보는 길
때론 우리들은 추억에 잠기면서 그땐 그렇게 지냈지. 라고 말할 때가 있다.
각박한 현대보다 과거가 좋았다, 또는 그 시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지금은 없지만 옛날엔 있던 추억을 떠올리는 이야기. 1970년대 말을 기점으로 1980년대 우리나라는 정치적 혼란과 민주화의 좌절 및 후의 민주주의 체제 성립과 흑백에서 컬러TV의 도입 및 88서울올림픽 등 역사적으로도 기억될 순간이 함께 했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5.18 광주 민주화 운동
 
1980년대 전반 혼란과 대립·후반 민주주의로 나아가다
1980년대의 전후로 나누어보면 정치적으로도 큰 혼란을 겪던 시기였다.
1980~1987년은 신군부와 민주화의 대립하던 시기로 큰 사건은 바로 광주에서 시행된 5.18 민주화 운동. 이 운동은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으며 많은 미디어에서도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꼽는 것은 영화화까지 이뤄진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실제로 5.18 민주화운동을 경험한 임철우 작가의 소설 봄날, 영화 화려한 휴가(2007), 택시운전사(2017)등이 있으며, 2011년 민주화운동 기록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가 되었다. 1980년대는 정치체제를 바꾸기 위한 상처투성이 시기만은 아니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함께 1988년 이후부턴 민주주의 체제로 88서울 올림픽의 개최를 통해 영광스러운 역사를 기록했으며, 전 세계에 한강의 기적과 함께 우리나라의 국력을 과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88서울 올림픽
88서울 올림픽
 
1980년대의 경제
1980년대의 우리나라의 경제는 성장과정을 겪는 시기였으나 당시 마이너스 성장률과 외채에 의존하는 상황이었던 만큼 그렇게 좋은 것만도 아니었다. 정치적 혼란기를 거친 우리나라는 안정적인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며, 시기상조로 저금리, 저유가, 저달러 임금 상승에 의한 내수 성장에 힘입어 연평균 10.4%의 고도 성장을 이어나가며 전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이 시기의 정부는 기술 혁신과 신기술개발투자를 촉진하고, 중소기업 및 부품공업을 발전시켜 대내외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비교우위산업을 육성하는데 주력화 하고, 서울 88올림픽의 성공적인 주최와 함께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승리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으며, 동서 화합과 동구 공산권 국가들의 민주화의 단초가 되었지만 이러한 좋은 면만 있던 것도 아니었다. 당시 정부가 미국 수입개방 압력을 수용하면서 농·축산업이 더 타격을 입었고, 농민운동도 전보다 더 거세졌었다. 기업들도 3저 호황 붐으로 흑자를 맞아 이윤을 많이 남겼지만, 이들은 기술개발 등에 투자하기보단 비업무용 부동산 매입에 쏟아 부었고, 노동자 실질임금상승은 1986년 기준 7.9%에 그쳤다. 또한 임금 노동자를 위해 시행한 저곡가 정책은 도시화의 진행과 2, 3차 산업의 발달과 맞물려 농촌의 상대적인 박탈감을 불러온 결과를 낳게 되었다.
 
1980년대의 문화: 음악
2019년의 트랜드로 꼽는 뉴트로의 모티브로 통칭 7080음악.
현 4~50대들에겐 정감이 많이 가는 음악과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좋은 요소로 꼽을 수 있다.
롤러장, 다방, 미팅을 하기 위한 빵집 등 DJ가 자리에 앉아 선곡을 틀어주는 방식으로 레코드판이 성행하던 시기로 대학가요축제도 이 시기에 비롯되었다. 이 시기에 데뷔해 활동하던 가수들은 김현식, 민해경, 홍서범 등이 있으며 김현식의 경우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끌어올린 인물로 꼽고, 민해경 역시 뮤직뱅크의 전신인 가요톱10에서도 1위를 받은 경험이 있는 유명인으로 불리며 홍서범은 대한민국 최초로 랩을 시도한 가수로 정의되고 있다.
 
