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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사회복지원 최순자 원장 "25년 동안 대전에서 이어온 봉사활동, 앞으로도 우리의 이웃과 함께 합니다"
대한사회복지원 최순자 원장 "25년 동안 대전에서 이어온 봉사활동, 앞으로도 우리의 이웃과 함께 합니다"
  • 정하연
  • 승인 2022.04.06 2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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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와 헌신을 꿈꾸는 사람은 많지만, 자신의 전 인생을 쏟아붓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 25년이라는 세월 동안 매일 어려운 이들에게 무료급식을 제공하고 한글을 가르치는 주인공이 있다. 대한사회복지원 최순자 원장은 젊은 시절 한 스님이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했고, 이후 자신의 삶을 봉사에 투신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후 단 한순간도 흔들림 없이 지금까지 봉사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그렇다고 후원금이 많은 것도 아니다. 정기적인 후원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단돈 1,000원만 받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삶은 늘 풍요롭고 함께 하는 이들과 늘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위한 삶’을 추구하는 가운데, ‘남을 위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박순자 원장을 만나 그간의 봉사 활동에 관한 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들어보았다. 

대한사회복지원 최순자 원장(사진=종합시사매거진 DB)

한 스님의 봉사활동에 큰 감동

최순자 원장이 처음 봉사의 길에 들어선 것은 대학시절 사회복지학을 전공할 때였다. 졸업을 위해서는 적절한 봉사시간을 확보해야하는데, 당시 오영훈 교수가 대전 삼성동 노상에서 노숙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한 스님을 추천했다. 최 원장은 그렇게 해서 처음 실제 봉사의 현장에 가게 됐다. 부슬부슬 비가 오는 첫날, 젊은 스님이 묵묵히 혼자서 밥과 국을 뜨는 모습을 본 그녀는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여자도 아닌, 남자 스님이 밥과 반찬을 만들고 봉사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놀라웠기 때문이다. “어떻게 남자 스님께서 이걸 혼자서 하세요?”라고 물었더니 스님은 최 원장을 툭, 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스님이 못할 게 뭐가 있겠어?”

그때부터 최순자 원장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과거에는 술도 좋아하고 노는 것을 좋아했던 그녀였지만, 그날의 만남을 통해서 ‘봉사하는 삶’으로 운명이 바뀌어 버렸다. 그렇게 그녀는 10년간 삼성동에서 무료급식을 실시하고, 남는 시간에는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전날 저녁 준비한 밥과 반찬으로 다음날 점심시간에 급식을 시작하면 대략 2시쯤 끝나고, 그때부터 4시까지는 한글을 가르쳤다. 그리고 다시 4시 이후에는 다음날 식사를 준비했다. 일주일 중에서 금요일 하루는 식사를 제공하지 않지만, 그날은 식재료 구매와 다듬기 등의 일을 했다. 일주일 동안 급식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를 빼지 않으면 도저히 시간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생활이 25년째 계속되고 있다. 

“힘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그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는 일이 너무나도 행복했고, 보람을 느꼈습니다. 또한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이 일을 계속할 힘을 내게 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때 어려움에 빠졌던 사람이 저의 도움으로 안정된 생활을 찾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모습도 뿌듯했습니다.”

한글 공부도 나름의 보람이 매우 컸다고 한다. 어르신들은 한글을 배운 후 은행에서 스스로 돈을 찾거나, 버스가 올 때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지 않고도 자신이 직접 버스에 적힌 행선지를 읽을 수 있다는 것에 감격해했다. 그런 모습을 보는 최순자 원장 역시 함께 기뻐했다. 또 한 번은 폐지를 줍고 살아가시는 할아버지가 최 원장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가끔 몸이 아플 때 원장님이 주시는 도시락을 먹고 몸이 많이 회복됩니다.”

힘들게 마련한 식사가 누군가에게는 삶의 에너지가 된다는 점에서 더 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고 한다. 또 한 중국인 모녀를 도운 일도 생각이 난다고 했다. 