7080세대들에게 정감이 가는 롤러장, 디스코
7080세대들에게 정감이 가는 롤러장, 디스코
 
1980년대 문화: 만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게임
1980년 초기의 만화산업은 70년대와 마찬가지로 바닥을 치는 수준이었으나 중반부터 합동출판사의 몰락으로 독점출간방식의 끝과 민주화운동으로 사회적 검열이 완화되면서 자유경쟁방식으로 돌입하며 각자만의 사상이나 개념을 품은 작품들이 나오면서 상황은 조금씩 호전하는 추세를 보였다. 애니메이션 산업의 경우 순수창작보단 하청을 맡아 돈을 버는 식으로 나아가는 추세였던 탓에 애니메이션 산업의 경쟁력 저하기였던 80년대 초기와 극장애니메이션이 아닌 TV로 방영이란 방식으로 1993년까지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전성기로 나뉘는 후기로 갈라진다. 이 당시 TV애니메이션은 짧은 단편들이 대다수를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나온 애니메이션으론 달려라 호돌이, 떠돌이 까치, 아기공룡 둘리 등이 있었으며 이 애니메이션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한국의 애니메이션 산업은 다시금 활발하게 이뤄지게 되었다. 적어도 1993년까진. 게임문화는 1980년대 초 중기보단 후기 쪽으로 집중되는데 이 당시 비디오게임산업(또는 패키지게임 산업)은 한국 최초의 RPG이자 상업용 게임 액스터시사의 ‘신검의 전설’을 시작으로 미리내소프트의 슈팅게임 ‘그날이 오면’을 비롯한 다양한 퍼즐게임과 액션게임들이 등장하면서 우리나라 비디오 게임 산업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다만 이 당시엔 저작권은 있으나 마나하던 상태로 불법복제가 공공연히 이뤄졌었다.(사실 이건 게임뿐만이 아닌 모든 미디어산업의 피해도 해당된다) 그 덕분에 판매량이 심히 저조했다는 평. 오죽했으면 제작자들은 이 시기에 내놓은 게임의 판매수익에 대해서도 말을 못할 수준이었다는 반응이다. 만약 불법복제가 없었고 저작권에 대해 조금 더 철저했다면 이 시기의 게임들의 발매를 시작으로 국내 게임 산업의 변화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갔을 거라 예측한다.
 
떠돌이 까치(1987)(左측 上) / 신검의 전설(左측 下)월간 보물섬에서 연재된 만화가 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右)
떠돌이 까치(1987)(左측 上) / 신검의 전설(左측 下)월간 보물섬에서 연재된 만화가 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右)
 
1980년대의 문화: 영화
3S 정책(스크린, 스포츠, 성문화)의 정부차원의 시장왜곡으로 등장하는 에로영화와 해외영화의 비중이 차지하면서 한국영화 입지가 좁아져가는 이른바 영화계의 암흑기.
이 시기의 나온 영화들의 장르들은 대부분이 에로영화들로 ‘애마부인’을 비롯한 다수의 에로티시즘 영화들이 상영되었는데 6~70년대부터 이어진 검열제도로 인해 이 에로영화 역시 상영이 불가능할 것이라 판단했다면 이는 오산이다. 이 시기에도 검열은 이뤄졌지만, 노출 관련 검열만 완화된 것 뿐, 사상이나 사회적 문제의 검열은 이어져왔다. 암흑기로 꼽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검열에 대한 문제도 있었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에로영화 상영 권장과 함께 당시 수입된 해외영화만큼 큰 신선함과 재미를 선사하지 못한 것도 한몫하고 있다. 이 당시 수입되는 홍콩과 헐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들이 극장을 주름잡고 있어 국내영화의 큰 호응은 없었다. 그렇다고 1980년대 전체적인 영화산업이 에로티시즘에 집중한 것은 아니다. 1980년대 후반부턴 정치적 변화와 함께 자유롭게 사상을 표현하는 것 역시 가능해지고 엄격한 검열대상이었던 사회적 문제를 다룬 영화와 청춘남녀를 주제로 잡은 하이틴 영화가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특히 ‘아다다(1987)’와 ‘아제아제바라아제(1989)’ 등이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현재로 향하는 시기
1980년대는 역사적인 사건과 근대화가 진행되는 시기로 현재로 향하는 한발이었다.
이 시기부턴 편의성을 거의 제외하면 우리가 인지하는 현재와 거의 가까워져 가는 시기로 꼽을 수 있다. 특히 1980년대 초의 민주화 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이 없었다면 지금도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체제가 아닌 다른 체제로서 정립되고 지금의 현재완 다른 대한민국으로 기록 되었을 것이라 여긴다. 특히 이 시기는 당시의 최선의 방법이라고 취한 방침이 현재에 좋지 않은 영향으로도 미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시기가 있었기에 현재가 있는 것이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1990년대의 시간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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