 

자모회장, 초대 산악회장 등 역임

“딸이 한국으로 시집왔는데, 남편이 폭력적이어서 결국 중국에 살고 있던 어머니가 와서 강제적으로 이혼을 시켰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어머니와 딸, 그리고 손자가 함께 사는데, 국적을 제대로 취득하지 못하고 사는 집도 무척 열악했습니다. 창문이 헐어 겨울에는 바람이 많이 들어오기도 했고요. 그렇게 해서 국적을 취득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고, 아는 회사 사장님에게 부탁해 집의 샷시를 교체해서 따뜻하게 살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어머니와 딸은 저를 볼 때마다 너무도 감사하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어쨌든 그나마 빨리 이혼하고 생활이 안정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삼성동에서 10년을 봉사한 이후에 함께 했던 스님이 외국으로 가시는 바람에 그때부터는 혼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처음 스님과 함께 할 때에는 ‘용봉사회복지관’이라는 이름이었지만, 홀로서기를 하면서 ‘대한사회복지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또 당시만 해도 사무실 유지에 월세 50만원이 들어갔기 때문에 무척 부담이 되곤 했었다. 하지만 5년 전 한반도평화봉사단 회장이자 현재 대한사회복지원 후원회장인 신순원 회장의 도움으로 현재의 건물에 입주할 수 있도록 지원을 받게 되었고 지금의 대전 도마동으로 옮겨 새 출발을 했다. 그렇게 해서 한창 봉사를 하고 있는데 어느 날은 서울에서 어떤 사람이 내려와 최순자 원장에게 따져 물었다고 한다. 원래 자신이 서울에서 ‘대한사회복지원’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왜 그 이름을 허락도 없이 도용했냐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최순자 원장은 상표권에 대한 인식도 특별히 없었고, 서울에 같은 이름의 복지원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저는 특별히 나쁜 의도로 쓴 것이 아니고, 상표나 저작권과 같은 법적인 부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했죠. 그냥 비영리단체로 무료급식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오히려 자신도 무료급식을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저보고 대단하다며 오히려 감동을 하셨죠. 그래서 무료급식 하는 사진만 보내준다면 ‘대한사회복지원’이라는 이름을 계속 써도 괜찮다고 제안했습니다. 사진 찍어서 보내주는 일이 뭐 그리 어렵겠습니까. 그렇게 하기로 했고, 저 역시 이후로 계속해서 대한사회복지원이라는 상호를 쓰고 있습니다.”

이 일은 해프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무료급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박순자 원장이 이렇게 활발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을 지켜본 주변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녀가 사회복지가로서의 활동에 매우 의욕적이었을 거라고 예상하곤 한다. 하지만 그녀는 결혼과 함께 출산을 하고 아이를 키우던 평범한 주부에 불과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평생 봉사활동을 하게 될 줄은 그 자신도 몰랐다. 

처음 그녀가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하게 된 것은 자녀 때문이었다. 딸이 워낙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주변에서 ‘자모회장’을 하라고 권유했고 그렇게 해서 처음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녀의 에너지 넘치는 모습과 똑부러지는 추진력에 감탄한 각종 단체에서 그녀를 회장으로 영입하려는 손짓이 많았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 바로 대전 서구 한마음 산악회의 초대 회장이었다. 이후에도 지역의 초대부녀회장을 하는 등, 그녀의 직함 앞에는 늘 ‘초대’라는 말이 많이 붙었다. 이는 곧 지역에서의 활동을 많이 개척해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치에 대한 권유

“봉사활동의 규모가 점점 더 커지면서 본격적으로 지역사회의 도움도 받고, 더 많은 활성화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국제라이온스협의회 365지부 제7지역에 가입을 했고 그곳에서 ‘클로버 라이온스 클럽’을 창설했습니다. 그때에도 ‘초대 회장’이 되었습니다 (웃음).”

이렇게 활발한 봉사활동을 하다보니 누군가는 “정치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라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 원장은 정치에 관한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한다. 그저 이렇게 이웃들과 행복한 봉사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다만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었으니 우리 사회가 좀 더 긍정적으로 변하기를 기대할 뿐이라고 한다. 

물론 최순자 원장은 앞으로도 꾸준하게 봉사활동을 할 예정이지만, 이제는 후계자가 나타나 자신과 함께 했으면 하는 소망을 피력한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또 저도 이제는 나이가 드니 누군가 후계자가 나타나 복지원을 이끌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제가 기반을 닦아놓았으니 누군가가 더 번창하게 만들면 무척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저를 있게 만들어준 수많은 후원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우리 사회가 더 밝아질 수 있도록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남을 위한 삶을 살면서 오히려 자신이 행복해진다는 최순자 원장. 그녀가 걸어왔던 25년의 길이 분명 우리 대한민국을 따뜻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녀의 삶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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